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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옥 칼럼](9)“학생은 젊으니까 걸을 수 있어”
[오정옥 칼럼](9)“학생은 젊으니까 걸을 수 있어”
  • 뉴스N제주
  • 승인 2019.07.0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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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옥 프로텍션메드 제주 공동대표
디자인의 명품 '생활 속의 향기' 대표

◆“학생은 젊으니까 걸을 수 있어”(9)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누구나 처음은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건데,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제 자신을 탓 하는 자책감과 어우러져 육신과 정신까지 황폐해져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남편도 처음 세브란스 병원 갔을 때 우울감으로 우울증 약을 복용했었다. 이렇게 장마 비가 오면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병실마다 들려온다.

13년 전에도 세브란스병원은 환자를 휠체어에 옮기는 이동식 리프트가 있었다.

제주도는 아직도 보호자나 간병사 등 사람의 힘으로 휠체어로 옮긴다.

그 당시 지구환경 과학부 이상묵 교수님은 미국 카리조 국립공원에서 학생들과 지질탐사를 하다 비포장 도로에서 차량이 전복 되는 사고를 당했다.

교수님은 “미국에 재활치료가 나를 살렸다”며 미국의 재활병원 작업치료사에게 정보를 얻어 직접 사용하는 것을 배웠다.

휠체어 선정, 집안개조, 심지어 돈이 없는 경우 기부단체에 편지를 쓰는 것까지 차량 개조를 물리적으로 하거나 사회에 예상되는 문제점 등 모든 것을 병원에서 답을 주고 해결해 주는 것이 미국병원의 작업치료인 것이다.

그 곳에 3개월 동안 있으면서 필요한 첨단 보조 장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상묵 교수님은 모든 것을 선택하고 사용법을 모두 익혔으며 미국의 재활 시스템이 자신을 살렸다고 말했다.

그 중에도 휠체어로 이동하는 것과 의사소통 보조기구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일상생활을 위한 전자 기계를 제공했다.

나는 13년 전에 최첨단 재활 시스템을 알고 있어서 과학이 점점 발달하면서 남편이 재활로봇 속에 들어가면 걸을 수 있다는 상상을 했는데 그렇게 기다리던 에어러블 재활 로봇이 나왔다.

이제 재활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을 통해 적응, 척수손상,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다발성 경화증, 뇌성마비, 파킨스병은 물론, 하반신완전 불완전, 환자를 위한 재활치료, 하반신 완전.불완전, 손상 장애인 위한 보행 훈련 등 나는 로봇 시연을 직접 경험 해보았다.

일어섰을 때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다리를 들어 옮길 때마다 편하고 가볍게 느껴졌다. 앉을 때도 가볍고 편안함을 느꼈다.

신체 공학적 설계로 로봇 무게 중심을 분산하여 착용 후에 백팩을 맨 정도의 안정적 균형감을 느낄 수 있다.

로봇이 상용화되어 불의의 사고로 장애우가 된 젊은 청년들이 그 동안 접어두었던 꿈을 펼치는 날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남편이 병원에 있을 때 젊은 청년과 같은 병실에 있으면서 쉬지 않고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학생은 젊으니까 걸을 수 있어” 남편이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한마음병원 장지찬 재활의학과 선생님도 젊은 청년들이 재활치료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따뜻한 의사선생님이다.

“환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가족”이라며 1억을 주면 100억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시다.

아직은 무릎으로 움직이는 것까지 만들어졌지만 점점 진화 되서 앞으로 발목과 손목이 움직이는 로봇이 연구돼서 나오면 그 때의 세상은 로봇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꿈은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아직 13년째 누워 있다. 하나님은 남편을 통해 모든 경험을 나에게 하게 하셨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한 것은 작년 8월 달이었다.

천성민 항공이송 선생님하고 13년 인연을 갖고 있었는데 그 동안 많은 환자들을 제주에서 서울로, 해외에서 서울로 이송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됐다.

지난 칼럼 6편에 나와 있는 글처럼 기적 같은 일도 만들어지고 제주에 항공 이송이 꼭 필요한 섬이라고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와서 허가 받는데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때마다 간호사도 아니고 의사도 아닌데 그런 일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며 화를 내기도 하고 “다시는 오지 말아요.”라며 냉정하게 한 적도 있다.

작년 여름에도 내려와서 일진행이 잘 안 돼서 술을 많이 마셨다.

다음날 12시 예정 비행기라서 다른 선생님하고 해장국집에 갔다. 해장국을 먹고 있는 데 천성민 선생님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ㅇㅇ대 교수 아들이 제주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뇌수술을 했는데 천 선생님이 제주도 내려가 있으니까 환자 상태를 보고 항공이송을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천성민 선생이 12시 비행기로 가야 되는데 그때 시간이 오전 11시었다. 천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제주대학병원에 가서 비행기 출발하기 전 보호자하고 전화 통화 연결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제주대학병원으로 급히 차를 돌렸다.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제주대학 병실로 갔는데 병실이 비어 있었다.

어떤 꿈을 꾸다 김상선씨의 꿈 어느새 사고 난 지 20년이 흘러 그 어렸던 두 딸이 성인 되었어요.이제 두딸과 어깨를 ㄷ나란히 하고 원 없이 웃으며 산책을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캠핑카를 타고 아내, 딸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그동안 못해 본 것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어요.

다시 간호사실로 가서 병실보호자 빨리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비행기 출발하기 전 전화 연결을 시켜드렸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보호자분이 커피 한잔하자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호자인 그 분은 ㅇㅇ대학교수님이고 10년을 기러기 아빠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호자의 말에 의하면 아내와 딸, 아들을 캐나다 유학을 보내서 10년을 떨어져서 살다가 유학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아들이 아르바이트 하면서 제주도에서 한 달 여행을 하다 여행이 끝나는 마지막 날 중문에서 스쿠터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이어 “아들은 머리 얼굴을 많이 다쳐서 서귀의료원에서 급하게 뇌를 열고 냉동보관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 연락을 받고 “우리아들은 오토바이 타지 않아서 우리 아들이 아니라고 그 당시 말을 했다”고 했다.

그는 비행기 표를 어렵게 구해서 내 아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와보니 아들이 뇌와 얼굴이 많이 다쳐있었다고 했다.

급한 뇌수술은 했지만 서귀의료원은 성형외과가 없어 제주대학병원으로 왔는데 서귀의료원에 냉동된 뇌를 제주대학병원에서 봉합 수술이 안 된다고 말했다.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아니 왜 제대병원에서 안된다고 했을까요?”라고 물었다.

여름이라 영하 60도를 유지해야지 옮기다가 균이 감염 될까봐 못해준다는 얘기였다.

어떤 꿈을 꾸다 서인희씨의 꿈 곧 잇을 아들 예식장에 휠체어가 아닌 두 다리로 서고 싶다는 꿈이 이젠 더 이상 헛된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어요.사고 전 남편과 골프를 치면서 느꼈던 행복을 다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편이 벅차 올라요.

보호자의 말에 의하면 제대병원 의료 수준이 너무 낮아 그때 서울 올라가려고 인터넷 자료를 다 찾아보고 병원에도 알아 봤는데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2007년도 헬기이송 마지막 자료를 봤다고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환자의 보호자에게 “그때 헬기를 탔던 주인공이 바로 접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환의를 입고 걷는 연습을 하는 25살 청년을 보면서 또 한 번 아픈 가슴을 쓰려 내렸다.

부모인 아버지가 자식하나 잘 키우려고 유학까지 보내서 10년을 기러기 아빠로 살다가 뜻하지 않게 이런 일을 겪는 부모의 아픔은 누가 알까. 아픔을 격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데 그 청년의 모습이 영화 필름같이 눈앞에 남아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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