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옥 칼럼](8)“엄마, 우리아빠는 천사야"
[오정옥 칼럼](8)“엄마, 우리아빠는 천사야"
  • 뉴스N제주
  • 승인 2019.06.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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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옥 프로텍션메드 제주 공동대표
디자인의 명품 '생활 속의 향기' 대표

▲"엄마, 우리아빠는 천사야"(8)

2007년 9월17일 제주 한마음병원 입원 10일 만에 우리 가족이 다 함께 할 수 있었다.

6개월 만에 아들과 딸아이는 아빠, 엄마랑 추석을 함께 지낼 수 있어 좋아했지만 눈가에는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딸아이가 “나는 아빠가 어떤 모습이든 난 아빠가 살아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아들은 남자라서 그런지 학교로 갔다가 집에 오면 책가방을 멘 채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빠를 말없이 껴안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심장이 터지는 듯 통증을 느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난히도 아이들을 예뻐하고 사랑했다. 아이아빠는 춥고 배고팠던 운동 선수시절 얘기를 자주 했다.

남편은 청년시절 예의를 갖추는 태권도 대표 선수였다. 운동선수 생활을 해서 그런지 체중이 2킬로그램 이상 오르면 바로 체중관리하고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 관리를 참 잘했다.

남편은 “아이들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아이들이 있어야 교회가 있는 거야”라며 교회에서 여름성경 학교 때는 큰 아이스박스 통에다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워서 수박을 사고 캠프장에 가서 조용히 가져다 놓고 오는 사람이었다.

성경 말씀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는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남편은 성경 말씀대로 나에게도 아이들 가르치듯 항상 그랬다. 나는 남편을 치료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고, 인테리어 매장은 그날로 6개월째 멈춰 있었다.

딸아이는 5살 때부터 눈뜨면 장난감 피아노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으면 한글도 모르는데 한손으로 장난감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이렇게 노는 모습을 보고 아이아빠는 “떼를 쓸 줄만 알았는데 이런 재주도 있었네”라며 어린 딸이 너무 예뻐서 장난감 피아노용 건전지 사주기에 바빴다.

그런던 딸의 피아노 레슨도 금전적으로 힘들어 그만뒀고, 외교관이 꿈꾸던 아들도 모든 어학원을 그만 두고 아빠 병원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난 6개월을 되돌아 본 생활은 몇 년이 훌쩍 지나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생활속의 향기’를 운영하던 일터로 가서 문을 열었다.

남편은 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때는 꽃다발과 깜짝 이벤트를 해주었다. 결혼기념일 때 사준 나무화분에 산세베리아가 6개월 동안 물도 안줬는데 주인 없는 가게에 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밖에서 동네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살다 보면 살아진다, 거기 애기 아빠는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천국으로 갔을 거야,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위로의 말을 했다.

나는 “할머니, 애들 아빠 살아서 집에 왔어요.” 라고 답했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매장이 닫혀있어서 남편이 죽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내가 지금 마법에 빠져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영하는 매장은 사거리 코너라서 매장전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다. 서쪽에 강한 햇빛이 유리에 반사돼 실크소재로 디자인 제작된 소파가 탈색이 돼있고 모든 것이 다 멈춰 있었다.

처음으로 지난 6개월이 현실이 아니고 영화 속의 주인공이 돼서 영화촬영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그 순간 나는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4시간이나 떠 있었던 일들이 생각이 났다.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죽은 사람도 살렸는데...” 나에겐 세상에 무섭고 두려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추석이 지나고 집에 온지도 20일 지나서 한마음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이 복구가 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원생활 9개월이 되면서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지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간병인을 쓰고 밤에는 내가 병원에서 잠을 자며 일을 시작했다.

내가 다시 일하기만을 기다리는 고객이 많아서 매장 문을 열어 대청소를 시작했다. 혼자 몇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생각이 젖어 있을 때 남편은 병원에 있는데 매장에 들어올 때 헛기침을 한번 하고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남편은 일하는 현장을 다니면서도 새로운 길을 알려주고 자동차도 주유해서 세차까지 하고 가져 다 주면 나는 운전만 하고 다녔다.

남편하고 같이 다니던 길을 지날 때면 눈물이 앞을 가려 차를 세우고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곤 했다.

남편은 내가 일을 시작해서 심리적으로 불안한해 할까봐 내 스케줄을 저녁에 병원가면 다 얘기를 해줬다.낮에는 일하고 저녁 7시 30분 경 병실 문 쪽에 시선이 멈춰있다.

하루 종일 내가 올 때만 기다리고 있는 해바라기. 내가 도착하면 장애인 화장실로 가서 하루 일과를 얘기했다. 건강할 때 남편의 모습이 이제까지 스쳐지나고 있었다. 나는 지난 시절과 지금을 혼동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 일찍 집으로 와서 애들 밥 챙겨서 학교 보내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내가 힘들어질 때 여성잡지를 보다가 서울대 이상묵 교수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장애를 극복한 긍정의 힘, 이상묵 교수님이 타고 다니는 휠체어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져서 강의 마치고 쉴 때는 욕창방지로 휠체어를 한 번씩 움직여 주고 모든 걸 말로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마비 환자들은 혈액순환 때문에 체위 변경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 이상묵 교수님은 자동차 사고로 목 밑으로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되었는데도 죽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제2의 인생을 선물 받았고 인생은 끝까지 살아 봐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아! 미래는 애들 아빠도 과학의 힘을 빌어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몆 년 전 딸아이하고 영화 “미비포유”를 보게 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나는 애들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죄책감에 “아빠를 편하게 놔줘야 했는데...”라는 말로 내 얘기를 듣고 딸아이는 “엄마, 우리아빠는 천사야. 사랑하는 아빠가 살아 있어서 나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우리 엄마, 엄마 딸이라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남편은 중간 중간 위기가 왔을 때 내가 응급처치를 해서 세 번 살아난 사람이다.

오늘은 목사님의 기도의 글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무렇게나 피는 꽃은 없습니다. 마지못해 피어있는 꽃도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태어난 인생이 없듯이 마지못해 살아가는 인생도 없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삶입니다. 그 삶이 힘들거나 슬프거나 아플지라도 인생은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없다고 하지만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삶일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랑하세요, 어느 곳이든 딛고 살 수 있는 단단한 밑바닥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렇게나 피어있지 마세요. 마지못해 피어있지 마세요. 이 세상에 당신의 몫이 있답니다.”

남편을 통해 나는 레슨비를 줘도 경험해보지 못할 많은 것을 경험 했고, 경험 했던 일들을 제주도에서 새로 만드는 것이 나의 몫이었는지 아는 지인으로부터 맞춤형 재활로봇을 운영하는 사장님을 소개받고 ‘웨어러블 로봇’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의사를 추천해 드렸다.

간절히 원하면 그 꿈이 현실로 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을 했다. 과학의 힘을 빌어 걸을 수 있는 재활치료용 ‘웨어러블 로봇’을 만나게 되었다.

한마음병원 재활 의학과 선생님들과 맞춤 재활 ‘웨어러블 로봇’ 시연을 했다.

000 한마음병원 재활의학과 과장님은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시고 이 ‘웨어러블 재활로봇’으로 많은 보행 장애 환자를 치료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과학의 힘을 빌어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맞춤재활 ‘웨어러블 로봇’이 제주에 갖춰지면 보행이 불편한 분들은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제주도에는 에어 엠블런스(50인승 제트기), 특수구급차, 웨어러블 재활로봇까지 준비 되는 과정이다.

제주도내 병원에 열악한 의료 환경을 벗어나 이런 것들을 갖춰져서 제주 도민들도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웨어러블 로봇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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