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옥 칼럼](6)준비된 ‘응급구조사’와 ‘에어앰블런스’가 생명을 살리다
[오정옥 칼럼](6)준비된 ‘응급구조사’와 ‘에어앰블런스’가 생명을 살리다
  • 뉴스N제주
  • 승인 2019.06.0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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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옥 프로텍션메드 제주 공동대표
건축.인테리어 '생활 속의 향기' 대표
당시 태국 파타야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항공 이송 사진
당시 태국 파타야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항공 이송 사진

매번 인생의 고비를 맞았던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열정의 끈기와 투지, 용기가 밑받침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후로 해외환자이송을 한국에 토착화시키는 노력과 항공의료 서비스의 연결고리로 선생님은 생명을 살리는데 혼신에 노력을 했다.

또 한 번 기적이 일어난 일이 있었다.

이 환자는 한국대학생으로 졸업여행 갔다가 다이빙 사고로 경추 골절로 태국 파타야에서 한국으로 귀환시킨 환자였다.

24세 젊은 청년은 자기가 경험한 사고 사례와 직접 동영상을 보내주었으며 자기의 경험이 공익을 위해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께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

창민이(환자)는 제퍼슨 골절(생명과도 관련 된 골절)을 동반한 경추골절로 경추 견인기를 달고 가지 않으면 이송불가라고 태국병원의 주치의 소견과 한국으로의 이송 시 장시간의 이동, 육로이송 시 도로사정, 항공기 착륙에서 오는 충격 및 기류영향에서 오는 터블런스(항공기 흔들림)를 감안한다면 사지마비보다 제퍼슨 골절을 동반했기에 사망까지도 생각해야하는 위험한 이송이었다라고 했다.

목을 고정만으로는 위험하다는 이송팀의 판단으로 경추견인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현지에서 이송 준비중인 천성민 대표
현지에서 이송 준비중인 천성민 대표

당시 태국 주치의에게 천성민 선생님은 역으로 경추견인기를 달고 이송만이라도 담당해줄 이송팀을 병원 측에게 의뢰를 했다고 한다. 

모든 팀들이 주치의의 주문에 노우라고 했다 왜냐하면 움직이는 차량이나 항공기 안에서 추가 안움직인다는 건 있을수가 없는 일이고 몸과 머리가 움직일 때 한통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모두들 "NO, 장비가 없다면 차라리 만들자!"라며 의기 투합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추견인기를 현지에서 만들고 세 번째 선정된 팀이 왔다.
의사, 간호사, 테크니션, 기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니 그나마 최고 팀인 것 같다.

하루 전날 이송을 위한 병원 주치의, 이송담당 의사, 나를 포함한 우리 팀의 컨퍼런스 및 우리 측이 만든 장비의 창민이 조교를 환자로한 시연까지 보여준 후 이송결정이 났다.

이제 이송만이 남았다. 이송 중 경추견인기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해 안전한 이송을 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나는 경추견인기가 궁금해서 한번더 물었다.
천성민 대표가 젊었을 때 철구조물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짬짬이 용접이나 구조물 만드는 것을 배워 놓았다고 했다.

사람들 인식에 그 일이 '노가다'(?)라는 이미지가 싫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마디 덧붙였다. 그때 그렇게 싫었던 일이 지금 이렇게 쓰일줄 몰랐으며 팀을 이끄는 장수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독한 자리라고 했다.

현지에서 이송준비 중인 천성민 대표. 경추견인기가 없는 장비라 직접 제작중.
현지에서 이송준비 중인 천성민 대표. 경추견인기가 없는 장비라 직접 제작중.

당시 경추 견인기가 창민이의 안전을 보장하는 동화줄이기에 추를 없앤 경추 견인기를 만들자라는 단순한 생각에 통역을 맡으신 모두투어 우국진 지사장, 창민의 조교를 데리고 무작정 철공소를 찾았다라고 한다.
이런 장비가 없다면 경추 견인기를 만들자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라고 했다.

또한 두려움도 컸었다고도 했다.
검증이 되지않은 장비를 사용해 창민이가 잘못 된다면 나의 인생은 끝이라는 두려움이 사실 컸었다라고 했다.

경추 견인기를 달지 않고 가는 이송은 창민이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 할 수 없었고 젊은 나이에 앞으로 살아가야 될 인생이 길기에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라고 했다.

철공소를 아예 돈을 주고 하루를 빌리고 우국진 지사장, 창민이 학교의 조교 아이디어 등 포함하여 도안이 나왔고 용접을 하고 구멍을 내고 다이얼을 분해해 추없는 다이얼식 견인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송 단계를 거쳐 한국에 도착 수술도 곧바로 시행되었고 3차원 영상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엄청 많은 실금이 나 있어서 이송 중 조금의 손상을 받았으면 제퍼슨 골절을 포함해 있었기에 최악의 경우 호흡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라고 했다.

4년전 태국에서 다이빙중 목뼈 골절로 이송한 창민이다. 지금은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제주 목장에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후유증없고 생활하는데 지장이없다고 한다. 2019년엔 8년사귄 여친이랑 결혼한다고 한다.이날 제주팀들이랑 소주 한잔하고  한컷.이게 보람이 아닐까 생각이든다.만나서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어떻게 신체 마비없이  올수 있었는가를 듣고  당시 MBC카메라 작가였던 고모부와 현지에서 왜그렇게 할수 있었는가를 듣고 가족과 고모부의  고마움을 세삼느꼈단다.사실 이 이송은 신화에 가깝다.자기도  안단다. (2018년 기록.)
4년전 태국에서 다이빙중 목뼈 골절로 이송한 창민이다. 지금은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제주 목장에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후유증없고 생활하는데 지장이없다고 한다. 2019년엔 8년사귄 여친이랑 결혼한다고 한다.이날 제주팀들이랑 소주 한잔하고  한컷.이게 보람이 아닐까 생각이든다.만나서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어떻게 신체 마비없이  올수 있었는가를 듣고  당시 MBC카메라 작가였던 고모부와 현지에서 왜그렇게 할수 있었는가를 듣고 가족과 고모부의  고마움을 세삼느꼈단다.사실 이 이송은 신화에 가깝다.자기도  안단다. (2018년 기록.)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안다.
한국으로 전송된 영상으로 재수술까지도 생각했었다고 병원장님이 보호자에게 말했다라고 했다.
수술은 잘되었으며 이렇게 상태를 보존해서 올 수 있는 케이스는 드문 일이라고 집도의이신 연세대 병원장님이 말했다고 한다.

지금 창민이는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제주 목장에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후유증이 없고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2019년엔 8년 사귄 여친이랑 결혼도 한다고 한다. 새삼 무사히 올 수 있도록 참아준 창민이에게 선생님은 감사를 표했다.

2018년 12월 선생님이 제주도에 내려 와 있을 때 한통에 전화가 걸려왔다.
태국에서 세브란스병원 이송 4년 후에 연락이 온 것이다. 선생님은 술 한 잔 하자고 신제주에 위치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기다리는데 환자였을 때 퉁퉁 부은 얼굴이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을 해서 이송했기에 그 당시 얼굴 모습이 아니라서 몰라봤다.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핸섬하고 잘생긴 연예인이 서 있었다. 결혼할거라는 얘기를 듣고 너무 감사했다.

창민이 모습

다음은 그 멋진 청년이 보내온 내용이다. 그 글을 실어본다.

항상 제2의 삶을 살고있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목부상을 입은 후 한국으로 귀환하기 위한 8시간의 이송은 제 인생을 송두리채 바꿀 수도 있는 갈림길이었습니다.

평생을 누워서 장애를 안고 사느냐 기적적으로 장애 없이 인생을 사느냐 하는 삶을 결정짓는 기로에 섰었으니까요.

처음 수술을 태국에서 할려고도 했었는데 모두투어 지사장님이 태국에서의 수술은 예후가 좋지 안다고 말씀을 해주셨고 마비증세를 안고 모두들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솔칙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행히 안전하게 귀환하여 수술도 무사하게 마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태국현지에서 직접 설계한 목 견인기와 고정장치를 만들고 움직이는 차량내에서 견인 추대신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이얼식으로 바꾸신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지금 프로텍션메드 대표이신 천성민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때 그 장비가 저를 살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를 귀환시키기 위해 함께 하신 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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