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옥 칼럼](1)시도만이 살길이다
[오정옥 칼럼](1)시도만이 살길이다
  • 뉴스N제주
  • 승인 2019.04.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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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옥 포로텍션메드 제주 공동대표
'생활속의 향기' 대표

뉴스N제주는 ‘오정옥 칼럼’ 「눈물이 없었다면 웃음은 없다」를 게재합니다.
오정옥 님은 제주도 남원출신으로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해서 1남 1녀의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 가던 중 남편이 뜻하지 않게 뇌내출혈로 쓰러져 간호를 하며 살아왔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갑니다.

현재, 불의의 사고와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 열악한 제주의 의료 현실을 되돌아 보면서 한 생명을 살리려는 인간의 기본을 지키려는 가족애의 사랑을 같이 느끼고 응원하면서  위급시 제주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과, 돌아오는 방법이 없는 한계상황에서 헤쳐나가는 지혜를 알리고, 우리 가족도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만약에 다른 가족도 이런 상황이 오면 경황이 없어 처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오 대표님이 길잡이가 돼야한다"는 뉴스N제주의 끈질긴 설득에 쾌히 승낙해주셔서 글을 쓰게 됩니다.

오정옥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필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시도해야만 살 수 있다(1)

오정옥 생활의 향기 대표
오정옥 생활의 향기 대표

또렷이 생생하게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수많은 필름들이 스쳐지나간다.

들어서 아는 것은 책을 통해서 알게 되지만 내가 직접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야 말로 참지식인 것이다.

지난 12년간의 나의 경험을 모든 사람들과 공감하고 나누고 싶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나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2007년 3월20일 저녁 6시10분 남편은 헬스장에서 샤워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입다 의식을 잃었다.

119구급차로 제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제주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님이 “뇌내출혈이라서 운이 아주 안 좋습니다. 수술도 할 수 없고 손을 댈 수 없는 부위입니다.”라는 말이 귀에 들렸다.

“남편의 얼굴은 평온하게 잠자는 모습인데 왜 가망이 없다고 하는 걸까”

그 당시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선생님 그럼 서울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바로 “이환자는 서울병원이든, 항공사에서 뇌압 때문에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병원에 포기각서를 쓰고 여러 경로를 통해 중앙119헬기를 타게 되었다.

21일 밤 광주를 경유해서 헬기는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이날 밤 10시20분쯤 시동생이 청심환 한개 건네줘서 힘들게 씹어서 삼켰다.

승강기를 내리려고 할 때 당시 교회에 다니던 00교회 담임목사님이 달려오셔서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를 해주셨다.

119구급차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할 즈음 병원로비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수많은 지인들이 마중 나와서 손을 흔들며 격려해주었다.

나는 남편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 세상을 참 잘살았어요. 병원로비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살리려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꼭 살아나야 되요.”

제주공항 도착해 헬기에 몸을 실었다.

밤 11시 헬기가 출발했다. 헬기를 보니 의료장비는 미흡했고 환자를 포함해 헬기에 탈 수 있는 인원이 8명으로 환자베드를 헬기 창가로 가로하고, 바닥은 철판바닥에 그냥 앉았는데 움직일 수 없이 비좁았다.

또한 어려운 것은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고막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아직까지도 그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헤드폰이 부족했는지 환자와 나는 쓰지 앉고 4시간동안 쪼그리고 가는데 3월21일 그날, 헬기 안은 너무 추웠다.

냉기가 철판바닥을 타고 나의 온 몸의 등줄기는 얼어가고 환자도 얼굴이 풍선같이 부풀었다.

몸은 점점 굳어가고 있기에 가지고 있던 성인용 기저귀를 풀어 두 장은 내가 깔아 앉고 나머지는 다 풀어서 남편을 감싸고 끌어안고 갔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돼서 영화촬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밑을 내려다보는데 구급차 두 대가 보였다.

“아, 이제 다왔나보네”

한강고수부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프로펠러 바람이 환자가 날아갈 거같이 바람이 강해서 의사선생님이 엠보백 산소공급을 몇 번이나 놓쳤다.

다행히 구급차에 환자를 무사히 태우더니 구급차는 출발했다.

운전기사가 위중함을 알았는지 구급차를 얼마나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는지 차위에 있는 약품들이 다 떨어지고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다.

새벽 2시 20분 강동성심병원도착.

강동성심병원은 아는 분을 통해서 가게 됐다.

내 생각은 병원도착 하면 수술준비가 다 되고 바로 수술이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이 엄청 혼을 냈다.

“당신 미쳤어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손을 대지 못하고 0.1%에 가능성도 없는 사람을 그것도 헬기로 4시간동안 하늘에서 보내고, 잘못됐을 텐데 뇌압이 너무 상승해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응급실도 자리가 없어 복도에서 인턴이 지속적인 산소 공급을 위한 엠부백, 산소공급을 졸린 눈, 피 묻은 가운 입고 서있었다.

새벽4시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보호자님, 중환자실 면회 들어오세요.”

머리를 빡빡 밀고 짙은 쌍꺼풀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간호사를 처음 봤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거는 영화야! 나는 지금 영화를 찍고 있는 거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손을 소독하고 들어갔는데 나는 얼음이 돼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얀 압박스타킹을 무릎까지 올리고 옷을 벗기고 하얀 비닐 시트에 산소 호흡기 양팔 겨드랑이에 얼음주머니를 차고 가운데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아일랜드영화필름이 무수히 스쳐 지나갔다.

아일랜드영화 결혼12년 만에 처음으로 심야 영화를 같이 봤는데 왜 그 영화 필름이 스쳐 지나갔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새벽4시에 중환실에 서있는 나는 저 사람이 여기 있으면 이 사람들같이 식물인간상태 되겠구나!

“최선을 다 했으니까 포기해야지”

“내가 여기 있으면 우리 애들 어떡하지!” 이제는 제주도로 내려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22일 아침 가족들이 첫 비행기를 타고 병원으로 왔다.

내가 제주도로 내려간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올라올 때는 헬기로 올라 왔는데 내려갈 때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구급차로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에서 구급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까지 갔다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희망이 생겼다.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가고 배를 타고 제주까지는 소요시간이 약 13시간 정도이며, 산소는 충분히 실어야 된다는 얘기를 했다.

저녁 면회시간 때 의사선생님을 면회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두 분이 같이 동행해야 되서 같이 내려갈 의사가 없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꼭 내려가야 됩니다. 어떻게 하든 내려갈 수 있게 해주세요.”

특수구급차
특수구급차

그때 다른 의사분이 사설특수구급차 전화번호를 주면서 비용이 280만원인데도 하시겠어요?“ 라는 말에 ”네, 어떤 방법이라도 내려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12시에 퇴원수속하고 준비 하세요”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하고 가족들하고 늦은 저녁식사 했는데 밥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삼켰다.

특수구급차에 응급구조사 선생님이 왔다.

정확히 23일 새벽2시에 제주도에서 입고 간 환의를 다시입고 카트에 실려 밖으로 나왔다.

환자의 환의 가슴 쪽이 핏물로 젖어 있었다.

나는 놀래서 “선생님 이게 뭐죠?

“네, 마지막으로 가래를 뽑으려고 셕션을 했는데 코피가 터졌어요”

아, 순간 나는 코피 나오면 좋은 거라고 들었는데 더 빠져나오게 놔두지 환자를 바셀린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불안했다.

여하간 응급구조사 선생님이 카트밀고 구급차에 올랐다. 나는 마지막 정리를 마치고 구급차를 향해 걸어갔다.

3미터 남겨놓고 발걸음이 멈췄다.

구급차 유리창으로 남편의 상체가 두 번 팔딱팔딱 뛰는 모습이 보였다.

“아, 하나님 저게 마지막인가요.”

“제발 제주도까지 가서 우리 아이들 얼굴만 보게 해주세요”

나는 간절히 기도 했다.

차안으로 올라갔는데 선생님이 산소 호흡기를 빼서 상체가 뛰었다. 간호사는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고 응급구조사 선생님은 담당 의사선생님과 통화 중이었다.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3일 어쩌면 제주도까지 가기는 어렵습니다”

고열이 발생하면서 뇌압이 상승하고 뇌는 두부 같아서 팽창되면 아래로 빠지면 끝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다급하게 “선생님 어떻게 된 거죠?” 물었다.

“네, 환자가 갑자기 자가 호흡이 세져서 산소 호흡기를 밀어내는 소리가 커서 순간 산소 호흡기를 뺐어요. 자가 호흡이 되는데 산소 호흡기 꼽아 놔두면 오히려 자가 호흡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에게는 산소호흡기 꼽고 내려간다고 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데 풍선같이 부풀었던 얼굴이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다행히 가라않기 시작했다.

나는 물수건으로 땀을 쉴 새 없이 닦고 또 닦았다.

남편의 눈 밑에서 콧등까지 노랗게 변했던 것이 땀이 배출되면서 없어졌고 부었던 얼굴도 가라앉아 피부에 생기가 돌아왔다.

담당 선생님이 지극 정성으로 케어하고 차트 쓰고 눈 한번 깜빡 안하고 혈압, 심장 박동수 등을 수시로 체크하며 보여줬다.

그때야 알게 된 건데 수입특수구급차 모든 장비가 자동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한국에 한 대 들어 왔는데 남편이 첫 고객이었다.

나의 구급차와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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