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4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고등어조림

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호승 시집, 여행,46쪽 : 창비시

2023-04-29     뉴스N제주

김석환 시집, 어둠의 얼굴 : 푸른사상 시선 11) 14쪽, 고등어조림

고등어조림

김석환

지느러미 다 잘리고
꼬리 접고 내장 다 비우고
전기냄비 속에 누워 있다
말짱히 뜬 눈에 아직
수평선 위에 부서지던 별
초롱거린다 살이 익고
뼈가 익어가면서
온몸으로 내쉬는 마지막 숨결
뚜껑을 밀어 올리는 그 뜨거운 힘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마늘 고추 묵은 김치, 세파보다
매운 기운 뼈 속으로 파고든다
다비식 숯불보다 더 붉게
익어가며 풀어지는
고등어의 종말
아침식탁, 그 최후의
최초의 만찬 상으로 한 치씩
금빛 햇살을 불러들인다.
실내 가득 번지며 출렁이는
두고 온 만 바다의 비밀
비로소 머리를 편히 눕힌다.

김필영

생과 사의 소실점에서 승화된 생명의 시학

사람이 동식물을 식품의 재료로 삼아 취하게 될 때, 동식물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희생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만물의 영장이 살아가는 지구상의 온갖 동식물들은 의식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러한 생명이 태어나 살다가 죽게 되는 지점, 그것이 마지막일까? 김석환 시인이 사유한 시,「고등어조림」을 통해 생과 사의 소실점을 들여다본다.

서두에 시의 주인공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지느러미 다 잘리고, 꼬리 접고, 내장 다 비”운 물고기다.『자산어보』에서는 벽문어(碧紋魚)라 하고, 학명은 Scomber japonicus이며, 고등어(皐登魚)라 한 바닷물고기가“전기냄비 속에 누워 있다.

”한반도 연근해에 활개 치며 성산포 물살을 가르던 기개는 간 데 없다.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뒤쪽에 토막지느러미와 꼬리가 잘리고 내장마저 박탈된 몸으로 누워있다.

조리하는 이에게 일방적으로 무장해제 된 고등어의 주검이 결코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물고기의 눈빛에 시안(詩眼)을 집중하여 은유한 묘사가 이채롭기 때문이다.

눈꺼풀이 없는 고등어의 감을 수 없는 눈빛을 타 작품들에서는 임종 시에 풀지 못하는 한이 있어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경우로 묘사하던 보편성을 초월한 묘사가 생경하다.

정지된 생선의 눈빛에서 청록색 등선과 은빛 배와 맞닿은“수평선 위에 부서지던 별”이“말짱히 뜬 눈에 아직 초롱거”리고 있다는 묘사는 고등어를 죽음을 초월한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조리되고 있는 고등어에서 아직 꺼지지 않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살이 익고 뼈가 익어가면서 온몸으로 내쉬는 마지막 숨결”을 느끼는 화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화자는 냄비가 끓을 때“뚜껑을 밀어 올리는 그 뜨거운 힘”의 근원에 대해 독자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물음은 이어지는 행간에서 세파보다 매운 기운으로 뼈 속으로 파고드는‘마늘, 고추, 묵은 김치의 힘이 고등어에게 전위됨을 강조하여 고등어조림을 통해 새로운 사물을 형상화시켜 등장시킨 것이다.

타자를 위해 제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한 끼의 식사를 위한 음식으로서“다비식 숯불보다 더 붉게 익어가며 풀어지는 고등어의 종말”은 결코 종말이 아니다. 한낱 타자의 먹이로 해체될지언정 아낌없이 자신을 통째로 줄 수 있음은, 계산이 앞서 자신을 기꺼이 내놓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게 한다.

사실 바다 속에 살아있는 고등어는 어부의 도움 없이는 쉽게 볼 수 없다. 행간에는‘밥도둑’으로 일컬어지는 조림요리의 진수인‘고등어조림’이 어떤 맛이며, 어떻게 먹을 것인지는 생략되었다.

그러나 “아침식탁, 그 최후의, 최초의 만찬 상으로 한 치씩 금빛 햇살을 불러들”일 때 “실내 가득 번지며 출렁이는 두고 온 만 바다의 비밀”이 벗겨지고 있다.

“비로소 머리를 편히 눕”히는 생물학적으로 생명력을 상실한 고등어는 “고등어조림”이라는 조리과정을 통해 생과 사의 소실점(消失點)에서 시적 미학으로 승화되어 생생히 살아있는 것처럼 詩의 식탁위에 차려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