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82)고구려의 발전(저절로 밥을 짓는 솥)
[장영주 칼럼](82)고구려의 발전(저절로 밥을 짓는 솥)
  • 뉴스N제주
  • 승인 2022.12.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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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그러나 그것으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마, 깨어나소서.”

“이 나라를 구하소서.”

온 고구려 국민의 애도 속에 유리왕이 세상을 떠나자 ‘무휼’ 태자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잠깐, 신화가 된 무휼태자?

나중에 대무신왕이 된 그는 고구려 시조 추모 성왕의 손자이다. 덧붙인다면 유리왕의 아들이다.

고구려의 대장군 광개토대왕릉 비에 의하면 고구려를 연 3대 국왕 중 하나로 그의 나이 11세 때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의 태자 책봉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유리왕의 첫아들 ‘도절’이 17세 때 사망하므로 다음 왕자인 ‘해명’이 태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해명은 매우 용감하여 이웃 적대 국가인 황룡국의 미움을 샀다. 그러니 유리왕은 황룡국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해명태자에게 명하여 자결을 지시한다.

야화는 이런 해명태자를 신화화하고 있다.

오랜 옛날, 해명태자는 유리왕의 둘째 아들로 사도세자라고 할 수 있다. 장남이자 태자였던 도절이 죽은 뒤, 서기 4년(유리왕 23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이 해에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천도할 때 부왕을 따라가지 않고 졸본에 남았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로는 힘이 세고 용맹하였다고 한다.

유리왕 27년 봄, 해명태자가 옛 도읍인 졸본성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구려 주변에 있던 나라인 황룡국의 왕이 해명의 무용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는 사신을 보내 강한 활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해명은 그 활을 당겨 부러뜨리고는,

“내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활이 약해서 그렇다.”

고 말하며 함부로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는 경고를 한 셈이다.

황룡국 왕이 이를 전해 듣고는 부끄럽게 여기자 유리왕은,

“해명은 불효하다.”

며 화를 내고 황룡국 왕에게 해명을 보내며 그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3월에 황룡국 왕이 사신을 보내서 해명을 만나려 하자 주변에서 말렸지만, 해명은,

“하늘이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데 황룡국 왕인들 나를 어떻게 죽이겠느냐?”

라면서 태연하게 황룡국으로 갔다. 황룡국 왕은 처음에는 해명태자를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직접 보자 기상이 늠름해서 죽이기는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에 예를 다해 대접하고 고이 돌려보냈다.

다음 해 28년 봄, 유리명왕은,

“내가 천도한 뜻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해명이 힘이 센 것만 믿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불효하다.”

면서 자살하라고 명령하며 칼을 내려줬다.

해명이 곧 자살하려 하자 어느 사람이 말렸지만, 해명은,

“지난번에 활을 부러뜨린 것은 황룡국이 고구려를 가볍게 본 것으로 생각하여 보복한 것이었는데, 아버지가 뜻밖에 화를 내고 자살하라 하니 죽지 않을 수 없다.”

면서 여진의 동쪽 벌판으로 가서 창을 땅에 꽂고 말을 타고 달리다 창에 몸을 던져 스스로 창에 찔려 자살하고 말았다.

사망 당시 고작 21세였으며, 사후 태자의 예로써 동쪽 들에 장사지내고 사당을 세우고 그곳을 불러 창원이라고 하였다. 이후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이자 유리왕의 삼남인 무휼이 태자가 되었다. 그래서 무휼은 15세에 고구려 3대 왕으로 등극한다.

유리왕이 죽고 무휼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대무신왕이었다.

대무신왕 4년 때 고구려는 대소왕의 군대와 큰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대무신왕은 대소왕을 치고자 군사 수천 명을 인솔하고 선봉장이 되어 비류수 상류로 올라갔다.

이때는 겨울이었으므로 강물이 두껍게 얼어 얼음 위로 강을 건널 수가 있었다.

앞장서서 달리던 대무신왕의 눈에 멀리 강가에서 한 여인이 솥을 하나이고 이쪽으로 오면서 장난을 하는지 앉았다 섰다 하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보였다.

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 대무신왕은,

“저기 앞에 보이는 것이 여자인 모양인데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게냐?”

“예, 여인이 솥을 이고 오는 모양이 옵니다.”

“가서 자세히 알아보고 오너라.”

군졸들은 여인을 향하여 뛰어갔다.

군졸들이 가까이 가자 여인은 간 곳이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상스러운 일이다. 금방 여기 있던 여자는 어디 가고 솥만 남아 있으니………”

군사들이 돌아와 보고하자 대무신왕도 여자가 달아난 것으로 알았다.

“점심때가 되어 밥을 지어 먹어야 할 텐데 마침 잘 되었다.”

밥을 짓는 군사들이 여인이 놔두고 간 솥에 쌀과 물을 넣고 불을 때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불이 자꾸 꺼졌다.

“에잉, 이런 낭패가….”

밥 짓는 군사, 요즘 말로는 취사병이겠지. 다른 취사병이 대신 불을 때려고 가보니 솥에서 밥 끓는 냄새가 났다.

“밥이 다 된 것을 가지고 공연히 화만 내고 있구나.”

먼저 취사병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보니 밥 끓는 냄새가 역시 났다. 뚜껑을 열어보니 흰 밥이 한 솥 가득 담겨 있었다.

“네가 불을 땠니?”

“아니 불이 무슨 불이야? 네가 화를 내며 저리 가길래 내가 불을 때려고 왔다가 보니 벌써 밤이 되었던데.”

“이상스러운 일이다. 대무신왕께 여쭈어야겠다.”

군졸 한 명이 대무신왕이 먹을 밥을 담아 가지고 가서,

“대왕마마, 점심 수라를 가져 왔사옵니다. 그런데 이 수라는 불을 때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된 것이옵니다.”

“불을 안 매고 밥을 했다고?”

“예, 아까 여인이 버리고 간 솥으로 지은 것이옵니다.”

“그것참 신기한 일이로구나. 다시 한번 해 보아라.”

취사병들이 다시 그 솥에 쌀을 넣고는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조금 후에 열어보니 과연 밥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신이 주신 것이다.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대무신왕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하늘에 감사의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리고 대무신왕도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 솥은 우리 군대를 위하여 주신 것이오니 감사히 받겠나이다. 우리는 이로써 벌써 부여의 군대를 이긴 것같이 생각되옵니다.”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 다시 행군을 계속하려고 할 때, 난데없이 한 남자가 뛰어나와 솥을 가리키며,

“이 솥은 우리 집의 보물이요. 며칠 전 내 누이동생이 잃은 것인데 이제 여기서 찾게 되었소이다. 그러나 이는 대무신왕을 위하여 신이 따라다니며 군졸들의 밥을 지어 주겠사옵니다.”

하고 대무신왕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신기한 일이다. 솥의 주인이 나왔으니 주인이 하자는 대로 하여라.”

이때부터 고구려의 군사들은 어디서든지 밥을 마음대로 지어먹을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아무런 수고도 없이 저절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게 되니 이보다 더 편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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