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79)알에서 나오다!(고구려 건국 신화)
[장영주 칼럼](79)알에서 나오다!(고구려 건국 신화)
  • 뉴스N제주
  • 승인 2022.10.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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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중국 료녕민족출판사 주몽 이야기

주몽은 고구려를 창조한 왕이다. 고구려 건국신화는 곧 주몽 이야기와 맥이 통한다. 여기서는 필자가 오래전 중국 모 도서관장(김재원)에게서 받은 구수한 조선 옛이야기 두 권 중 두 번째 책에 나오는 고구려 건국신화를 옮겼다.

이 자료는 뒤에 필자가 엮은 주몽 이야기와 곁들여 읽으면 한결 주몽의 고구려 건국신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고구려 건국설화

부여왕 해부루가 로년에 자식이 없어 아들을 하나 점지하여달라고 산천에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왕이 탄말이 곤연이라는 못에 이르러 어떤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리므로 왕이 이상히 여겨 그 돌을 굴리니 거기에는 금빛 개구리 모양으로 생긴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다.

왕은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자기에게 준 아들이라 생각하고 집에서 기르는 동시에 이름을 금와라 하고 자기의 태자로 삼았다.

얼마 후에 정승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서 말하기를

“이곳은 내 자손이 나라를 세울 곳이니 너희는 동해 가섭원이라는 곳으로 옮겨가라. 거기는 오곡이 잘되어 도읍을 정할 만한 하느니라.”

라고 하였다.

아란불은 이 사연으로 왕을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동부여라고 불렀다.

천제는 자기 아들 해모수를 부여왕 옛터에 내려보냈다.

해모수는 하늘에서 내려올 때 오룡차를 타고 그 부하 백여 명은 모두 해오라비를 탔는데 채색 구름이 뜬 가운데서 풍악 소리가 진동하였다.

그들은 웅심산 마루에 머물러 십여 일을 지내다가 비로소 내려왔는데 머리에는 까마귀 갓으로 만든 관을 쓰고 허리에는 룡광검을 찼다.

아침에는 내려와 정사하고 저녁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그를 천왕이랑이라 불렀다.

성북 쪽에 청하라는 강이 있는데 거기에 하백의 아름다운 딸 삼 형제 류화, 훤화, 위화가 웅심연에 늘 나와 노닐었다.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보고 안해(아내)로 삼고 싶었으나 그 처녀들은 사람을 보면 즉시 물속으로 숨어버렸다.

신하들은 왕에게

“대왕께서 여기에 궁전을 지어놓고 기다리시다가 처녀들이 그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문을 막으시면 능히 붙잡을 수 있을 것임을 아뢰옵나이다.”

라고 말하자 왕은 그럴 듯이 여겨 채찍으로 땅을 그으니 별안간 굉장한 구리집이 솟아올랐다.

그 집안에 자리 셋을 만들고 술 동이를 놓아두었더니 과연 그 처녀들이 나타나 각각 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대취하였다.

이때 왕이 급작스레 뛰어들어 붙잡으려고 하니 모두 놀라 도망치다가 큰딸 류화만이 붙잡히었다.

하백이 이것을 알고 대노하여 사신을 보내여 이르되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내 딸을 붙잡았느뇨?”

하므로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로다. 지금 하백의 따님과 결혼하고자 하노라.”

이에 하백은 다시 사신을 보내여

“그대 만일 천체의 아들로서 구혼하려 할진대 응당 중매를 보내여야 할 것이 오늘 마음대로 내 딸을 붙잡으니 그 무슨 실례인고.”

이렇게 말하니 왕은 스스로 부끄러이 여겨 하백을 만나보려 하나 물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류화를 보내려 하였으나 그는 이미 왕에게 정이 들어 혼자 떠나가려 하지 않았다.

왕은 류화의 권고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우롱차를 타고 풍운의 힘을 빌려 룡궁으로 들어갔다.

하백은 예로써 왕을 맞아 자리에 앉은 후에

“혼인이란 어느 나라에서나 정한 법이 있거늘 그대는 어이하여 그런 실례되는 짓으로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느뇨. 그대 만일 천제의 아들이라면 무슨 신기한 재주가 있느뇨?”

하고 질문하게 되니 왕은 시험하여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하백은 즉시 잉어가 되어 뜰앞에 있는 못에서 놀고 있으니 왕은 수달이 되어 잉어를 잡으려 하였다.

하백은 다시 사슴으로 변하여 달아나니 왕은 이리가 되어 그 뒤를 쫓았다.

하백이 이번에는 꿩으로 변신하니 왕은 매가 되어 잡으려 하였다.

그제야 하백은 왕이 천제의 아들임을 알고 예를 갖추어 자기 딸과 결혼케 하였다.

그런데 하백은 자기 딸에 대한 왕의 사랑이 식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풍악을 잡히고 왕에게 술을 권하여 대취케 한 다음 자기 딸과 함께 왕을 가죽 부대 속에 넣어 차에 실어 하늘로 올라가게 하였다.

그러나 하백의 술은 7일이면 깨는 것이기 때문에 차가 아직 물 밖에 나가기 전에 왕은 술이 깨여 안해의 금비녀로 가죽 부대를 찢고 홀로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이것을 알게 된 하백은 대노하여 자기 딸이 가문을 더럽혔다고 벌을 주었다.

즉 류화를 붙들어 매고 입을 잡아당겨 입술이 석 자나 늘어나게 만들어서는 노비 두 사람을 주어 우발수란 강에 정배 보내었다.

하루는 강력부추라는 어부가 금와왕에게 와서

“근자에 어떤 괴이한 짐승이 밤마다 와서 고기 발에 든 고기를 도적하여 가나이다.”

하고 보고하므로 금와왕은 어부에게 그물로 잡아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어부가 그물을 쳤으나 그물이 찢어지므로 다시 철망을 만들어 끌어내고 보니 돌 우에 앉은 한 녀자였다.

그 녀자는 입술이 길어서 말을 하지 못하므로 세 번이나 입술을 베여주었더니 그제야 말을 하게 되었다.

금와왕은 그 녀자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의 왕비임을 알고 딴방에 두었더니 햇볕이 그 품에 비춰 그로 인하여 임신하였다.

그리하여 왼쪽 겨드랑이로 크기가 닷 되가 만큼 한 일을 하나 낳았다.

금와왕은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고 괴이하게 여겨 외양간에 버리었으나 말들이 밟지 않고 또 깊은 산 속에 버리었으나 온갖 짐승들이 다 보호하며 구름 낀 날에는 알 우에 늘 해별이 빛나고 있었다.

금와왕은 더욱 이상히 여겨 그 알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더니 얼마 후에 드디어 알이 열리며 용모와 체격이 매우 잘 생기고 울음소리도 우렁찬 남자애가 나왔다.

그 아이는 나서 한 달도 못되어 말을 곧잘 하더니 하루는 어머니에게 향하여

“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사오니 활과 살을 만들어 주소서.”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활과 살을 가지고 몰래 우에 앉은 파리를 쏘아 맞히었다.

부여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하므로 그 아이를 주몽이라 하였다.

나이 들면서 그의 재주는 더욱 늘어갔다.

금와왕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어 늘 주몽과 함께 사냥하였는데 그들의 일행 40여 명이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을 때 주몽은 실로 많은 사슴을 잡았다.

왕자들이 질투하여 주몽을 나무에 결박하고 그가 잡은 사슴을 모두 빼앗아갔기 때문에 주몽은 부득이 나무채 뽑아서 끌면서 돌아왔다.

금와왕의 태자 대소가 왕에게

“주몽은 용맹과 재주가 비상하온바 일찍 없애버리지 않사오면 반드시 후환이 있으리라 아뢰옵나이다.”

하고 말하여 왕은 주몽에게 말 치는 일을 맡겨 그의 동정을 살피었다.

그러므로 주몽은 내심으로 원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하였다.

“이 불초자는 천제의 손자로 태어나가자고도 남의 말을 치고 있으시오며 살아도 죽음만 같지 못 하와 남쪽으로 가 나라를 세울까 하옵나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주몽에게

“나도 너 때문에 항상 속을 썩이는 바로다. 내 들으니 대장부가 멀리 있는 길을 떠나려면 모름지기 준마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 그리 알아차리라.”

하고 말하였다.

주몽은 말을 고르려고 즉시 외양간에 가서 긴 채찍으로 말들을 닥치는 대로 치니 모두 놀라 뛰어 달아나는데 그중에 두 길이나 되는 물을 뛰어넘는 붉은빛 나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주몽은 그것이 준마임을 알고 가만히 그 말의 혀에 바늘을 찔러 놓았더니 그 말은 혀가 아파 잘 먹지 못하여 날로 여위어갔다.

그 후 왕이 말들을 순시하다가 이 여윈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은 그 말을 가지고는 바늘을 뽑아내고 잘 먹이였다.

주몽은 오리, 마리, 협보 등 착하고 지혜 있는 세 동무와 함께 남행하여 개사수강에 이르렀다.

배가 없어 건널 수 없고 추격하는 군사는 급히 따라오므로 주몽은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이노라. 이제 난을 피하여 여기 이르렀을 즉 황천후토는 이 외로운 몸을 련민히 여겨 속히 다리를 놓을지어다.”

하고 외치며 활로 물을 ‘탁’ 치니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놓았다.

주몽 일행이 건너간 뒤에 한참 있다가 추격하는 군사들이 따라와 그 다리를 건너다가 고기와 자라들로 된 다리가 꺼지는 바람에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처음 주몽이 어머니를 기별할 때에 주몽이 못내 갈라지기 애달파하므로 어머니는

“너는 이 어머니를 너무 생각지 말라.”

하며 곡식 종자를 싸서 주었다.

그런데 주몽은 생리별 하는 마음이 통절하여 그만 보리 씨를 잊어버리었다.

길을 가다가 어느 나무 아래서 쉬는데 쌍 비둘기가 모이는 것을 보고 주몽은

“이것은 아마 어머니께서 보리 씨를 보냄이로다.”

하고 생각하여 화살 하나로 비둘기 두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그리하여 비둘기 목을 베여 보리 씨를 끄집어낸 다음 비둘기에게 물을 뿜어주어 다시 소생하여 날아가게 하였다.

주몽 일행은 형국이 좋은 곳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모두 우거진 풀 우에 앉아 군신의 차례를 정하였다.

이때 불류국 송양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주몽이 왕의 용모가 비상함을 보고 자리에 청하여놓고

“내 궁벽한 곳에 있어 일찍 군자를 만나보지 못하였니 오늘 이처럼 만나매 어찌 반갑지 아니하리오. 그대는 어인 사람이며 어디서 왔느뇨?”

라고 물었다.

“나는 천제의 자며 서쪽 나라의 왕이로다. 묻노니 그대는 누구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고?”

“나는 선인의 후손으로 벌써 여러 대째 왕 노릇을 하노라. 지금 여기는 땅이 좁아 두 왕이 있을 수는 없도다. 그대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즉 나의 부용으로 됨이 옳지 않은고?”

“나는 천제의 뒤를 이었거니와 지금 그대는 신의 후예도 아니거늘 왕이라 자칭하니 만일 나에게 지속하지 아니하면 하늘이 재앙을 내리리로다.”

송양은 주몽이 자주 천제의 후손이라고 말함을 듣고 의심하여 주몽의 재주를 시험해보고자 하였다.

“바라건대, 그대와 더불어 활쏘기로 겨루어보리로다.”

하고 송양은 자기가 먼저 사슴을 그려 백 보 안짝 되는 거리에 세우고 쏘았으나 그 배꼽을 맞히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주몽은 옥지환을 백 보밖에 걸어놓고 쏘아 맞히여 그것을 산산이 깨뜨리게 되니 송양이 깜짝 놀랐다.

주몽은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하므로 아직 불과 호각 따위가 없어서 불류국 사자가 래왕할 때에도 이를 예법대로 영송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다고 한탄하였다.

부분노라는 신하가 이 말을 듣고 자기는 주몽 왕을 위하여 불류국의 북을 취해 오겠다고 하였다.

“남의 나라에서 깊이 간직한 보물을 어떻게 취하여오려 느뇨?”

“그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오매 어찌 취하지 못하리까! 대왕이 부여에 계실 때는 만난을 겪었으되 이제는 그런 위험에서 뛰쳐나가려 동쪽 지방에 이름을 드날리게 되었사온자 이것은 천제의 명으로 그리 될 것이오매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리까!”

이에 부분노는 두 동무와 함께 불류에 가서 북을 취해왔다.

불류국 송양왕이 사신을 보내여 사출하여보았으나 주몽 왕은 북을 아주 오래된 것처럼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감히 무엇이라고 다툴 수 없었다.

송양왕이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져서 부용국이 되기로 하자고 하므로 주몽 왕은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년이나 묵은 것처럼 보이게 하여 송양왕이 와서 보고도 끝내 선후를 다투지 못하게 하였다.

주몽 왕은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흰 사슴 한 마리를 잡아 해원이란 언덕에 거꾸로 달아 매여놓고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 불류왕의 도읍을 침몰시키지 않으면 결코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라. 네 죽음을 면코자 할 진댄 하늘에 호소하라.”

하고 방자하였다.

그 사슴이 슬피 울어 그 울음소리가 하늘을 쪼개는 듯하여 보이자 이레 동안 장마가 져서 송양왕의 도읍을 침몰시켰다.

주몽 왕은 갈대로 꼰 바를 물에 가로 띄우고 자기는 오리말을 탔다.

백성들이 모두 그 바를 붙잡고 아우성을 칠 때 주몽 왕이 채찍으로 물을 그으니 물은 그치기 시작하였다.

송양왕은 할 수 없이 항복하였다.

그해 7월에 검은 구름이 골령이란 산에 일어나 그 산은 보이지 아니하되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의 떠드는 소리가 나며 벌목을 하고 토역을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위하여 성을 쌓음이로다.”

하고 기뻐하더니 7일 만에 운무가 걷히자 과연 거기에는 성곽과 궁실이 이루어져 있었다.

주몽은 하늘에 감사를 드린 후 거기에 자리를 정하였다.

주몽 왕은 19년 동안 왕위에 있다가 40세 되는 해 가을 9월에 하늘에 올라가고는 다시 내려오지 아니하므로 태자가 주몽이 남긴 옥채찍을 왕의 시체 삼아 룡산에 장사지냈다.

처음 주몽이 부여를 떠날 때 임신 중인 안해 계 씨를 남기고 온 그 후 계 씨는 류리라고 하는 아들을 낳았다.

류리는 어려서부터 신기한 재주가 있어 항상 활로 새잡이 하기를 즐기였다.

하루는 류리가 활을 가지고 새잡이를 나갔다가 실수하여 물 긷는 어떤 부인의 동이를 맞혀 구멍을 뚫었다.

그 부인은 성이 나서

“아비가 없는 자식이라 남의 동이를 깨뜨렸도다.”

하고 꾸짖게 되어 류리는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다시 진흙을 이겨서 활을 쏘아 그 구멍을 메워주었다.

류리는 곧 집에 돌아와 자기 어머니에게 물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며 지금 어디 있나이까?”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류리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롱담삼아 아버지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류리는 울면서

“아버지가 진정 없을진대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 오리까?”

하고는 칼을 빼 들고 자살하려 하였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그것을 제지하면서 말하였다.

“내 방금 한 말은 롱담이다. 네 아비는 본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이느니라. 재질이 뛰어 난고로 부여 나라에 용납되지 못하여 남쪽 땅에 피해 가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으니 네가 보려 하느뇨?”

“아버지는 임금이 되었삽는데 아들은 이처럼 남의 나라 신하가 되오매 내 비록 재주는 없을망정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네 아비가 떠나갈 때 부탁한 말씀이 있었느니라.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 돌 우에 선 소나무 아래에 유물을 감춰두었으니 그것을 얻어내는 자라야 자기의 아들이라고 하셨으니 너는 그리 알라.”

하였다.

그날 부터 류리는 그 유물을 찾기 위하여 산골짜기를 헤맸으나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류리는 역시 피곤한 다리를 끌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 기둥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므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기둥이야말로 돌 우에 선 소나무고 또 일곱 모로 깎은 것이었다.

류리는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란 일곱 모를 말한 것이고 돌 우에 선 소나무란 기둥을 말한 것이었구나 하고 스스로 해석하고는 일어나서 가까이 가 보았다.

과연 기둥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났는데 거기서 부러진 칼 한 조각을 찾아내었다.

류리는 너무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류리는 부여를 떠나 고구려에 달려가 그 부러진 칼 조각을 주몽 왕에게 드렸다.

왕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칼 조각을 꺼내어 맞춰보니 피가 돋아나면서 두 조각이 이어졌다.

왕은 류리에게

“내 아들일진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졌느뇨?”

하고 말하니 류리는 한번 소리를 지르자 공중에 몸을 솟구쳐 살창문을 타고 해를 맞춰 그 신기한 재주를 보여주었다.

왕은 그제야 크게 기뻐하여 류리를 태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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