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숙 칼럼](5)이른 봄, 집으로 가는 길
[양민숙 칼럼](5)이른 봄, 집으로 가는 길
  • 뉴스N제주
  • 승인 2019.03.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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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길, 위로하는 문학 5
시인 양민숙

2년 전, 마을만들기 우수사례를 조사한 적이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한 마을을 다니며, 우수사례를 조사하고 원고를 쓰고 책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는데 객관적 시각을 강조해도 방문하는 마을마다 주관적 관점이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큰 예산을 들여 건물을 지어놓고 활용을 못하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외부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마을이 내부적으로는 지역주민들과의 갈등으로 곪아가고 있기도 하였다.

그때 만난 곳이 용흥리다. 신엄리에 합병되어 운영되다가 1953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신엄리에서 분리되어 ‘용흥리로 개칭하여 사용하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었다. 용흥리는 마을건물이 우선이 아닌, 마을주민들의 교육을 더 중요시하고 있었다.

동아리를 만들어 스터디를 꾸준히 하는가 하면, 지속적인 회의를 거쳐 진정으로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신선했다.

당연한 것을 보기 드문 풍경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하지 않는 마을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용흥리가 선택한 것은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마을주민들을 위한 진정한 방향설정이었다. 이러한 마을운영과 고즈넉하고 독특한 마을길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던 곳이다.

용흥리가 선택한 것은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마을주민들을 위한 진정한 방향설정이었다.

다시 용흥리를 방문하였다.

‘첫인상’은 아무래도 중요하다. 좋은 첫인상의 기억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터라, 가만가만 조용히 걸어보는 마을길 탐방에도 만족도가 배가 된다. 마을길을 지나 용흥리의 상징인 ‘용마루동산’ 둘레길을 걸었다.

이 길은 마을의 어느 곳에서 시작점을 잡아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용흥리의 첫 길이라면 일주도로변의 ‘중엄리 복지회관’에서 출발하면 찾아가기가 쉽다. 이웃마을의 복지회관을 따라 계속 산 쪽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정확히 820m 되는 지점에서 두 갈래의 길을 만나게 된다.

어느 길로 가도 용마루동산 둘레 길을 찾아갈 수는 있지만, 필자는 왼쪽 길을 선택하였다. 더 좁아지는 길 돌담을 따라 소담스레 핀 동백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길을 선택하여도 이 길은 만나게 된다.

한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계속 걷다 보면 이 바람소리가 멜로디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멜로디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용흥리가 선택한 것은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마을주민들을 위한 진정한 방향설정이었다.
억새무리와 우뚝 솟은 소나무, 감귤나무, 동백나무가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초봄의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용마루동산’의 기운을 받으라고 마을명까지 ‘용흥리’로 지은 만큼 ‘용마루동산’은 높지는 않지만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마을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감귤 주산지인지라 가는 길로도 수확을 마친 감귤농장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10분 정도 걷다 보면 다시 두 갈래의 길을 만난다. 이럴 때 가끔 난감해지긴 하지만, 조금 더 걷고 조금 덜 걷고의 문제이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에 몸을 맡길 수 있으니, 어느 쪽이어도 상관은 없겠다.

필자는 둘레길을 선택하였기에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난 가을 많이도 흔들렸을 억새무리와 우뚝 솟은 소나무, 감귤나무, 동백나무가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초봄의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걷다 보면 마을의 큰 길이 나온다. 그리고 그 곳에서부터 5분 정도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처음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시작점부터 총 35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동산을 한 바퀴 걷고 내려가다 보면 점점이 박혔던 집들이 크게 보인다. 그러면 집으로 가고 싶어진다. 붕어빵시인으로 유명한 김세홍시인은 詩 ‘집으로 가는 길’에서 집을 소실점이라 표현했다.

불혹이 되면서 내 집이 그리웠다
그럼에도 가도가도
집은 늘 소실점이었다
새로 마련한 항골집 옥상에서도
나는 집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늙어가는 사랑이 부리는 조화일까
부력을 다하여 해 드는 곳으로
내 집을 찾아가는데
나는 왜 해 지는 쪽으로만 가고 있는 것일까
빛바랜 사진 속에서 내 집 냄새를 맡는다
해 드는 곳이 그곳이었다니,
제대 날짜를 기다려온 일
봉급날을 손 꼽던 일
뒷걸음질로 찾아가 보면
모두 우리 집 어귀에서 있었던 일이다

   - 김세홍시인 '집으로 가는 길' 전문

누군들 안 그럴까? ‘집’이란 단어 안에 내포되어 있는 숱한 경험이 아련함으로 다가올 즈음 자신도 모르게 집으로 발걸음 돌리고 있었던 시간들. 살아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어딘가에서 헤매다가도 와락 안길 수 있는 곳이 집이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곳이기도 할 터이다.

살아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어딘가에서 헤매다가도 와락 안길 수 있는 곳이 집이다
살아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어딘가에서 헤매다가도 와락 안길 수 있는 곳이 집이다

2월 한 달을 헤맸다. 길을 찾아 헤맸고, 내 삶의 길을 찾아 헤맸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헤맸던 시간이다. 길을 찾는 것은 언제나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그 길의 끝은 언제나 집으로 가는 길이었으면 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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