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은솔 문화국장이 만난 사람...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이 사람]이은솔 문화국장이 만난 사람...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 이은솔 기자
  • 승인 2022.02.13 22: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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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륜동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6년 동안 꾸려
제주 구좌읍 세화리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 3년째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의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그 가운데 가장 제주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람이 아닐까? 엄청난 바람이 불어 파도가 몰아치고 안개가, 구름이, 비가 사방 팔방에서 다양하게 몰아치는 곳이 제주일 것이다.

제주는 섬, 그 거센 바람에 의해 밀려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떠밀려 나가지 않고 제주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이 견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기에, 다양한 문화가 돋보이고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책방의 풀무질 일꾼인 동네책방 제주풀무질 은종복 대표를 만났다.

그의 책방에 들어서면 벽면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우리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글을 읽는 동안 인간이 자연에 대한 배신과 대가의 결과는 참혹하고 가혹함을 느끼게 된다.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 ‘제주풀무질’이 무슨 의미에요

-. 책방 제주풀무질. 사람들은 책방에 오면 ‘풀무질’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난 이렇게 말한다.

“제주풀무질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앞에 있는 풀무질에서 이름을 가져왔어요. 풀무질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하나는 사전에서 나온 뜻으로 대장간에서 쇠나 낫을 만들 때 불을 피우려고 바람을 넣는 기구가 풀무예요.

책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속뜻은 달라요. 1970~80년대 잘못된 군사정권에 불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 있어요.

1980년대에는 대학교 과마다 학회지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풀무질은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회지 이름이에요. 그때 학회지 이름은 횃불 태양 들불 진군 같은 센 느낌으로 많이 지었어요. 서울 풀무질은 1986년 2월에 처음 문을 열면서 성대 신문방송학과 학회지 이름을 빌려 썼어요.”

#. 서울 풀무질과 제주풀무질은 어떤 관계예요?

-. 제가 서울 풀무질에서 26년 2개월 11일 동안 일을 했어요. 1993년 4월 1일 제 나이 28살부터 2019년 6월 11일 제 나이 54살까지 일을 했지요.

서울 풀무질을 그만두면서 빚이 1억 5천만 원쯤 되었어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산 낡은 아파트를 팔아서 출판사에 줄 빚을 다 갚고 젊은 사람 세 분에게 물려주었어요. 그분들 허락으로 풀무질 이름을 쓰게 되었어요. 서울 풀무질과 제주풀무질은 동무 사이예요.

#.“제주도에서 책방을 해서 행복하나요?

-. 아주 행복해요. 하지만 제주도가 개발을 하면서 자연을 파괴해서 마음이 아파요.

제주도에서 산지 2년 조금 넘었어요. 저는 제주도를 15년 만에 왔어요. 같이 제주도에 온 아내와 아들은 제주도를 좋아해서 1년에 한 번쯤은 왔지만 저는 서울 풀무질 책방 일을 하느라 어디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갈 수 없었지요. 오랜만에 제주도에 오니 여전히 아름다워요.

하지만 성산에 제2공항을 만든다, 송당에 비자림 삼나무 2,500그루를 벤다, 선흘2리에 동물원을 만든다 하면서 제주도를 마구 더럽혔지요. 서울에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있으면 개발에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돈을 내면 마음이 편해요.

지금은 제가 제주도에 살고 있으니 나 몰라라 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열심히 활동도 못 하구요. 사실 저는 제주도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거든요.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 서울 풀무질과 제주풀무질이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르나요?

-. 먼저 같은 것 세 가지, 다른 것 세 가지를 말할게요.

먼저 같은 것은 첫 번째로 둘 다 인문사회과학 책방이에요.

서울 풀무질에서 대학 교재와 수험서도 팔았지만 인문사회과학 책이 훨씬 많았지요. 제주풀무질도 나들이 하는 사람들이 읽기 편한 산문과 소설들이 많이 팔려요. 하지만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많이 갖추려고 애써요.

둘째는 책읽기모임을 여전히 하고 있어요.

서울 풀무질에서도 책읽기모임을 10개쯤 했어요. 제주도에서는 5개를 하고 있어요. 선흘녹색평론읽기모임 제주풀무질녹색평론읽기모임 제주주경야독모임 고전읽기모임 청년풀독모임이에요.

셋째는 책방을 꾸리는 뜻이 같아요.

제 꿈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을 맞는 거구요. 또 하나는 남북이 평화롭게 하는 되는 세상을 맞는 거예요. 서울 풀무질에서 그런 꿈으로 책방을 했어요. 제주풀무질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다른 점 세 가지를 볼까요.

첫째는 서울 풀무질은 책이 훨씬 많아요.

서울 풀무질은 출판사와 직거래하는 곳이 100군데가 넘어요. 직거래라는 것은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큰 책방에 바로 보내 주듯이 저희 풀무질에도 보내 주는 거래를 말해요. 서울 풀무질은 많을 땐 책이 5만 권이 넘었어요.

40평 책방 공간에 이중으로 된 책장에 책이 가득했지요. 제주풀무질은 지금 2,500권쯤 되요.

둘째는 책을 사는 사람이 달라요.

서울 풀무질은 대학교 앞에 있어서 대학생들이 주로 책을 사지요. 주말엔 일반 손님들도 오기도 하지만요. 서울 풀무질은 우리나라에서 인문사회과학 책이 한 곳에 제일 많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제주풀무질은 열 사람 가운데 일곱 사람은 제주도로 나들이를 왔다가 책을 사러 와요.

나머지 세 사람 정도는 동네사람들이나 제주도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오지요. 제주시나 서귀포시에 사는 사람들도 와요.

제주풀무질도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제주도에 있는 다른 책방에 비해서 많은 편이거든요.

셋째는 서울풀무질에서 책읽기모임을 하면 주로 대학생들과 함께해요.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모임도 못 나오지요. 제주풀무질에서 하는 책읽기모임은 동네사람들과 해요. 동네에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찻집을 하거나 숙박업을 하거나 사진작가이거나 학교 선생님이거나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이들은 책방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책방에서 하는 모임에 죽 함께하지요.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 왜 제주도까지 와서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하려고 하세요?

-. 사람이 밥을 먹으려면 밥과 반찬이 있잖아요. 저는 인문사회과학 책은 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먹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밥이 아예 없는 밥상은 드물어요.

그럼 왜 인문사회과학 책이 밥일까요. 인문사회과학 책은 우리가 이 땅에서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음을 던져요. 우리는 남과 북이 갈라진 땅에서 70년 넘게 살아왔어요. 그럼 우리는 왜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어야 하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왜 그럴까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주어진 현실에 눈을 돌리고 어제 살던 대로 오늘 살고, 오늘 살던 대로 내일을 산다면 사는 일이 좀 슬프지 않나요. 또 내가 이렇게 되는대로 살면, 누군가는 아파하고 죽어가는 것이 이 세상이에요.

이 세상은 누구 하나 동떨어져서 살지 않아요. 그물코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슬픔과 기쁨을 주면서 얽혀 있지요. 인문사회과학 책은 이런 삶에 중심을 잡아 주어요.

특히 요즘은 누구나 손전화기를 갖고 있어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그럴수록 잘못된 정보에 빠지기 쉬워요.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하듯이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올곧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좋겠어요.”

#. 제주도에는 있는 다른 책방들과 제주풀무질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 저는 제주도에 내려와서 책방을 하려 했어요. 다른 책방들을 열 군 데 가까이 가 봤어요. 책방들마다 마을 문화지킴이와 사랑방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쉬운 것이 좀 있어요.

첫째는 책을 읽을 공간이 적은 곳이 많았어요. 저희 책방은 작은 의자이지만 열 사람 넘게 책을 읽을 공간이 있어요.

둘째는 제주도에 있는 책방이다 보니 나들이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니 나들이 온 사람들이 읽기 편한 작고 읽기 쉬운 책들이 많아요.

그런 책들도 있어야 하지만 저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많았으면 했어요.

셋째는 책방은 단지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동네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 생각해요.

물론 제주도에 있는 많은 책방들이 작가와의만남 같은 모임을 열면서 꾸준히 동네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요. 하지만 그런 일도 국가기관이나 관련단체에서 돈을 주어야 모임을 해요.

그런 곳에서 돈을 주지 않아도 모임을 꾸준히 해야지 싶어요. 제주풀무질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돈을 주어서 하는 모임은 하지 않으려 해요.

그렇게 돈에 끌려가면 책방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사라지거든요. 하지만 지금 동네책방들은 국가기관에서 주는 돈을 받지 않으면 책방을 꾸리기가 참 힘들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죠. 답은 하나예요.

다른 많은 유럽 나라들처럼 완전도서정가제가 되어야 해요. 도서관과 학교는 동네책방에서 정가로 책을 사 주어야 해요.

아주 간단하게 풀릴 문제인데 우리나라에선 책방조차도 다른 사업체와 마찬가지로 경쟁을 해서 먹고 살라고 던져버려요. 어느 나라를 가 봐도 우리나라처럼 동네에 책방이 적은 곳은 없어요. 참 슬픈 일이죠.”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 왜 하필이면 제주도에 와서 책방을 하세요?

-. 서울 풀무질이 망했어요. 제가 책방 경영을 잘못했지요. 제 아들이 스물 살이 되었을 때 아들 이름으로 은행에서 신용대출로 2000만 원을 빌렸어요. 그것을 아내가 알고 말했지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못할망정 빚을 물려주어서 되겠냐고. 서울 풀무질 책방을 계속하든지 아내와 이혼을 하든지 선택하라고 했어요. 저는 아내를 선택했어요. 제가 서울에서 책방을 26년 동안 했어요. 사람들이 물어요. 책방을 그렇게 오래하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냐고.

저는 말하지요. 26년 동안 책방을 하면서 남은 것은 은행 빚이요 얻는 것은 아내와 아들이라고. 이제 아내마저 저를 버리겠다고 하니 많이 슬펐어요. 저는 아내를 선택했어요. 아내가 허락을 해서 어머니가 도와주어서 산 아파트를 팔고 서울 책방 빚을 모두 갚았어요.

책방 빚을 갚고 난 돈으론 나와 아내, 아들은 더 이상 도시에서 살 수 없었어요. 아니 도시에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식구들은 날마다 밤이면 이야기를 나눴어요. 도시를 떠나서 어디로 갈지. 그곳에 가선 어떤 일을 하며 살지. 우리는 때론 눈물을 흘리고 때론 무기력에 빠지곤 했지요.

하나하나 풀었어요. 먼저 어디로 갈지 정했지요. 나는 지리산 가까이 가고 싶었어요. 산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조금은 숨어서 살고 싶었거든요. 아내와 아들은 반대했지요. 둘 다 제주도로 가자고 했어요. 난 싫었어요. 제주도는 비행기를 타야 하잖아요. 제 어머니가 서울에서 사세요.

지방에 내려가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언제든지 쉽게 서울에 오지 싶었어요. 또 비행기는 한 번 뜨고 내릴 때마다 자동차 3000대 배기가스가 나온다 해요. 자연을 더럽히면서까지 제주도로 가야 하나 싶었지요.

하지만 제 뜻은 반영되지 않았어요. 서울 풀무질을 하면서 집을 팔아서 책방 빚을 갚았으니 말이에요. 다음은 제주도에 가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들은 조금 울먹이면서 말했지요. 아버지가 평생 동안 책방을 했으니 책방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아내도 처음에는 또 책방이야 하면서 시큰둥하더니 제주도에선 책방을 해도 잘 될 수도 있다 했어요. 일단 제주도는 큰 책방이 없다, 제주도 사람들이 전자책방을 쓰면 택배비를 낸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제주도에 와 보니 여전히 전자책방 택배비는 무료였어요. 아무튼 이렇게 제주도에 와서 책방을 하게 되었네요.”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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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에 와서 제일 행복한 일은 무엇인가요?

-. 제주도에 와서 제일 행복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강아지 ‘광복’이를 만난 거예요.

제가 책방을 구좌읍 세화리에서 하고 있지만 제주도에 처음 내려와서는 조천읍 선흘2리에 살았어요. 우리 집 마당에 잔디밭이 있어요.

광복이가 2019년 8월 15일에 우리 집에 들어왔어요. 우리 집에 올 때 광복이는 많이 아팠어요. 목에 철사 두 겹으로 목줄을 했어요. 온 몸에 진드기 수 천 마리가 있었지요.

심장사상충도 걸렸어요. 모기가 심장에 들어와 유충을 까서 생긴 병이래요. 사람으로 치면 암 같은 것이에요. 또 아기도 낳았다고 병원 의사가 말했어요. 광복이를 만났을 때 2살 추정이었지요.

강아지는 한 살만 되면 아기를 낳아요. 그 아기는 어디 갔는지 몰라요. 광복이 아픈 것은 고치는 데 150 만 원쯤 들어갔어요.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아내는 이런 말을 해요.

제 이름이 종복이잖아요. 종복이는 버려도 광복이는 절대 안 버린다. 광복이는 책방을 좋아해서 제가 아침에 책방을 열 때 먼저 책방으로 들어와요. 책방에 손님이 오면 가만히 있어요.

짖지도 않고 살짝 다가가서 냄새만 맡아요. 책방에 온 손님이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분도 있는데, 우리 광복이와 5분만 같이 있어보면 저 아이가 왜 이리 얌전할까 하며 다가가서 말을 걸어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제 옆에도 광복이가 누워서 나를 보고 있네요. 참 행복해요. 제주도에 와서 온전히 생명 하나와 마음을 나누니까요.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대표를 만나다

제주 구좌읍 세화합전2길 10-2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

저는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이에요.

서울 명륜동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6년 동안 꾸렸어요.

제주도 구좌읍 세화리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을 3년째 꾸리고 있어요.

-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010-4311-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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