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박종민 (당선작 부부)
뉴스N제주가 주최한 ‘2022년 제3회 신춘문예’ 당선작이 결정됐다.
시 부문에는 이정은씨(제주)의 ‘다섯 개의 물의 장면’, 디카시 부문에는 박종민씨(58·의정부시)의 ‘ 부부’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이번 응모작은 시 968명의 시작품 2505편, 디카시 부문에는 645명의 작품 1817편 등 총 4322편(마감후에도 33여편 우편 도착)이 응모하는 등 시조 분야를 제외한 공모전에서 지난해보다 수량은 줄어들었지만 본사 사무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등기우편물을 받는게 매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별 사고 없이 작품 접수가 마감됐다.
지난 12월 15일 접수마감 후 코로나19로 인해 조심스럽게 도내 심사위원을 섭외 후 17일 오후부터 바로 예심에 들어갔다.
윤석산 시인(전 제주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한국문학도서관 대표)이 시와 디카시의 예심위원장과 본심 위원장을 맡아 홍창국 시인, 현달환 시인, 강정림 시인, 이은솔 디카시인 등이 함께 작품을 분류하고 1차 선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홍창국 시인과 현달환 시인, 강정림 시인 등 심사위원들은 시 부문 10편을 최종 예심으로 선정했고 디카시 부문은 이은솔 시인과 현달환 시인이 예심을 담당해 본심에 올릴 10편을 선정했다.
*시 부문에서는 총 968 명 2505 편 중 1차 예심 통과 작품 30편 대상 2차 심사를 통해 ‘곰돌이 물고’ 등을 포함한 10명의 작품 10 편을 최종 본심 작품으로 선정했다.
*디카시 부문에서는 645명 총 1817 편 중 1차 예심 통과 작품 30편 대상 2차 심사를 통해 작품 ‘철모‘를 포함한 10명의 작품 10 편을 최종 본심 작품으로 선정했다.
본심에는 시와 디카시에 대해 윤석산 시인이 단독으로 심사를 보고 결정했다.(심사평 참조) 몇몇 작품들이 수준이 높아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 심사위원장이 가장 눈길이 가는 작품을 수작으로 선택했다.
한편, 신춘문예 시상식은 오는 22일(토) 오후 2시부터 제주문학관 4층 대강당(장소 변경될 수 있음)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다섯 개의 물의 장면
이정은
1
11월, 시침은 어디로 가고 없을까
카라꽃 조화를 11년째 키우고 있어요
물 없는 화병에서 꽃대는 올라오고
하얀 꽃잎은 향기를 뿜은 듯 버성기네요
속아주어야겠어요, 꽃이고 싶어 하잖아요
빈 화병에 물을 줍니다
찰랑찰랑 아파트 지하 수면실로 타고 내려가요
보일러 아저씨 잠이 깨요
달력 한 장 젖어요
2
양수리 두물머리
검푸른 물의 흐름이 엉켜있어요
마른 장작 타는 체취, 당신을 불러들인 건 나의 실수였습니다
목으로 넘어가는 와인 한잔이 나의 독주이기를
같이 했던 시간들은 윤슬처럼 흩어집니다
물의 카페에서 멀어질 때까지
3
어쩌지, 양수가 흘러내려
생명 다한 꺼져가는 촛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녹아 굳어버린 촛농들을
무덤 삼아 수그러드는
작은 호흡
물의 끝은 여기까지
인큐베이터 안이 추워
4
어느 시인과 사랑을 했어요
더 이상 뭘 원하시는 거죠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몰라요*
5
구피의 유영이 당신의 눈동자를 흐리게 하지요
몰려다니다가도 삐진 양 꼬리치며 돌아서는
구피의 번식력이 안방을 휘젓고 있죠
앉아 있을 장소조차 없이 불어난 구피 종자들
쏟아진 물난리에 익사를 조심하세요
물의 장면, 되돌이표를 그려 넣을까요
*주. 김종삼의 시 <民間人>에서 가져왔으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몇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소감 -이정은 (다섯 개의 물의 장면)
문을 열고 들어오셨나요. 구두를 벗어요. 기다란 소파로 올라와요. 꼼지락거려도 되겠지요. 다리를 주욱 펴요. 소파는 크림색인데요.
발가락은 무슨 색일까요? 보이지 않는 색일지도 몰라요. 보이는 것이 실재하는 건 아닐 거예요.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거든요. 사람들은 내가 슬픔에서 나오길 바란다고 해요.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 입안에선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었어요. 머리카락은 슬픔 대신 Coffee Tea Drink Flower Gift Shop를 먹어요. 바구니에 담아요.
안에는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어요. 누가 넣었냐고요. 슬픔을 좋아하는 당신이잖아요. 잊었군요. 여기 동명리가 존재하는 이유예요. 망각하지 말라고요. 당신이 문을 열어 두신 것처럼요.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뉴스N제주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정진하겠습니다.
지도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다시 읽으며 새벽 문을 연다"
동행하는 문우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동생,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한 어린이가 자라는 데 온 마을이 길러주셨습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읽으며 새벽 문을 엽니다.
[프로필]
이정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석사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교육문예창작회 회원
◇시 부문 심사평..."‘해체’와 ‘일원’을 지향하는 작품들“
본심 윤석산 시인
예심위원 홍창국 시인, 현달환 시인, 강정림 시인, 이은솔 시인
한 20년 전만 해도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분들은 대개 20대 안팎이었다. 그런데 상당수가 50대 이상인 것을 발견한 우리 심사 위원 일동은 구시대의 가치관에 의한 작품들뿐이면 어찌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들 대부분이 의외로 해체적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테마 면에서는 ‘일원(一元)과 다원(多元)’, 구성 면에서는 ‘인과와 해체’, 표현 면에서는 ‘전인적(全人的) 인식과 반응’에 고루 초점을 맞추되 유기적(有機的)’인 작품을 뽑기로 합의했다. 어느 한 쪽에만 맞춘 작품들은 잘 읽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 이들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관과 시학을 마련할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황현자씨의 「현관」이 눈에 들어왔다. 생선 장수인 엄마에 대한 추억을 제재로 삼은 작품으로, 이런 제재를 택할 경우 흔히 그리움이나 효를 내세우기 마련인데, 끊겼다 다시 이어지는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상반된 욕망을 드러내 상당히 입체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주목을 끈 것은 김용천씨의 작품이다. 「탁란 청춘」은 취업을 위해 여기 저기 자기 소개서를 써 내고 기다리다가 우리 사회가 뱁새 둥우리에 알을 낳아 대신 부화시키고, 둥지까지 뺏는다는 뻐꾸기 사회라는 걸 깨닫고 절망스러워 거리로 뛰쳐나가는 젊은이를 화자로 내세운 작품이고, 「꿀벌 나라」는 어느 일벌이 꿀 따는 사람 하나가 등장했다며 다 뺏기기 전에 나눠 갖자고 제안 하자 계층 별로 분열을 일으켜 애벌레들이 다른 벌레들의 먹이 감이 되었는 데도 못 보는 모습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나정욱씨의 「다족류의 인간들에게」와 「랭보의 행보」는 화자 자신도 해체적임을 고백하는 작품이다. 앞의 작품에서는 다리가 열한 개인 사람과 열두 개인 사람들이 싸우는 걸 못마땅해 하지만, 자신도 아침에는 열두 개였다가 저녁에는 열한 개라며 그 까닭을 알려 줄 사람이 없느냐고 절망한다. 그리고 뒤의 작품에서는 ‘시는 인생을 닮았고’, 그래서 앞뒤가 없다면서 ‘행보’라는 단어를 읽다가 ‘랭보’가 생각났다는, 말장난(pun)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해체’와 ‘일원’을 지향하는 작품들“
그러나 우리는 이정은씨의 「다섯 개의 물의 장면」을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결혼식 부케나 장례식 때 관을 장식하는 ‘카라꽃 조화’를 11년씩이나 기르면서 … 생화가 아니라 조화다 … ‘빈 화병’에 물을 주고, 그 물이 흘러내려 지하 보일러실 아저씨의 잠을 깨우고, 자궁의 ‘양수’로 이어 가는 줄거리 역시 해체적이지만 새 생명의 탄생 쪽으로 지향하고, 상상과 환상과 무의식적 본능과 의지와 비판을 한 작품에 담기 위해 연작시 형식을 취하는 점은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여는데 기여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부탁드린다. 현대 사회에서 ‘일원’은 낡은 느낌이 들고, ‘해체’는 혼란스러워 절망을 가중시킬 뿐이다. 삶도 작품도 ‘통합ㆍ조절’ 쪽으로 지향하는 게 자기를 완성하는 길이니 참고하시기 빈다.
2022년 새해 아침
위원장 尹石山(글)
◇디카시 부문 당선작
부부
나를 뭘로 보고
이번에는 먼저 말하나 봐라
말하고 싶지만...
_ 박종민
◇신춘문예 디카시 부문 당선소감 -박종민(부부)
과분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당하게 "신춘문예"라는 이름을 내건 상이라니.. 당선되지 않았다고 해서 심사위원님들을
원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
눈맑은 그분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뽑아주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소감문을 쓰며 따스한 시간을 보낼 일도 없었을테니까요.
4 년전, 우연히 디카시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만만하게 보고 언제든 부르면 내게 찾아올거라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호락호락한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하는 제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이제는 하루만 못봐도 궁금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친구 잘둔 덕에 이렇게 큰상까지 받게 될줄이야..보기엔 왜소하지만 속은 꽉찬 벗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뜬금없지만, 제 인생영화중 하나를 언급하겠습니다.
짐자무시 감독의 "패터슨"...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을 배경으로 도시와 같은 이름의 버스기사 "패터슨"의 일상과 삶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영화를 보고나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도 시가 될수 있구나.. 인식을 달리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뻔한 일상도 새롭게 다가올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패터슨이 쓴 시는 대부분 간결하면서 작위성 하나 없이 잔잔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순간, 일상을 즐기기에 디카시만한게 또 있을까.. 패터슨이 디카시를 알았다면 디카시로 마음을 표현했을 거란 상상을 하며 그 울림이 어찌나 컷던지 패터슨이된 심정으로 디카시와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인식을 달리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뻔한 일상도 새롭게 다가와
이왕 즐기는거 여러사람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에 무모하게 디카시집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이후 딱 일년만에 신춘문예 당선이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수상작이 저의 대표작이 되지 않도록 계속 정진해서 상의 권위를 높이는데 일조하는 것이 당선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합니다.
수상작이 세상에 나오는데 씨앗을 제공한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저를 낳아주셔서 이런 영광스런 순간을 맛보게 해주신 부모님, 특히 지금 힘들게 투병중이신 어머니,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 고마운 막내동생, 꽃을 피워보기도전에 세상을 등진 착한동생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박종민
1964 년생
충남 보령 출생
한국외대 행정학과 졸업
◇디카시 부문 심사평..."이젠 '디카 시학(詩學)'을 마련할 때"
본심위원 윤석산 시인
예심위원 현달환 시인, 이은솔 시인
우리 심사위원 일동은 예상보다 많은 응모작들을 보고, 드디어 '디카시 시대'가 열리는구나 하고 기뻐하면서 심사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디카시의 속성과 목적을 토론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디카시가 세계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인증 샷’처럼 시상이 떠오르던 순간을 찍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포토샵으로 ‘변형ㆍ합성’하거나 문인화까지 포함시키는 그룹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토론한 결과, 먼저 시상에 따라 피사체를 찾아 찍었는가, 그의 자극에 의해 떠오른 시상에 사진을 덧붙였는가를 살핀 다음, 두 매재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결합시켰는가, 그런 결합이 얼마나 새로운 의미와 미를 탄생시켰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심사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담화든 말하는 사람의 동기에 따라 그 담화의 전체 구조와 조직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이 가장 강력해 '초두(Primacy) 작용'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자기와 관계있는 것들이 '각인(imprinting)'되어 그 '틀(frame)'에 의해 해석해 언어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살펴본 바, 김향숙씨의 「압정 공장」과 「쉼표」는 피사체가 시상을 자극해 쓴 작품이었습니다. 압정이나 쉼표 같은 솔방울과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어떻게 이런 대상을 발견했을까 섬세함에 놀랬지만, 작품 제목은 피사체의 모습에 의해 붙인 거고, 내용도 그를 보던 순간의 주변 풍경을 이야기해 시가 사진의 설명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시선을 옮겼습니다.
"이젠 '디카 시학(詩學)'을 마련할 때"
홍명표씨의 「정, 그립다」는 반대로 시상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어머니가 외상으로 연탄을 사들이고, 그 개수를 '바를 정(正)'자로 표시한 기억을 제재로 삼은 작품으로, 그 시절의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연탄재 사진을 변형ㆍ합성하고, 옛날이야기임을 암시하기 위해 흑백으로 처리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다룬 작품들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해 습관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한 작품은 박종민씨의 「부부」입니다. 이 작품은 김향숙씨처럼 천연색 사진과 시를 결합시킨 겁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토끼 두 마리가 너무 귀여워 왜 찍었을까 다시 제목을 보니까 ‘부부’더군요. 정말 털빛과 자세가 전혀 달라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썼는가 본문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나를 뭘로 보고/먼저 말하나 봐라’라고 하는 겁니다. 순간, 쿡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그러면서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자웅들의 심리와 행동 방식은 모두가 똑 같다는 걸 일깨워줘 당선작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과 시가 서로 도와 계속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어 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미래는 디카시 시대니, 응모하신 모든 분들이 함께 디카시학을 마련해 우리가 세계 문학을 이끌어 봅시다.
2022년 새해 아침
위원장 尹石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