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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숙 칼럼](3)오늘을 잇다
[양민숙 칼럼](3)오늘을 잇다
  • 뉴스N제주
  • 승인 2019.01.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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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길, 위로하는 문학3
양민숙 시인

■제주의 길, 위로하는 문학3

나이를 먹어갈수록 의식하지 못한 채 치루는 것들이 늘어간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커피 한 잔, 눈물 흘리며 보는 드라마, 챙겨먹는 건강식, 등 이미 습관으로 자리한 것들이 하루를 이어간다.

그것뿐일까?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역시 늘어간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인지라 누군가를 새롭게 만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늘 그것이 문제로 자리한다. 내가 아닌 우리라는 것은 내가 포기하고 양보해야만 하는 것 역시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안에서 고이지 않고 흐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일까?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빗금 치며 들어오는 햇살을 생으로 맞아야 하고, 먼저 걸어간 사람이 남긴 이야기도 하나씩 풀어보아야 한다. 이 길 역시 그랬다.

길 양쪽으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공존하며 하늘을 향해 발 뻗고 있었다.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이 안도감을 준다면 곡선의 길은 설렘을 준다. 아직 보지 못한 이 휘어진 허리 뒷모습은 어떨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만남과 어느 틈엔가 놓쳤을 만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큰길에서 시작해서 큰길로 끝나는 이 길은 말 그대로 도로와 도로의 사잇길이다. 3km남짓 되는 길 왼쪽으로 길을 따라 움직이는 족은대비오름도 나무 사이사이로 보인다. 이 길 양 옆으로는 깊은 꿈을 품었을 푸른 들판이 넓게 펼쳐있다. 세상의 모든 질문이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듯, 그 들판에서 수많은 질문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세상은 늘 불공평했지만, 이런 숲길에서는 모든 게 공평했다. 햇볕이 들어온 곳은 양지식물로, 빽빽한 나무들 사이 볕이 들지 않는 구석에는 음지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받은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자연의 이치가 참으로 조화롭다.

故권재효시인의 ‘끈’이라는 詩를 보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들어난다.

그대와 나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끈
행여 놓칠세라
허리에 동여맨다

미노스의 동굴 같은
어둠 속 미로 헤맬지라도
이 끈 따라가면
그대에게 이를 수 있으리
일곱 빛깔 무지개 다시 볼 수 있으리

힘들게 경작하는 일상
낙담하여 침몰해갈 때
이 끈을 통해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맥박
내 살아있음을 느끼나니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나니

아직 튼실하지 못한
끈이라 할지라도
세월의 소금기가 배어
조금씩 더 질기고 튼실해지리라
평생 놓고 싶지 않은
너와 나의 끈

故권재효시인은 이리 간절히 이어가고 싶어 했건만, 2년 전 너무도 일찍 그 끈을 놓고 말았다. 끈을 잇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너와 내가 잡고 있는 끈을 오늘도 불안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간혹 우리의 관계에 질문이 생길 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할 때 이 길에서 먼저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어떨까?
겨울, 제주 길이 주는 위로를 듬뿍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찾아 가는 길

평화로에서 광평 교차로를 따라 산록도로를 가다 보면 왼쪽으로 제주캐슬마운틴리조트가 있다. 그 맞은편 좁은 길을 따라 가면 되고 느린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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