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27)그건 내운명-정치초보, 선수를 만나다
[현명관 칼럼](27)그건 내운명-정치초보, 선수를 만나다
  • 현달환 편집국장
  • 승인 2021.10.0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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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지금 두 개의 커다란 이슈로 정신이 없다.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나라가 어지럽다. 매일 언론 등에서 쏟아지는 확진자와 백신 접종자들의 숫자에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후보자들의 토론 등이 점입가경이다. 후보자 자신의 공약을 내걸면 그것을 따져 물으며 서로가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마침 대한민국은 내년에 두 개의 큰 선거가 겹쳐서 나라가 불안정한 느낌이 들 정도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마자 지방선거로 도지사, 교육감, 도의원을 뽑는 투표가 내년 상반기까지 연속이다.

실로 드라마같은 시절이 지날 것 같다.

마침 선거 기간에 맞춰 '현명관 칼럼'의 내용도 선거에 대한 내용이다. 경영인으로서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경험이 지금, 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왜 당신은 정치를 하시는 겁니까?"

이 물음에 거침없이 답을 해야만 당신은 당당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단지, 직업으로, 명에로 그 자리에 앉겠다고 한다면 도민과 공무원, 자신에게도 불행해진다. '왜'가 정립이 되면 이제 '어떻게'가 완성돼야 한다.

이미 계획없이 자리에 앉는다면 시간이 아깝고 엄청난 난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 가다가 방향을 틀어서 갈 수 있지만 미리 계획이 없다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정치는 항해와 같다. 나침반이 있어야 하고 그 방향을 가면 게속 가는 것이다. 가다가 풍파를 맞이하면 피해서 가면 된다.

나침반이 없으면 방향을 몰라 헤매이는 것이다. 그래서 완변한 '어떻게'를 갖고 출마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 열정이나 노력 등은 자신의 리더십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치는 또한 '운'도 대단히 중요하다. 아침 일찍 기도하는 이유도 '운'을 불러오게 하는 것이다. 산에 올라 아래를 내나보거나, 바다를 보며 드넓은 마음, 시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잘 살고 항상 웃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정치인에게 물었을 때 비전있는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반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현명관 회장이 꿈꾸던 제주도민주식회사는 이루지 못했지만 앞으로 많은 정치인들이 꿈을 꿀 것이다.

실패는 그때는 아픔이었지만 나중에 보면 큰 교훈이 되는 것이다. 실패한 사람은 그릇이 커져가는 것이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회의 신'은 머리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앞에는 머리(카락)가 길고 뒤에는 머리(카락)가 짧아서 지나고 뒤를 돌아보고 잡으면 하면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기회다 싶으면 긴 머리를 꽉 잡아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인물로 새로운 대한민국, 제주도가 탄생되길 기원하면서 현명관 칼럼을 통해 자신도 세상을 살면서 실수했던 것을 되뇌이며 기회를 잘 포착해서 많은 성장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현달환 편집국장]


인터뷰하는 현명관 회장
인터뷰하는 현명관 회장

2006년 5월 31일 치러지는 제4회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기에, 현명관은 서울에 있는 재경제주도민회로부터 끝없이 재촉을 당하고 있었다.

“현회장,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요? 삼성그룹 회장이나 되었으면서 제주도를 외면하기냔 말이오!"

지역민들에게 삼성물산 회장과 삼성그룹 회장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그들에게 현명관은 삼성그룹의 회장이었고 제주를 구해줄 인물로 여겨졌다.

"출세는 했지만 제주를 위해서 한 게 뭡니까?"

지방 출신자라면 모두 이해하는 지역 정서 앞에서 현명관도 꼼짝 못 했다. 제주향우회, 중학교 동창회까지 모임에만 나갔다 하면 제주도시자 출마를 권유받았다. 처음 권유로 시작했던 부드러운 말들은 점점 강한 협박으로 변해 현명관을 괴롭혔다.

“정치는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표를 위해 거짓말도 해야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에게 허리까지 굽혀야 할 텐데…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편 그의 마음속에는 제주도민으로서 강렬한 열망도 품고 있었다. 거대 그룹을 경영하며 알게 된 돈의 메커니즘을 제주에 적용시켜 하와이를 능가하는 관광지로 만들고픈 열망이 그것이었다.

또한 제주신라호텔을 지으며 겪었던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행정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에 제주의 발전을 막고 있는 한심한 관료제를 부숴버리고도 싶었다.

8월이 되자 마침내 그는 제주도시자에 출마해서, 기업이 아닌 제주를 경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점차 기울어져 갔다.

2005년 8월 29일, 제주 한라아트홀에서 제주농업포럼 창립기념 한국 벤처농업대학 공개강좌가 열렸다.

그는 초대를 받았고 여느 강연과 다른 묘한 기분으로 제주 농업인들과 처음 만났다.

그 후 특강이 이어졌다. 10월 11일 제주 퍼시픽호텔, 가나안 농군학교 신용협동조합 초청 특강. 10월 14일 오전 제주은행 본점 4층 대강당에서 은행장을 비롯해 임직원 12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 10월 18일 오후 제주대 평생교육원, 여성 지도자 과정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제주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 11월 4일 제주시 민속관광타운 제9회 제주시농업인 한마음대회,

‘제주농업경제의 문제점과 경영전략’을 주제로 특강.

자신의 고향에서 여러 특강을 하면서 그의 마음은 확 달라졌다. 제주 도민들이 자신의 말에 경청하며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봐 줄 때, 그의 마음속에서는 도지사를 해야 한다는 강한 울림이 올라왔다.

특강이 끝나갈 무렵, 현명관은 자신의 출마 결심을 언론에 알렸다.

또한 삼성물산의 회장이었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에게도 자신의 결심을 보고했다. 자신감도 넘쳤다. 이 정도의 경력과 능력이면 도지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인을 중심으로 선거운동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달 후 첫 여론 조사가 나오자 현명관은 얼굴빛이 바뀔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2006년 1월 3일 제주 도지사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 김태환 32.2%, 진철훈 제주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16.8%,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 8.3%, 강상주 서귀포시장이 6.2%.

“2등도 아니고 3등이라니…”

현명관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래가지고는 전략공천도 명분이 없고 경선해서 후보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현명관은 11월에 출마 선언을 하고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 중 고민하다, 경제를 살리려면 역시 보수당이 맞다고 판단하여 한나라당 후보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누구와 어떻게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이게 선거는 5개월도 안 남았다.”

그는 제주도 출신 국회의원 현경대를 만났다.

현경대 전 의원은 한 여성을 소개시켜 주었다.

다 본격리 건들은 한 수성을 소개시켜주었다. 그 여성은 지금 한나라당 제주도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명관은 반신반의하며 제주에 내려갈 테니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약속을 잡았다.

20006년 1월 중순 제주는 싸늘했지만 육지와 비교하면 봄날씨 같았다.

현명관이 소개받은 전영해는 한나라당 제주도당의 디지털위원장이었다.

그녀는 정치적 멘토이자 은인인 현경대 의원이 삼성물산 회장과 약속을 잡아서 하는 수 없이 약속 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현명관은 이미 언론 보도에서 내년 도지사 선거의 예상 출마자로 지목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제주도당의 디지털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오해를 사면 위원장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직함으로, 9년을 저임금으로 봉사하며 공을 들인 제주도의회 의원의 꿈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계주도당의 각 분과 위원장들이 도의원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서른둘에 아이를 둘이나 둔 그녀는 꼭 도의회에 진출하고 싶었다.

의원이 된다는 것은 이제 막 결혼 생활이 파국을 맞아 홀로되어, 가장 역할을 해야만 하는 그녀에게 생계 문제를 해결해 줄 확실한 직업이었으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오랜 시간 꿈꾸던 분야로 첫 발을 내딛는 일이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처음 만난 사람과 비밀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났으며, 지금 당장 몇 사람을 때려죽일 듯 화가 난 권력자도, 1분이면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자칭 타칭 제주 마당발 그녀는 고향을 떠난 지 40년이 되어, 현지 인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정치 초보자를 만나서 과연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나, 오분자기 전문점에 들어와 방문을 열고 현명관과 현경대 의원에게 인사하면서도 고민이 떠나질 않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영해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그녀 특유의 친화력으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반갑습니다.“ 거기까지였다.

오랜 시간 CEO로만 살아온 현명관은 자신을 크게 도와줄 사람 앞에서도 뻣뻣했다.

뜨거운 오분자기를 먹으며 시답지 않은 주제로 몇 마디 떠들던 그녀와 현명관과 동석자는 금세 화제가 떨어졌다.

침묵 속에서 뜨거운 국물을 먹다 1~2명은 분명 입천장을 데였으나, 아무도 입천장을 데였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분위기 띄우는 데 선수인 그녀였지만 왠지 오늘은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후식 타임이 되자 세 사람은 차를 마셨다. 현명관이 먼저 자신의 이이기를 풀어놓았다.

“제주는 제주 주식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녀는 다소 황당한 이 주장에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정치를 전혀 모르시네” 하지만 신선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비전이 아니었다.

삼성그룹에서 회장씩이나 지낸 사람이면 분명 일반인과 다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올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녀가 보기에 현명관은 그렇지 않았다.

동네 복덕방에서 만났다면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소일거리 찾아 헤매는 이웃집 김씨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얼굴에 광채도 없었고 풍채도 왜소했다. 현명관은 선거 초보자로서 스트레스가 컸던 탓인지 지칠 대로 지쳐 초라한 모습이었다. 여기에 화룡정점은 현명관 회장의 헤어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느 미장원에서 염색을 한 것일까? 젊어 보이려고 급하게 염색하다 저렇게 되었나? 아 촌스러워! 회장이면 돈 좀 쓰지 너무 싸구려틱한 브라운 컬러다. 제주시 흑돼지 미장원이 염색은 죽이는데, 거길 알려줄까? 아니야…. 누구나 이 판에 처음 들어오면 저런 모습이 되지….“

현명관도 뭔가 선거 묘안을 전영해 위원장에게 듣기를 기대했으나 말을 아끼는 그녀를 보며 실망했다.

보름이 지나 2월이 되었다. 선거 120일 전이라 현명관도 예비 후보 등록을 마치고 명함을 뿌릴 수 있게 되었다. 현명관은 특유의 성실과 돌파력으로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뭔가 체계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선거꾼들이 현명관의 사무실에 바글거렸다. 선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돈만 많다고 하는 그룹 회장 출신이 출마를 한다니… 선거꾼들이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호구는 없었다.

“회장님 여기서는 돈 좀 쓰셔야 합니다.”

“이 사람 잡으면 한림읍은 끝납니다.”

“볼 거 없어요. 성산포! 여기 가서 휘젓고 올 테니 탄약만 장전해주세요.”

“다들 이렇게 선거하거든요. 법 지키며 어떻게 당선되나요. 회장님은 너무 모르신다.”

“이래가지고는 한나라당 경선도 통과 못해요. 상대 쪽에 선수가 있는데, 영입해 올까요? 돈이 좀 들지만….”

완벽한 오합지졸과 난장판의 샘플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현명관의 선거운동 사무실이었다.

그렇게 명석한 판단을, 삼성물산을 경영하며 수없이 했건만 선거판에서 그는 혼이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며 돌아다녔으나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지지율은 좀체 오르지 않았다.

제주도 푸른 밤을 바라보며 현명관은 평소 잘 먹지도 못하는 맥주를 한 캔 땄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어 믿을 수 있는 멘토 A에게 전화를 했다.

"현명관입니다. 이거 어쩌면 좋을까요?“

"선수가 필요합니다.“

"이승엽 같은?“

"아니죠. 김응룡 같은 전략가가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죠."

“이미 만났잖아요?"

"누구요? 아 전영해씨? 그 사람은 김태환 지사 참모인데 어떻게 빼오나요. 게다가 이번에 내가 입당했다고 김 지사는 한나라당도 탈당할 기세인데?"

"하하 현회장님도 참. 이래가지고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생각을 하시나요?"

그러면서 멘토 A는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 이야기를 거룩하게 꺼내며 한마디 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진흙탕일 때에는 발을 씻으라는 말 못 들어 보셨나요? 여긴 그런 거 없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데려오세요. 그래야 게임이 됩니다."

현명관은 전화를 끊으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두 번째 맥주 캔을 따면서 생각했다.

“이건 기업들 경쟁보다 더 하군. 완전히 진흙 밭이네.”

치세를 만나면 마땅히 도리에 맞게 의롭게 해야 하고 난세를 만나면 마땅히 둥글둥글 원만하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이 타락한 말세에 처해서는
방정함과 원만함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처치세 의방 처난세 의원
處治世 宜方 處亂世 宜圓
처숙계 지세 당방 원병용
處叔季 之世 當方圓並用
                           채근담 /전집 제50장

가장 비싼 경기 -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 니, 밭 전, 싸울 투, 개 구,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이다. 정치는 그 자체가 싸움판이고 한쪽이 죽어야 끝이 나는 잔인한 경기다.

또한 그 어떤 게임보다 점수를 많이 내야 이기는 경기다. 야구가 점수를 많이 내봐야 10점 정도고 고스톱도 100점에서 많게는 1천 점이지만, 정치라는 게임은 10만 점, 20만 점을 내야 이긴다.

정치는 경기 시간도 가장 길다. 어떤 스포츠나 게임도 48시간을 넘기기 어렵지만 선거는 3달 이상 진행되며 물밑 작업까지 하면 6개월이 훨씬 넘게 걸린다.

출전비도 가장 비싸서 도지사 선거는 3천만 원, 국회의원은 1500만원을 내야 후보 등록을 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게임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 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싸움이기도 하다.

이것이 선거고 민주주의다. 처칠의 말대로 ‘실로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도되어 온 다른 모든 형태의 제도를 제외하면 최악의 정부형태(Indeed it has been said that 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for all those other forms that have been tried from time to time.)’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싸움에서 승리한 개는 진흙 밭을 평정하고 세상을 바꿀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이 내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였다.

제주를 바꿔 하와이를 능가하는 동양의 보석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룹 회장이라는 아름다운 비단 옷을 벗고 끔찍한 진흙 밭 개싸움에 들어서는 것은 쉽게 내키는 일이 아니었지만 내가 경험한 두 가지 사건은 끝내 나를 진흙 밭 투견으로 만들고 말았다.

첫 번째 사건, 사라질 뻔한 붉은 지붕

1990년 7월 1일,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2만 6천 평 부지에 영화 '쉬리'의 촬영지로 유명한 제주 신라호텔이 완공되었다.

신라호텔 사장으로서 임직원들과 기쁨을 누렸어야 했지만 건축 과정에서 겪었던, 3년 동안의 분노와 안타까움이 쉬 가라앉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86년, 유럽풍 리조트식 호텔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호텔을 짓고자, 신라호텔의 임직원들과 나는 1988년 3월 착공을 목표로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전 세계 호텔을 돌아다니며 최고의 컨셉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때 이인희 신라호텔 고문(이병철 회장의 딸)이 고민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아이디어 하나를 주었다.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가면 LA와 샌프란시코의 중간 즈음에 ‘스페니쉬 베이’라는 호텔이 있어요. 여기를 한번 보고 오시죠?"

나는 몇몇 임원들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가, 영화 속에서 자주 나있던 서부 해안 도로를 굽이쳐 돌며 ‘스페니쉬 베이'를 찾아갔다.

캘리포니아 1번 해안도로는 제주의 해안 도로를 연상시키며 멋지게 바다를 따라 휘돌아 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붉은 기와지붕의 멋진 호텔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가면서 넛을 잃고 점점 다가오는 ‘스페니쉬 베이 호텔’을 감상했다.

오른쪽 짙푸른 태평양 바다를 두고 높은 언덕 위에, 스페인풍의 붉은 지붕을 얹은 지중해식 호텔 건물은 우리나라 제주 해안에 들어설 제주신라호텔의 미래였다.

당장 건물을 설계한 회사와 내부 인테리어를 책임진 사람을 찾아냈다.

귀국 후에는 중역 회의를 거쳐, 우리가 보고 온 남캘리포니아의 붉은 스페인 지붕을 얹은, 지중해 스타일의 컨셉으로 제주신라호텔을 짓기로 합의했다.

제주 중문단지에 위치한, 호텔의 입지도 매우 훌륭했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는 여미지 식물원, 주상절리, 천지연 폭포, 천제연 폭포가 있었다.

고향 제주에 내가 꿈꾸던 모습의 호텔이 들어서고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까지 유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이 터졌다.

오직 깔맞춤만 인정

"다 좋은데 이 색깔은 안 돼. 청기와로 해, 중문 골프장과 색깔을 맞춰야 보기 좋잖아. 붉은 기와라니 이게 뭐야?"

이 말은 그룹 총수가 한말도 아니고 이인희 신라호텔 고문이 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제주 중문 관광단지 관리사무소의 B소장이 호텔 신축 계획서의 접수를 거부하며 한 말이었다.

그는 군 출신이었는데, 모든 군 출신들의 명예를 짓밟는 행동을 우리 신라호텔 임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군대처럼 모든 것을 녹색으로 깔맞춤해야 직성이 풀렸는지, 얼토당토않는 이유를 들어 중문단지 내 건축물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그에게 스페인 풍 건물 컨셉을 아무리 설명해도 민간 기업을 부패한 적(敵)들 쯤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사병들을

골려주며 쾌감을 느기는 사디스트의 본성에 충실한 것인지, 여러 번 통사정을 하고 설명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것이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청렴결백의 표상인 양, 꽉 막힌 사람처럼 행동했다.

보다 못한 내가 한미디하고 말았다.

"이게 누구 겁니까? 당신들이 뭘 안다고 기와 색을 바꾸라 마라 하는 겁니까? 이런 디자인을 찾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십니까?"

이 한마디로 B소장과 신라호텔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나중에 서울 교통국장에게 설명을 하고 장관 보고까지 올라간 후 겨우 건축 허가를 받아냈지만, 수천억이 들어가는 사업이 한 사람의 우매한 갑질에 농락당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구나 하는 것을 뼛속 깊이 통증을 느끼며 배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문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를 만드는데, 관청을 들락거리며 1년 넘게 시달렸다.

완공후에는 준공검사가 나지 않았다.

아래 신문에서 7층이라고 한 것은, 경사면의 흙을 제거하여 지하층이 빛이 들어오는 지상 층처럼 된 것을 사업승인 위반이라고 감사원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래 2개 층 앞에,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온통 가로막는 흙담을 쌓아 겨우 검사를 통과했다. 눈 가리고 아웅도 이런 아웅이 없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공무원이라는 것을 저리게 느꼈다.

“우리가 이래선 안 된다. 이런 병폐를 고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더 발전할 수 없다. 아니 망할 수도 있다.”

그때의 울화는 아직도 내 몸속 어딘가에서 떠들고 있지만, 2005년 제주 도지사 선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꺼번에 요동치며 출마를 고민하게 했다.

도지사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니 전부 공무원 출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김태환 현 지사 제주특별자치도 기획관리실 실장, 제주특별자치도 내무국 국장 출신. 진철훈 열린우리당 후보 서울 도시계획국장 출신.

예비 후보들도 하나같이 전부 관료 경력을 쌓은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무원 출신들은 문제가 안 되게 옹벽을 쌓아 준공검사를 넘기는 재주가 있을지 모르지만 발전 전략이 있거나 비전이 있을 리 만무한데, 심지어 제주도의 대통령인 지사까지 하다니… 내 고향을 이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가?”

이런 안타까움이, 제주만이라도 새롭게 탄생시켜 부유하게 만들고 발전의 표상이 되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전투구의 세계지만 그곳에 들어가 싸워 이겨보자는 결심을 하게 했다.

두 번째 사건, 책임질 사람이 생기다.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 대통령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에 출마하면 자신이 내려오고 싶어도 내려올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직업을 때려치우고 달려오는 사람, 무보수로 몸을 바치며 돕는 사람, 상대방의 온갖 불이익을 견디며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후보자는 반드시 승리를 하여 이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걸 모두 무시하고 도지사보다 훨씬 엄청난 규모의 대선 후보 자리를 내려오는 것을 보고, 과거 내가 마했던 제주지사 일이 떠올랐었다.

내 정험에 비추어 본다면, 출마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나를 도와주는 무수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더구나 나를 위해 뛴 많은 사람들은 좁은 제주지역에 계속 살 사람들이고 그들은,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와 위신이 무너지면 이후의 삶이 고달파진다.

특히 지지하는 후보가 완주도 안 하고 내려오면, 멸사봉공한 지역 인사들은 선거에 진 것보다 훨씬 더 큰 내상을 입게 된다.

특히 그 지역 인사 중에 나 때문에 자신의 직업이 날아간 경우가 생기면,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선을 위해 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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