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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관 칼럼](26)삼성전자가 소니를 이긴 비결
[현명관 칼럼](26)삼성전자가 소니를 이긴 비결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9.25 0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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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천재 한사람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

“21세기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누가 먼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이를 선도하는냐에 달려 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류 회사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혁신해 변해도 잘해야 일점오(1.5)류 회사다. 철저하게 변해야 일류가 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농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개성화로 간다.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다.”

앞서도 현명관 회장이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삼성전자의 핵심 경영진과 현지 주재원 200여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킨 호텔로 불러 신경영을 선포한다. 바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건희 회장의 명언을 보면 그의 마인드를 읽을 수 있다. 절실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집념이 보인다.

이건희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인 일본을 배우라'는 이병철 회장의 권고로 유학을 갔다.

이미 일본에는 장남인 이맹희 회장이 도쿄대학교 농과대학에, 차남 이창희 회장은 와세다대학 경제학부에 재학 중이었는데 대학생인 형들과 달리 초등학생이었던 이건희 회장은 학교 내에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됐고, 이는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격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당시 프로레슬러 역도산 선수가 '당수' 기술로 일본 선수들을 쓰러뜨리는 경기를 TV로 보며 레슬링에 매료돼 후일 레슬링 선수로로 지냈다.

이건희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3년간 날밤을 새며 약 1300여편의 영화를 감상했다는 일화는 유명한데 여기서 집중, 완전히 끝장을 보는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인 현명관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일본의 전자제품을 이긴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회사를 초일류를 만들기 위해 난관을 이겨내고 뛰어 넘을 수 있기 위해서는 철저한 기획과 실행이 필요한 것이다.

현명관 회장이 삼성이라는 거대한 그룹에 발자국을 남긴 것은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으로서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 30년 만에 삼성전자의 매출을 40배 성장시킨 400조원까지 끌어올리는 데에는 이처럼 혹독한 경영철학들이 나왔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 눈을 어디에 맞추고, 10년후 미래의 세상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바꾸려고 하는 노력,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거물 그룹 회장들은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현명관 회장이 냉철한 마음으로 반드시 일본을 이기라는 권고는 그래서 뜨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벌레가 '대충'이라고 한다. 삼성은 이 대충을 아예 들여놓지 않았다는 것. 완벽함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아름다움이 소비자의 마음을 샀다는 것이다.

지금도 개인 소상공인들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대처하면서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블루오션을 찾고 있다.

삼성이 소니를 이긴 것처럼 지금의 기술에 더 철저함과 꼼꼼해지기를 추가한다면 소비자는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현명관 칼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 이길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현달환 편집국장]

인터뷰하는 현명관 회장
인터뷰하는 현명관 회장

 

신경영을 선언하고 그룹 개혁에 박차를 가한 지 1년이 지났다.

뭔가 변화는 시작되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없었다.

삼성전자의 각종 상품은 소니에 한참 못 미쳤고 이건희 회장은 답답한 마음에 그날도 집무실에서 줄 담배를 피우며 일본을 이길 방법에 고심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현명관 비서실장을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현실장, 당신은 일본에서 유학을 했었죠?"

"네."

“그럼 말해보시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일본 소니를 누를 수 있겠소?"

“지금처럼 계속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들과 우리가 뭐가 달라서 이렇게 차이가 난 건지 얘기해 보시오."

"그럼 좀, 길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담배를 끄고 현명관 비서실장의 말에 귀를 기을였다.

“사토 규이치로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현명관은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알아채고 자신의 유학 시절 겪었던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다.

현명관은 여름방학을 맞아, 같은 학교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친구의 이름은 사토규이치로였다.

그는 같은 게오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사토는 졸업 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를 물려받기로 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였다.

그의 집은 센다이 역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었다. 현명관은 초대받은 날을 며칠 앞두고 사토로부터 깨끗하게 정리된 도표 한 장을 받았다.

"사토! 이게 뭔가?"

"응, 자네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 필요한 스케줄 표일세."

놀랍게도 그 도표는 마치 방송국의 프로그램 진행 큐시트처럼 현명관이 우에노 역에서 타고 올 열차의 시간표, 편명부터 센다이 역에 도착한 후 사토가 차로 픽업할 장소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토의 집에 도착하면 진행될 일들도 시간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3시 아버지와 인사, 3시 30분까지 짐 정리 및 환복 등 깨알같이 박 2일 동안의 스케줄이 여행사의 그것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현명관은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무슨 일이든 철저한 일본이 무섭기까지 했다.

이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 현명관은 이건희 회장에게 한마디를 붙여 일본이 우리보다 강한 부분을 설명했다.

"기본을 지키는 철저함입니다.”

이야기를 다 듣자마자 이건희 회장은 무릎을 치며 즉각 결단을 내렸다.

“이걸 모든 계열사에 전파하시오. 우리도 모든 일에 철저하면 되는 거 아니오.

즉시 이 내용을 정리해서 사장들에게 전달하고 모든 공정, 기본이 되는 시스템부터 꼼꼼하고 철저한 자세로 임하라고 하시오.”

현명관은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실행에 옮겼다. 그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일본의 소프트파워 2. 작은 일도 대충 사지 않는다. 기본부터 철저하게 지킨다. 열정, 에너지, 창의력,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일심동체가 되는 힘은 우리가 일본을 앞선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기본부터 다지는 철저함이다. 우리가 철저해진다면 우리는 일본을 잡을 수 있다.

2014년 3월3일 니케이 비즈게이트에 실린 도쿄대 모노츠쿠리 경영 연구 센터 특임 연구원 요시카와 료조의 기고문'삼성의 약진을 지탱한 세가지 혁신'.
2014년 3월3일 니케이 비즈게이트에 실린 도쿄대 모노츠쿠리 경영 연구 센터 특임 연구원 요시카와 료조의 기고문 '삼성의 약진을 지탱한 세가지 혁신'.

삼성전자는 그때부터, 더 철저해지고 꼼꼼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단순히 기술 개발을 열심히 한다고 일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게 된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우리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건희 회장은 동물적으로 알았고,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약점 보완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로부터 8년 후인 2002년부터 삼성전자는 결국 이건희 회장의 소원대로 기업가치 면에서 소니를 이기기 시작했다.

◆현명관의 21세기 채근담菜根譚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 이길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은 일단 고노야로(적개심)를 버리고 관대해져야 한다.
젊은이여! 냉철한 마음으로 반드시 일본을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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