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22)비리의 값 - 군수와 타자수
[현명관 칼럼](22)비리의 값 - 군수와 타자수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8.2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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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감사원이라는 직업은 청렴보다 더 한수위에 있어야할 위치는 자명하다.

그러나 여기도 오래 머물러 있으면 썪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물에는 마지막 통로로 부폐한 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는 인정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관대한 게 인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비리를 저지르면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칼을 빼드는 게 '법대로'인 것이다.

우리는 법규를 어릴수록 잘 지킨다는 것은 교육의 힘이다. 어릴 적에 배운 교육은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머리가 커지고 눈치를 알기 시작한 후부터 법규를 잘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그렇게 변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사람이 바쁘게 살아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굳이 바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사회가 그렇게 야기시키고 있다.

과거의 시간보다도 지금의 시계가 더 빨리 달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척이나 바쁜 것이다.

현명관 회장이 느끼는 그러한 감정의 변화들, 그는 무엇을 설명하려 했을까?

여의치 않은 조건속에서 그는 감사원의 업무를 파악하면서 크게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엔 감사원이 좋게 느껴지다가 결국, 자신이 감사원의 생활이 체질에 안맞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현명관'이라는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바르게 전개되는 내용이 더 궁금하다. 더욱더 많은 내용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비리의 값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주]  

현명관 회장(좌)
현명관 회장(좌)

3국 기동반장 현명관은 차분히, 봉투를 묶고 있던 끈을 뱅뱅 돌려 풀었다. 경상도로 향하는 열차는 덜컹대며 무려 2시간 이상 리듬감 넘치게 흔들렸고 그 진동에 몸을 싣고 잠을 청하는 승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계란을 까먹는 등 각자 할 일에 분주했다.

아무도 기동반장 현명관의 봉투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주변을 두루 살핀 현명관은 조용히 봉투 안 갱지로 된 명령서를 꺼냈다.


- 경상도 ㅇㅇ군, 군수에 대한 첩보

A군수에게 다음과 같은 비리 혐의가 있는 것으로 첩보가 입수되었음.

1. 그린벨트 지역에 건축허가를 내주고 지목 변경도 해주어 사업 시행자에게 큰 이익을 준 점.

2. ○○군청의 B양은 1년 전 군수의 타자수가 되었는데, 둘 사이가 불륜이라는 첩보가 있음. 이를 철저히 조사하시오.


감사원은 1971년 7월 29일, 신임 이석제 감사원장이 부임하면서 강력하고도 실질적인 힘을 얻어 개혁적인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감사원의 분위기도 이제는 제대로 비리를 색출하여 공무원 사회를 일신하자는 열기로 가득 찼다.

당연히 그런 시절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현명관은 세상 그 누구라도 잡아넣을 기세로 감사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때마침 그는 암행어사 같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3국 기동반에 배치되었다.

감사원의 의기 높은 고시 출신자들은 신이 났다. 하늘의 새가 우리 속에 갇혀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날개와 깃털을 달고 있는지 모르던 시간이 흐르다가, 갑자기 우리가 열리고 저마다 하늘로 솟구쳐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하늘을 날게 되자, 현명관도 그제야 자신의 삶의 목적이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그는 늘 종교 의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기동반장으로서 '임무 명령서'를 열차 안에서 열어 보고 현지에 내려가 감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개작두를 휘두른 판관 포청천처럼 지방의 비리 공무원들의 목을 사정없이 날렸다.

기동반에는 특별한 업무 수칙이 있었다. 출장 명령이 떨어지면 아무것도 모른 채 지령이 담긴 봉투만 받고 기차에 올라야 했다. 기차가 출발하면 그때야 명령서를 열어볼 수 있었다. 즉, 사전에 감사대상자에게 첩보가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전화도 삐삐도 카톡도 없던 시절이라 열차만 타면 더 이상 기동반이 누구를 추적하고 누구를 잡아넣기 위해 움직이는지 대통령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출장 명령서는 좀 야릇한 구석이 있었다.

"타이피스트와의 로맨스라……."

현명관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 여성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하다 불륜까지 갔을까? 군수가 재주도 좋네. 아무튼 비리부터 캐 보자. 근데 불륜에 대해 어디까지 물어봐야 하나? 주로 어떤 여관에 다녔냐? 아니야 이건 좀 지나친 질문인데…."

그날 오후 경상도 군청에 암행어사가 떴다. 감사원 특별기동반 신분증을 내 보이며 현명관 일행은 군청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감사원 3국 기동반장 현명관입니다. 잠시 일을 멈추고 감사에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암행어사 출두와 다를 바 없었다.

군청의 공무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들이닥친 감사관들을 일제히 쳐다봤다. 공무원들의 눈빛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여기서 잘못걸리면 그대로 파면도 당한다.

시골 군청에서 마냥 편하게 생활했던 공무원들에게 자료 하나, 말 한마디의 실수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날벼락처럼 떨어졌다. 여직원 한 명이 현명관에게 다가왔다.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회의실로 가시죠."

“됐습니다. 군수실이 어딥니까? 군수님 먼저 뵙겠습니다"

"군수님은 지금 외출 중이십니다."

“그래요? 일단 방으로 안내해 주세요."

아무 통보도 없이 군수의 외출 여부도 따지지 않고 급습한 감사원 팀은 살벌한 분위기로 군수의 방으로 향했다.

“거기, 서류 손대지 마시고 그대로 두세요!"

동행한 감사관 한 명이, 군청 공무원 중 한 사람이 책상 위 서류를 서랍에 넣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차가운 분위기가 3층 군청 사무실 전체를 뒤덮었다. 현명관과 일행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군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입구에 임무 명령서 두 번째 항목에 있었던, 20대의 젊은 여성 타자수가 앉아 있었다.

짧은 검은색 스커트를 입고 있던 이 여성은 일행을 보고 단아하게 천천히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했다.

현명관은 잠깐 얼굴을 본 후 군수의 책상으로 갔다. 그러나 현명관의 관심은 1초 동안 마주쳤던 여성 타자수에게 가 있었다.

"미인이다! 도대체 어떤 군수이기에 이런 대담한 사랑놀음을 한단 말인가? 혹시 잘못된 정보는 아닐까?"

감사팀은 군수의 책상과 서랍을 가리키며 필요한 자료를 제출받았다. 서류 더미들이 상자에 차곡차곡 담겼다. 그렇게 감사할 서류를 챙긴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급하게 군수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벌어진 상황을 보고 그는 적잖이 놀랐다. 감사원 3국 기동대는 신분을 밝히고 서류를 조사하기 위해 가져가겠다고 군수에게 말했다.

그리고 현명관은 조사를 위해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와 줄 것을 군수에게 요청했다.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네, 저희 숙소에 가서 편하게 조사받으시면 됩니다.”

몇 시간 후 군수가 찾아왔다. 현명관 일행은 군청에서 3km 떨어진 장급 여관에 머물며 조사를 진행했다. 여관에 3국 기동대의 임시사무실이 차려졌다.

한쪽 방에서는 군수의 비리 혐의가 있는 서류를 꼼꼼하게 뒤졌고, 다른 방에서는 현명관의 강도 높은 대면 조사가 이루어졌다. 앉은뱅이 책상 1개와 방석 두 개, 재떨이와 주전자를 의지해 현명관은 10시간 이상 군수를 다그쳤다.

군수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온갖 구실을 달아 자신의 행위가 적법했음을 주장했다.

일단 군수를 돌려보내고 다음날 다시 불렀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현명관도 지쳤고 군수도 지쳐갔다.

3일째 되던 날 아침, 군수가 여관방에 들어와 앉았고 현명관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아껴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군수님, 이를 동안 조사받으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부인하시면 저도 이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이 일하는 미스 박이 타자수죠?"

적잖이 놀란 기색이 되어 군수는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두 분이 무슨 관계입니까? 왜 갑자기 건축과에 있던 사람이 군수님 비서가 되었나요?"

"그야 타자수가 필요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현명관은 군수를 잠시 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군수의 눈동자는 이미 불안에 흔들리고 있었다.

“계속 부인하시면 다른 사람에게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격자가 있습니다. 두 분이 사무실 말고 어디를 다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거 공무원 윤리 규정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군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5분 이상의 침묵이 방안에 흐른 후 군수가 입을 열었다.

"감사관님, 제 잘못입니다. 한 번만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그 친구 일은 사람들에 알리지 말아주십시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처녀고 저도 가정이 있으니 다른 것이 안 된다면 이 부분만큼은 덮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현명관은 담배를 두 개비 집어 들고 군수에게 하나, 자신도 하나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3일 동안의 긴 조사 끝에 기동대는 대어를 낚았지만 처음 열차를 타고 내려와 비리를 밝혀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열정은 어느새 싸늘히 식어있었다.

대신 그 어렵다는 고시 패스로 군수가 된, 전도 유망한 가장 하나를 짓밟아 죽이는 일을 실행해야 한다는 착착함과 허탈함에 생각이 많아졌다.

두 사람의 담배 연기로 여관방은 금방 뿌옇게 되었고 현명관은 환기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며 말했다.

“여자 문제는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일은 원칙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군수는 파면 당했다.

기동대원들은 이번 원정 출장도 성공적이라 자평하며 통쾌해 했다.

그러나 상경하는 열차 안에서 현명관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이 일을 맡아서 할 때와 달리, 한 명 한 명 비리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 수가 점점 쌓이자, 쓰디쓴 회의감이 울컥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구나 흠결은 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람들을 단죄하고 인생을 끝나게 하는가?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만날 이렇게 잘했니 못 했니 만을 따지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 나에게 이 일은 맞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을 때 기동대원들이 맥주를 마시며 떠드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어왔다.

"하, 그 여자 늘씬하고 미인이던데, 그 군수 진짜 좋았겠어?"

"하하하.”

현명관은 그 소리가 불쾌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 똑같은 놈들이다. 걸린 사람과 아직 걸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

맞지 않는 못

잘못을 저지른 공무원들에게 나는 저승사자였을 것이다.

내가 감사관으로 출동해서 각종 서류를 뒤지고 숫자 하나하나를 대조하고 심지어 항공사진과 지도와 비교하면서 토석 채취 문제를 지적했을 때, 그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한 사람 두 사람, 옷을 벗기는 숫자가 늘어나고 피눈물을 흘리며 직장을 떠나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점점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제아무리 정의의 이름으로 법을 집행한다 해도, 천성적으로 이런 일들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죽이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옛날에는 참형에 처했다.

그 참형을 실행한 사람들이 망나니다. 망나니는 칼을 휘둘러 단칼에 죽어 마땅한 자들을 처단했지만, 그도 처음에는 괴로워 술 마시며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형을 집행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닭이나 돼지를 도축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게 무감각한 칼질을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정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물론 감사관은 그런 망나니와는 다른 종류의 일이었으나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한 사람의 안정된 직장을 날려버리는 일은 산 사람의 목을 치는 일과 다름없었다.

가난을 알았던 나는 해직된 공무원들이 자꾸 떠올랐다. 더욱이 시간이 흐를수록 칼질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직접 만들고 진행하는 것인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일들이 옳은지 그른지만 판단하고, 그중에서 잘못된 점만 철저하게 찾아내어 벌주는 역할을 하니 답답했다. 과연 나에게 맞는 일인지 아닌지 서서히 갈등하게 되었다.

이런 갈등의 이면에는 감사원 부임 초기에 있었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나는 오랜 시간을 청렴한 감사관으로 행동하며 살아왔으나 그렇게 된 것은 밝히기 부끄러운 경험 때문이었다.

감사원에 처음 와서 초급 감사관으로 일을 배울 때의 일이다. 지방 출장을 가서 여관에 머물며 현지 세무 공무원들의 비리를 밝혀내고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그 일을 맡았었다. 여관에서 공무원들 조사를 마치고 돌려보냈는데, 그들이 떠난 후 나는 여관방 이불 밑에서 돈뭉치를 발견했다. 지금 돈으로 2백만 원 정도였다. 너무도 놀라서 존경하는 감사관 사수에게 달려가 돈을 보여주며 물었다.

“선배님 이런 것이 이불 밑에 있는데 이걸 어찌해야 하나요."

“지금 자네가 조사하고 있는 사안에 징계 거리가 있나?"

"아니요, 그런 정도는 아니고 주의 정도에 해당하는 잘못은 있었습니다.”

"하하하, 그러면 받아 두시게. 별 상관없네."

꺼림칙했지만 그 돈을 받아서 집에 갖다 주었다. 이런 정도는 해도 되는 것인가 갈등을 했지만, 당장 한 달 월급의 절반 이상이 들어, 오니 내 마음도 흔들렸다.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던 차에 돈을 갖다 주니 아내도 반겼다. 그걸로 돈 받은 일은 별 무리 없이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후 벌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이주일 감사원 원장이 모든 직원들을 감사원 건물 옥상으로 불러올리고 엄중한 훈계를 했다.

“요즈음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지방 감사를 떠난 감사관들이 피감기관 공무원들로부터 돈을 받는 일이 있다고 한다. 이로써 피감기관으로부터 원성이 자자하다는 첩보가 사정기관으로부터 들어왔다.

실제로 여러분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발본색원하여 반드시 그런 부패한 감사관은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 앞으로는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주의해 주기 바란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모든 피가 발바닥을 통해 땅으로 빠져나가는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합격한 고시던가? 얼마나 동경하던 감사원이던가?

이 모든 것이 돈 몇 푼 받은 것으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았고 완전히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역시 나에게 뇌물 수수나 비리는 어울리지 않는구나, 마누라 팬날 장모 온다더니 나 같은 사람은 바로 걸리나 보다. 절대로 비리를 저지르거나 돈을 받아선 안 되겠다"하는 결심을 괴로움 속에서 일주일 내내 뼈에 새겼다.

뇌물 수수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철저하게 포청천처럼 살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그날 감사원장에게 훈계를 듣지 않았거나, 노련하게 악습이 몸에 밴 1~2년 후에 그런 말을 들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되어 내가 파면시킨 공무원들 중 한 명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어찌 보면 우연한 사건 하나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옷을 벗고 비리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여 파국을 맞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포청천처럼 청렴을 신조로 살아가면서도 나는 늘 돈에 대한 유혹에 시달렸고 혹시 내가 이 유혹을 못 이기고 뇌물을 받게될까 두려웠다.

박봉에 어려운 가정 형편, 거기다 인간관계 때문에 봐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이 겹친다면 과연 지금처럼 계속 깨끗한 공무원이 될 수 있을까? 나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었다.

이런 두려움을 벗어나는 방법은 빨리 고위 공직자가 되어 월급을 많이 받는 길뿐인데 감사원은 다른  곳보다도 인사적체가 심해서 승진이 지독하게 느렸다.

부당거래

여기에 한 가지 더, 감사관 일에 회의감을 일으킨 사건이 하나 있었다. 서울의 어떤 구청이 하천을 덮고 그 위에 상가를 분양하는 복개천 공사를 진행했는데, 감시를 하면서 살펴보니 문제가 있었다.

용도변경 등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무리한 분양과 건축 허가를 구청이 내주었던 것이다. 그 사업은 최고의 권력 기관인 중앙정보부의간부가 구청에 압박을 넣어 진행하던 일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중정의 간부가 나서서 불법을 저지르고 태연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감사원이 이 사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처리하며 불법 건축물 철거를 명령하자, 중앙정보부는 즉각 반격을 시작했다.

중정은 세무서의 공무원들을 탈탈 털었고 감사관들이 세무서를 감사하며 돈 받은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해당 사안을 유력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도록 공작을 했다.

감사원에는 비상이 걸렸다. 예정된 보도 날짜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왔고 감사원은 긴급 대책 회의를 열어 이 보도를 반드시 막고자 했다.

그 막는 일을 나도 하게 되었다. 나는 먼저 유력 방송사들의 관세 부당 감면 부분을 찾아냈다. 이들 방송국들은 일본에서 방송장비를 들여오면서, 언론사의 힘을 이용하여 관세를 제대로 내지 않고 아주 싸게 들여왔던 것이다.

한두 건이 아니었고, 제대로 세금을 내고 벌금을 내면 방송국은 기둥뿌리가 흔들릴 정도였다. 나는 이것을 문제 삼아 방송국, 신문사 사람들과 보도 하루를 앞두고 딜을 했다.

“우리 감사원이 이 부분은 눈 감을 테니 국장님도 감사원에 대한보도는 미뤄 주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십시오. 내일 1면에는 설렁탕 값 100원 인상'이라는 기사가 나갈 겁니다. 감사관들의 부정을 1면에 도배해 달라는 중앙정보부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과연 다음날 헤드라인에 '설렁탕 값 100원 인상'이라는 기사가 나갔다.

감사원이 정보기관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내막을 아는 사람은 감사원에서도 극소수였다.

나는 일을 성사시키고 소수의 간부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자부심은 서서히, 1주일 전에 꾼 꿈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사건을 처리하면서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 관행도 알게 되었다.
최고의 권력기관들이 심각하게 썩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실망했다.

중앙정보부도 권력을 이용해 돈을 벌려 했고, 이석제 원장이 부임해서 사정기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고 외치던 감사원도 구태를 못 벗고, 선배들은 여전히 돈을 뜯어내고 있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알게 되었다.
세상 물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직한 공무원이던 내가, 권력기관의 부조리한 싸움 한복판에서 내 기관의 이익을 위해 피감기관과 딜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 누구도 피해 나갈 수 없으리라. 내가 아무리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을 때라도 한 번 냉정하게 돌아보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꼭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런 성찰을 하게 되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보다 반성과 회의가 마음속에서 올라왔다.

이런저런 불편함과 갈등이 서서히 그리고 어지럽게 모락모락 피어날 때 즈음, 한 가지 제안이 왔다. 청와대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유학을 갈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 것이다.

◆현명관의 21세기 채근담

청렴과 부패는 얇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공무원이 월급을 용돈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는 위대한 공직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다가 감옥에 갇히고 만다
.마음이 비워지지 않으면 언제나 희망과 좌절이, 믿음과 회의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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