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문예]4.3평화재단 제22회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 입상자 발표
[4.3문예]4.3평화재단 제22회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 입상자 발표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08.20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 △홍시연(이도초4) ‘무명나비’ △이수형(서울불암중2) ‘감자’ △김지은(고양예술고2) ‘제주하르방의 기도’
산문 △송다민(제주여중3) ‘나빌레라’ △김가은(제주여고2) ‘어느 노인의 고백’
만화 △고나원(중문중2)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림 △고민서(한라초6) ‘우리곁의 동백천사로 피어난 그날의 그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19일 제22회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 입상자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후원한 이번 공모는 지난 4월 26일부터 7월 30일까지 초등에는 ▲시 ▲산문 ▲그림 부문, 중‧고등에는 ▲시 ▲산문 ▲만화 부문으로 진행됐다.

이번 공모에는 국내 초‧중·고등학교(대안학교, 학교 밖 청소년 포함) 163곳에서 670명이 참여했다. 참여학교별로 보면 도내 학교 83곳, 도외 학교 79곳, 기타 1곳으로 집계돼 제주4‧3에 대한 전국 청소년들의 높은 관심이 확인됐다.

제출된 응모작들은 각 부문 심사위원들의 엄정한 심사를 거쳤고 73명(도내 54명, 도외 19명)이 입상자로 선정됐다. 부문별 대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시 △홍시연(이도초4) ‘무명나비’ △이수형(서울불암중2) ‘감자’ △김지은(고양예술고2) ‘제주하르방의 기도’
▲산문 △송다민(제주여중3) ‘나빌레라’ △김가은(제주여고2) ‘어느 노인의 고백’
▲만화 △고나원(중문중2)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림 △고민서(한라초6) ‘우리곁의 동백천사로 피어난 그날의 그들’


시 부문 심사위원들은 초등부문에서 고(故) 진아영 할머니를 ‘무명나비’로 연결시키는 등 4‧3 관련 시적 대상을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어른들의 시각을 깨트린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중등 대상작 ‘감자’는 화자인 ‘나’와 4‧3의 아픔을 간직한 ‘할아버지’의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마음이 와 닿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고등부에서는 시로써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아 고민됐지만 주제의식과 작품수준을 고려해 ‘제주하르방의 기도’를 뽑았다고 밝혔다.

산문 부문 심사에서는 4‧3을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의 현재적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작품에 주목했다. 중등 대상작 ‘나빌레라’는 시적인 은유로 역사적 사건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가해자의 시선에서 4‧3을 바라보며 반성한 작품인 ‘어느 노인의 고백’이 고등 대상작으로 뽑혔다. 초등부문 산문 대상작은 아쉽게 선정되지 않았다.

만화 부문 중등 대상작인 ‘우리가 원하는 것은’의 경우 수상과정에서 토론이 치열했지만 독창성과 가능성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등부문 만화 대상작은 선정되지 않았다.
그림 부문 대상작 ‘우리곁의 동백천사로 피어난 그날의 그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동백꽃의 형상을 통해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미래지향적 메시지가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 부문별 대상(도지사상)에는 시상금 30만원(초등), 50만원(중등) 100만원(고등)이 주어지며, 최우수상(교육감상), 우수상‧장려상(재단 이사장상)에도 상장과 상금이 제공된다. 

입상작은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 ‘알림마당-공지사항’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4‧3평화재단은 수상작품집을 발간해 전국 학교 및 도서관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한편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는 올해 22회째를 맞고 있으며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후원하고 있다. 기존의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는 중‧고등부문에 한해 추진됐지만 코로나19로 백일장 형식의 학생4‧3문예대회를 개최할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해 올해는 초등부문 응모분야를 추가해 진행됐다.
 


시 초등 대상

무명 나비

홍시연 이도초등학교 4학년 7반

4월 하늘에
무명 나비 날아간다.

턱에 총을 맞아
평생 턱에
천근 만근
무명천을 두르고 살았던
진아영 할머니.

4월 하늘에
무명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다.

2004년 눈을 감으실 때
평생 짓누르던
그 얼굴의 천도 함께 풀어졌다.

할머니 다시는
그 천을 두르지 마세요.


시 중등 대상

감 자
​​​​
이수형 서울불암중2-

할아버지는 자꾸 내게 감자를 쥐어주셨다
나는 장손이라 부르던 목소리 잦아들고
끔뻑끔뻑 오래 보아도 할아버지의 눈엔 내가 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나를 볼라치면
어디선가 숨겨두었던 감자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거꾸로 흐르는 할아버지의 시간
엄마에게 어망하고 불렀다가
어두운 밤엔 떨기도 했다
큰 천둥 번개가 칠 땐
동그랗게 몸을 말고 한참을 소리 죽여 울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어디쯤 가 있는 걸까
할아버지가 건너는 그 시간엔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보다 작아진 할아버지의 굽은 어깨를 껴안는다
할아버지 건너는 그 시간을 함께 거슬러
가장 서러울 때 곁을 지켜주고 싶다
할아버지의 아픈 기억까지 껴안아주고 싶다

한 밤 할아버지가 또 운다
방문은 열고 할아버지를 안아드린다
툭 감자 하나 떨어지고 할아버지가 말한다

아방 먹읍서
아방 먹읍서


고등부 대상

제주 하르방의 기도

김지은 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당신의 등줄기는 우거진 숲과 같아
선뜻 나이테를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마을 한 편에 자리 잡은 폭낭 한 그루
그 앞에는 당신이 줄기를 뻗고 서있다

잔물결 가득한 당신의 두 손바닥이 맞닿자,
기도는 어디로 가 어떻게 전해지는가

이어지는 고요 속에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이 깃들었다는 나무가
어쩐지 당신에게 더 깊은 동굴을 내어주는 것만 같다

아스라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흩어지는 눈물 때문일까
제주의 바람은 어쩐지 짭쪼름하기만 하고

팽, 하고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는 나뭇잎들
당신은 그 너머에 있는 옛친구 혹은 노모에게
매일 아침마다 안부를 전하는 것이다

굽이치는 파도만큼 구부정한 당신의 등허리
나이테처럼 선명하게 남아버린 당신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내가 매일매일 보며 자라온
당신과 폭낭의 풍경
교과서 한 구석에도 그려지지 않은 4월의 눈물

폭낭 :'팽나무’의 제주 방언.


산문 중등 대상

나빌레라

송다민 제주여자중학교 3학년 2반

별이 수도 없이 많이 보여지는 오늘, 그대가 산으로 올라간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날이네요. 무서울 그 곳에서, 빨간 자국 뿐만인 그 곳, 빨갛게 물들어가는 그대의 실을 조금이라도 덜 물들어가도록 매일 매일 애를 써가며 살아가는 그대가 있는 그 곳에서.

그대는 몸 성히, 건강하게 잘 지내어주고 있나요?
하루하루 그대의 끼니조차 잘 챙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그대의 생사가 오가는 총소리가 난무하는 그 두려운 산에서 그대가 건강히, 아무 탈 없이 잘 있어주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어디 다친 곳은 하나 없는지. 수도 없이 걱정이 되지만, 그렇게 수도 없이 보고 싶지만.

나 그대만은 괜찮으리라 소원하며, 몸 성한 곳 하나 없이 행복한 미소와 함께 웃으며 나에게 돌아와 주리라, 그대만은 그래줄 것이라 이렇게 믿어요. 그대와 나의 사이를 그토록 갈라놓게 하였던, 이 두려움의 끝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대와 나에게 닿기를 바라며, 그댈 향한 내 이 걱정들과 그대를 그리는 이 마음이 금방 사라질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내보고 있어요.

그렇게 간절히 빌었던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나의 정성을 알아주었는지 그대와 나의 사이, 멀어진 이 틈을 채워주듯 별이 무수히 떠 있는 오늘.
오늘 이 밤의 저 별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듯 조금씩 밝아지는 것만 같은, 아니 그러리라 믿고 싶은 저 하늘을 바라보며.
그 하늘에 나와 그대의 별을 찾아 내 이렇게, 내 이렇게 간절한 이 마음이 닿아,
이 간절한 마음 그대에게 전해질 그 때까지. 나 이렇게 간절히 바래봅니다.

우리가 지내는 이 마을의 하루하루는, 날이 지날수록 점차 줄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수를 세어가며,
보내주고 싶지 않아도 보내줄 수 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에 스며들어 가고 있는 거 같아요.

날이 지날 수록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하루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생명들에 무참히 불을 번져, 재로 날아가게 하였는지, 묻어주지도 못할 정도로 그 소중한 생명들을 짓밟았는지.
점점 더 바알갛게 스며들어가는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경찰과, 군인과 처음 보는 눈동자의 색을 가진 그들과 눈만 마주쳐도,
예전에는 그저 존경의 대상으로써 모범만을 보였던, 나의 눈에서 항상 높은 곳에 있어보이기만 했던.

그 정직함과 평화의 상징인 새의 모양이 새겨진.
그이들의 옷깃이 나와 스치기만 하더라도, 그들의 그 얼굴들을 바라보아도,
그들과 눈을 마주하고, 짧지만 긴 것만 같은 대화를 하는 그 순간 순간에 나는 이 날이 내가 꺾어진 꽃이 되는 날이 되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두려움이 나에게 찾아올까봐, 사랑하는 그대와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을 보는 날이 오늘이 마지막이 될까봐. 그러한 두려움들에, 점차 빨간 색으로 물들어만가는 몽둥이가, 점차 빨간 색만이 비춰지는 그들의 눈동자 하나하나가 우리를 가리키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 매순간,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에, 그들이 단 바알간 새들의 장식에. 나는 하루하루 조금씩 그렇게 숨어들어가요. 고개를 숙여 조금씩 그렇게 떨궈가고 있어요.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잃어가는 고통에 나는 아직 적응을 못하나봐요.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오늘이라는 상처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더 쑤시고 찔러가며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나에게서 앗아갈지, 하루가 지날수록 그렇게 무서움이 더 더해져만 가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나의 옆에 서주어 나의 등허리가 더는 굽어지지 않도록 나를 도와주고 지켜주던 그 사람들이 아니였다면 지금 나는 없었을거에요.
매일을 그 그림자에 조금씩 가려져만 가는 나의 등허리가 굽혀져가지 않도록 세워주고 받쳐주는 그 소중한 사람들과 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미래의 길을 서로가 서로의 이어주고 만들어가며 서로를 믿고 의지해 조금이라도 더 버텨가며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유난히도 오늘따라 짧아져가는 것만 같은 나의 생과 사의 끝을 보며 두렵지만 노력해가고 있어요.
더 이상의 길을 또 만들어갈 수 있을까, 더 이상은 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예전의 그 아름답던 꽃들이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점차 조금씩 고개를 숙여가는 한 때는 아름답던 그 꽃들이 땅을 향해 자라지 않도록, 그 꽃들이 꼿꼿한 줄기를 이어나가며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를 엉켜붙어 도와주고, 세워주고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도와가며 남은 생의 희망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보려 안간힘을 써가고 있어요. 어제도 먹을 쌀도 모두 떨어져가는 우리 주민들을, 그리고 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자 선뜻 다가와준 다른 마을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자라며, 이렇게 힘 없이 끝내버리기엔 이 황폐해진 이 조국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나는 황폐해지고, 마르고 갈라진 이 섬나라에 다시금 물이 스며들어오고, 맑고 아름다운 구름과 꽃이 피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그 곳에서 수 없이도 노력하는 그대를 보며,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다같이 길을 만들어가려는 우리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한 번 힘을 내보고 싶어졌어요. 금방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도우며 이 마을을, 나의 조국을 지켜보려구요.

그대도, 우리도. 모두 서로를 도우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그러기만 한다면 동백꽃 필 무렵의 우리의 제주도를 다시 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 그대, 그대가 있는 그 곳에서 아래에 있는 우리를 너무 걱정하지말고, 이렇게 되어버린 그대의 상황과 우리 이 제주도의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려 하지 말고, 그대의 마지막을 너무 짧게 보지 말아줘요. 희망을 잃지 말아주어요.

이 모든 일이 끝나는 그 때, 기리고 기리던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모든 것이 바알간 불이 아닌, 맑고 투명한 파란 바다로 가득찰 때, 그 때까지. 다 같이 노력해봅시다. 힘내보아요. 그렇게 짧을수도, 멀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썬 밝지 못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다 같이 조금이라도 더, 손을 잡고 조금이라도 더 모이고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아주 분명히 행복할겁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 보아요, 우리. 희망을 잃지 말아 보아요, 우리.


산문 고등 대상

어느 노인의 고백

김가은 제주여자고등학교 2학년 4반 8번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누구냐고 힘없이 묻는 내 질문에 “아버지! 저 왔어요. 성찬이!” 라는 이 우렁찬 한마디가 사람을 어찌나 행복하게 해주는지. 외딴 시골마을 다 무너져가는 초가지붕아래 홀로 살고 있는 나에게는 우리 아들이 내 하나뿐인 행복이야.

아버지 얼굴을 보러왔다며 웃으며 얘기하는 너의 모습에서 어찌나 그 사람이 떠오르는지. 너는 나의 안부를 다 묻고 난 후 내 방에 들어가 아버지 옷 냄새가 좋다며 장롱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 조금 후 너는 손에 조그마한 박스 하나를 꺼내들고서 오랜만에 본다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어.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 장롱 속에 오래오래 숨겨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을 너는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단다.

나는 애써 웃으며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너는 이미 슬픔에 가득 찬 나의 눈을 보고 말았던 것 같아. 박스를 열어 너는 “박..정..옥” 작게 읊었어. 나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너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아 이렇게 편지로 전해본다. 고작 17살밖에 되지 않았던 정옥이는 어여쁜 내 부인이 되었어. 우리는 어렸고 가난했지만 씩씩한 아들 성찬이도 낳아 조그마한 행복을 나누며 살아갔었지.

정옥이는 늘 밝은 아내였단다. 굳은 집안일과 농사일도 미소를 잃지 않고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난 평생 이 사람만을 바라보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고, 우리는 평생 함께일 줄만 알았어. 단칸방에 함께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영원을 다짐하던 그때 “불이야!” 하는 비명이 들려왔어. 놀라서 밖을 뛰쳐나가보니 사람들이 죄다 도망가고 있는 거야.

나는 다급하게 도망가던 앞집 사는 춘삼이를 붙잡고 어딜 가는 거냐고 물었지. 춘삼이는 나의 팔을 뿌리치고는 달려가며 소리쳤어. “한라산!”이라고 말이야.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던 그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옆집에 불이 붙었어. 너무 놀라 얼어버린 나의 손을 잡고서 정옥이는 사람들과 함께 뛰기 시작했어.

정신없이 사람들 틈에서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옥이는 발걸음을 멈췄어. “..성찬이.. 우리 성찬이!!”라며 너의 이름을 외친 뒤 정옥이는 사람들 속을 가로질러 도망쳐 왔던 그 길을 다시 돌아갔단다.

순식간에 정옥이의 뒷모습을 놓쳐 버린 나는 미친 듯이 정옥이를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어. 계속해서 정옥이를 부르는 나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지 정옥이는 대답이 없었지. 그렇게 뛰어가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나는 정옥이와 너를 찾기 시작했단다. 너와 정옥이의 이름을 부르며 말이야. 하지만 나의 부름에 돌아오는 것은 “어이, 거기 빨갱이. 잠깐 나와 봐.” 섬뜩하고 오싹한 말이었단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때의 말이 아직도 생생해. 잠시 주춤거리다가 나를 부르는 그들을 향해 나아갔어. 그들은 넋이 나간 나를 본 후 피식하고 웃더니 들고 있던 총으로 나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단다. 정신을 차차 잃어갈 때쯤 그들은 내게 침을 뱉고 등을 돌려 돌아갔어.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본 후 배를 붙잡고 겨우 일어나 숨을 고르는데, “태식아!!”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네가 아는 그 정환 삼촌이 내 앞에 서 있었단다. 내 국민학교 동창 말이야.

무슨 일인지 정환이는 굉장히 다급해보였고 순식간에 나를 붙잡고 어디론가 뛰어갔어. 숨을 헐떡거리며 뛰는 정환이에게 어딜 가는 거냐고 묻자, 정환이는 나에게 살고 싶지 않냐, 빨갱이로 오해 받을 거냐며 입대하러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했어. 그렇게 정환이를 따라 도착한 그곳에는 내 또래의 남자들이 줄을 서 있었단다.

다들 굉장히 초조한지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고, 얼굴빛은 창백했지. 그길로 나는 자원입대를 했고 해병대 제주지역 계엄군에 배정되었어.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 것 같지? 나도 이 단어에 대해서는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까. 나와 같은 군인들과 함께 걸어가 도착한 곳에는 나를 구타했던 그 사람들도 있었고, 외국인들도 보였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그리고 그렇게 입대 한지 1년 반쯤이 지나고 그들은 ‘초토화 작전’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던 탓인지 우리에게 구타와 학대를 명령했단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 모습은 나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 나의 손으로 같은 주민을 학대한다는 것은 절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죄책감에 시달렸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어. 그렇게 그들 밑에서 명령을 받고 실행하기를 7년 7개월이 흘렀어. 잔인하게도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있더라.

내 손으로 무고한 주민들을 학대하고서도 끈질기게 쉬고 있는 나의 이 숨통을 끊어버리고만 싶었단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쯤 제주도의 피바람이 멈췄어. 드디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나는 그 길로 너와 정옥이를 찾아 나섰단다.

그 긴 세월동안 연락 한 번 해볼 길도 없었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제주도를 다 뒤지기 시작했어.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가족들을 찾으며 돌아다녔던 제주도 곳곳에서 사람들은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통곡소리만 가득했어.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가족들을 찾는 걸 포기했단다. 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가족을 찾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혼자 살아가기를 10년째 되는 해였어.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나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혹시 김태식 씨 맞나요?” 라고 물었지.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단 번에 너인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단다. 18년이 지난 후에도 너는 눈, 코, 입 하나하나 다 똑같았어. 너의 얼굴을 보자마자 터져버린 울음에 너도 함께 울었었지. 조금 진정 된 후 너는 나에게 엄마가 너의 손에 쥐여 줬던 거라며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어.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반지에는 ‘박정옥’ 이 세 글자가 각인돼 있었어.

그건 내가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박았던 정옥이만을 위한 결혼 반지였단다. 그렇게 너를 만나고 네가 나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던 이야기와 그날 사람들을 따라 한라산 중산간에 숨어 있다가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정옥이에게도 너무 미안하더구나. 나는 가족 앞에 설 자신이 없었고 그것이 죗값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널 만난 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도 네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나를 떠날까, 미워할까 걱정이 앞서서 그랬단다. 우리는 아직 그때 그 기억 속에 살고 있어.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없던 척 웃으며 살아가지만 그 시간들이 멈춰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있단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많은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쓸어줄 수 있게 우리 아들이 이 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훗날 너의 손주들에게도 잘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림 초등 대상

‘우리곁의 동백천사로 피어난 그날의 그들’
고민서 한라초6

‘우리곁의 동백천사로 피어난 그날의 그들’
‘우리곁의 동백천사로 피어난 그날의 그들’

만화 대상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고나원  중문중학교 2학년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