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인터뷰][48)양상철 융합서예술가..."비움의 지혜를 터득한 예술 완성"
[명사 인터뷰][48)양상철 융합서예술가..."비움의 지혜를 터득한 예술 완성"
  • 현달환 기자/ 강정림 기자 (김상훈 관장 협조)
  • 승인 2021.08.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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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창간 3주년 기념 ... 양상철 작가 전격 인터뷰(48)
소암선생의 가르침..."맞을 자격이 있는 놈이 맞는 거여!"
"세상에 나는 작지만 내 안에 나는 항상 커야한다” 다짐
전통서예 연마하다 시대맞는 미적 가치 찾기 위해 융합
제주서 나고 자라 살며 예술 작품활동..."정체성 찾는 일"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제주특별자치도와 재단법인 김만덕재단(이사장 양원찬)이 주최하고, 김만덕기념관(관장 김상훈)이 주관하는 2021 김만덕기념관 양상철 초대전 '제주에 살다' 전시가 지난 10일부터 김만덕기념관에서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25일까지 이어진다.

제주의 '융합서예술가' 양상철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로서 영주십경을 비롯, 제주를 담은 글과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주의 작가다.
양상철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나 소암 현중화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다. 이는 그에게 큰 행운이고 자신의 삶에 커다란 발자국이 된다.

김상훈 김만덕기념관장의 말을 빌리면 “제주의 자연과 삶을 담은 양상철 작가의 작품 전시가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에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다”며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첫날 오후 뉴스N제주는 양상철 작가를 직접 만나 김만덕기념관 관장실에서 그의 스토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한마디로 천재였다. 제주가 낳은 천재, 더 이상 다른 형용어를 붙일 말이 없다. 젊은 시절 자신이 교육청에 근무하면서도 주말에는 창작열에 불타 끊임없이 노력하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 서, 화에 능통한 재능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천부적인 재능을 어릴적부터 물려받았다고 기자는 평가했다.

또한, 그의 작업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또래친구이면서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의 내조로 더욱 빛을 발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8미터의 그림을 그리거나 100미터의 자신의 일기형식의 글을 만들때에도 혼자서는 하기 어렵고 도와주는 역할이 필요해서-종이를 펼쳐주거나 잡아주거나 기타 등등- 가까이 있는 아내의 역할은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빛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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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역할이 붓을 사용하는 작품에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번에 쓴 내용을 여기에 다시 옮기는 것은 그래서 첨부하기로 넣고 질문을 통한 그의 사연을 들어보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작품들은 ‘선의 예술’이라는 서書(글)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초서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바람이 휘날리는 듯, 한 번 손을 떠난 붓이 바람 따라 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마침이 있을 때까지 칼을 휘둘러 바람을 자르듯 손의 동작은 분주하다.

붓과 먹물의 조화, 완성된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감격을 만든다. 보는 이들에게 제주다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고 저절로 감동이 밀려온다.

특히, 서예 월간지에 '현대서예를 진단하는 논고'를 2년간 연재했으며, 개인전 16회 및 국내외 초대 및 단체전에 400회 이상 참가한 제주의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 위원과 제주도 박물관 미술관진흥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제주도에 살면서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양상철 작가의 제주 사랑을 느끼며 목소리가 좋아 성우로도 착각할 정도로 인자한 제주의 명사를 소개한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인터뷰 양상철 작가, 김상훈 김만덕기념관 관장, 현달환 국장, 강정림 본부장]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략하게 본인 소개해주세요.

-. 제주 서귀포에서 나고 자라 제주시 원도심 한짓골 소재 완소재(阮素齋)에서 작업하고 있는 융합서예술가 한천 양상철입니다.

융합서예란 ‘서예와 다른 예술장르를 섞다’라는 어휘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의 서예활동을 지켜봤던 사람은 저를 서예가라 부르고, 융합된 작품을 보신 분들은 화가로 부르기도 합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어쨌든 저는 전통서예를 열심히 연마해 온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대에 맞는 서예의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찾기 위해 서예의 현대화 작업을 전통서예와 병행하고 있습니다.

통상 현대적 서예를 하는 작가를 현대서예가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제 호칭은 제 작업의 특성상 융합서예술가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 그림, 글씨는 언제부터?

-.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5살 때 형들이 쓰는 크레용으로 밥상을 딛고 올라서 창호지 봉창문 위에 크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부모님은 제가 하는 이런 행동을 제지한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림대회나 서예대회에 학교대표로 나가서 상 타는 일이 많다보니 막연히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라문화제 일환으로 도내 학생 서예대회가 서귀중학교에서 열려서 큰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귀포읍민관에서 멋진 돌벼루와 먹, 붓 등을 상품으로 받았습니다. 평소에 상은 전교생 조회 때 교장선생님이 주시는 게 보통인데, 마을회관에서 어른들 앞에서 상을 받았으니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들뜬 기분으로 아버지께 보여드렸습니다.

평소에 형제들의 우등상에도 드러내어 반색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어려운 형편에도 500원지폐(당시최고액권)를 선뜻 주셔서 “아, 그래 서예를 해야 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ㅎ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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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학교에 입학해서 보니 서예대회에서 보았던 할아버지가 한문과 서예과목을 담당한 소암 현중화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때부터 소암 선생님으로부터 지명되어 방과 후에 교무실에서 개별지도를 받았습니다.

한편, 그림도 서예만큼 재미가 있어서 미술시간도 내게는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미술선생님께서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일생의 전환점을 맞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후 집에서 쉬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놀이문화가 없어 친구들이 학교가고 나면 혼자서 글 쓰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만큼 서예에 집중했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림도 재주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체계적으로 미술교육을 받은 바는 없습니다. 다행히 집 가까이에 고영우화백이 계셔서 동생처럼 저를 아껴주셨습니다. 고화백 아버지(고성진)는 지금의 미술대학격인 동경미술학원을 나온 제주미술의 선구적인 1세대입니다.

두 부자가 화가라서 고영우화백 자택은 분위적으로 미술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루가 멀다않고 그 곳에 놀러 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화백의 작업을 보고, 그림 얘기도 듣고, 일본에서 간행된 칼라화집, 위성 안테나의 일본 미술방송, 바이올린, 기타,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서귀포바다풍경을 그린 이중섭 작품, 청강 김영기 선생을 만난 일 등 이런 저런 많은 시간들이 서예에 그림을 융합할 수 있도록 내 사고를 전환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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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행초서로 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가 됐는데 행초서에 대해 설명

-. 제가 소암선생께 배운 시간은 중학교가 전부였습니다. 해서(정자체)를 배우고 나서 행서를 배웠습니다. 선생님께 배운 시간이 방학 빼고 방과 후 시간 3년이니 짧다면 짧았습니다만, 그때 서예 서법의 기초를 다지고 서예정신의 깊이를 체감했으니 일생 가장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후 서예는 늘 제 생활 속에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용돈이 생길 때마다 국내외 발간 서예자료와 서예법첩들을 수집하고 참고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서예와 관련되는 동양철학서적과 서양미술관련 서적을 주로 보면서 서예의 생각을 밖으로 확장시켰습니다.

미술은 학연을 중심으로 그룹이 형성되고, 서예는 선생을 중심으로 사숙이 형성되어 알게 모르게 카르텔 비슷한 게 형성됩니다. 아마 학연, 지연 등 인맥의 중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혼자서 공부하다보니 정보도 어둡고 학교동문, 협회회원, 공모전 따위의 예술활동 방식에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신문 기사를 보고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 출품하면서 초대작가가 되고, 운 좋게 행초서작품으로 초대작가상을 받게 되면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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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서를 중심으로 창작하는 이유는 제주의 바람 때문입니다. 누구나 작가는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합니다. 저의 정체성은 내가 나고 자란 제주의 풍토성에 기인합니다. 바람은 예측할 수가 없고 공간을 초월하며 우연합니다. 서체에는 5가지가 있습니다. 발생 순서대로 보면 전서, 예서, 초서, 행서, 해서입니다.

그중에 동태적인 글씨가 행서와 초서입니다. 행서가 걷는 것이라면 초서는 뛰는 것과 같습니다. 초서는 신속하고 간략하게 쓰는 서체로서 가장 자신의 정감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예술성이 높습니다. 빠르고 신속한 초서는 제주 바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창작할 때 밭에 나간 농부나 바다에 나간 어부가 갑작스레 바람에 대처하는 것처럼 즉흥성을 가미합니다. 이게 제주 자연과 동화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작업태도는 노장(老莊) 사상을 바탕으로 무의식, 무작위성, 우연성을 중시하여 서예의 정신성을 담보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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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보면 ‘바닷게’가 많이 나오는데 의미는?

-. 코로나19 팬대믹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경제도 어렵고 사람 사는 관계도 소원해져 스트레스를 안고 삽니다. 요즘에 코로나 방역에 부족함이 많다보니 이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졌습니다.

한시에 게(蟹)가 ‘갑옷입고 무기든 장수로 표현되어, 두려움 없이 용궁에도 어슬렁거린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제주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옵니다. 이번 작품 ‘제주 바다 이야기’는 폭 1.2M 길이 9M 의 대작입니다. 제주 풍광 화면에 게를 가득 채워놨습니다.

내방객이 많은 제주는 코로나 방역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합니다. 게는 이미 자신의 방어를 위해 중무장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무장된 게의 모습으로 코로나에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그림 주제 ‘제주에 살다’ 의미는?

-. 제주에서 태어난 걸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습니까? 한라산과 푸른 바다, 억척스런 제주인의 삶, 변화무쌍한 섬 날씨까지도 신께서 내려준 특별한 선물입니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고향에 살고 있습니다만 고향 떠난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제 절친한 친구 몇 사람은 일 년에 몇 차례 제주에서 만나 고향 순례행사를 합니다. 말이 순례지 사실은 만나서 반가우니 좋고, 옛 기억 되살리면서 바닷길 산길을 걷고 농어촌 마을을 다니면서 구경하는 수준입니다.

제주 곳곳을 다니다 보면 어릴 때 보았던 옛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제주 자연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사람 사는 곳이니 개발을 억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불필요한 개발로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제주는 제주사람들만의 제주가 아닙니다.

제주도민과 이주민, 많은 관광객들이 함께 보듬어야할 세계자연유산입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에 살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하고 있는 제가 제주사랑 이야기를 전시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어쩜 저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구요.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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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덕의 정신과 작품의 관계 설정?

-. 미술전시장은 작가의 예술성만 드러내는 곳이 아닙니다. 어려운 말입니다만 관람자들에게 감상을 통해 새로운 생각과 정신 활동을 작동시키는 곳입니다.

전시에도 장소성이 있습니다. 김만덕은 나눔과 베품을 사랑으로 실천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그때는 제주에 흉년이 들어 굶주림으로 생사기로에 허덕일 때라 곡식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이라고 배고픈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더 나은 삶의 가치를 북돋아 줄 희망을 나누는 일이 필요해졌습니다.

예술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관장합니다. 이번 전시 작품 중에는 이러한 만덕 정신의 의미를 담아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시를 보시고 만덕정신의 나눔을 체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의 대표적인 융합서예술가로 불린다. 어떤 의미인가?

-. 지금껏 서예는 전통적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조선이 망하여 신문물이 들어서서 이제는 동서의 문화가 융합되어 있습니다.

그런대도 서예는 옛 모습만을 고집하고 있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한자가 어렵다고해서, 시대심미가 없고 고루하다고 해서 등등으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전통은 소중합니다.

서예의 전통은 학문이고 곧 역사와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전통의 중요성을 간과하다보니 우리의 전통인 서예가 왜곡되어 중국 것으로 오해되고 점점 쇄락해져 가고 있습니다.

서예는 한중일 삼국이 통용하는 전통예술로서 우리 것이며 이제 위기감 속에‘보존과 개발’의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의식 있는 사람들이 전통을 지키면서 재개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제 방식으로 서예의 현대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의 심미는 이미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서예의 현대성이란 여타 현대 예술처럼 시대미와 결합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융합서예술가로서 서예술에 시대심미를 융합하는 작업을 20년 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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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현대미술은 관성적 미학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적 개념을 해체하여 시대에 맞게 수정 보완하고 재조립하는 것이 현대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고쳐 말하면 전통과 현대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이고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씨앗은 전통의 내부에서 싹틉니다. 전통과 현대가 이분법적 대립 관계에 놓이면 서로의 관계성을 잃어 방향 없이 헤매게 됩니다. 제가 전통과 현대를 같은 맥락 위에 두고 현대를 전통의 가치 안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서의 미학을 구분하여 바라 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미학적 모순의 논점을 초월하여, 융합하는 자세와 시대미를 읽는 지식과 미래를 보는 혜안이 요구되는 시대라 생각합니다. 그 동안 줄곧 서예의 정신성에 회화적 직관을 융합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제 작업이 서예든 회화든 아니면 또 다른 뭐라고 불리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현대예술에서 장르간의 구분이 모호하고 그럴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소박하게 제 작업이 새로운 심미세계를 찾아 도전한 작은 흔적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는 작지만 내 안에 나는 항상 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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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부터 만난 스승 소암 현중화 선생과의 일화는?

-. 제가 소암선생님과 첫 만남은 말씀드렸던 초등 때 휘호대회였습니다. 선생께서 나에게 건 낸 첫 말씀은 “손 들엉 쓰라”였습니다. 첫 순간부터 서법을 가르쳐 주신 셉입니다.

책상 위에 종이를 펼쳐 손가락을 이용해서 엎드려 글을 그리고 있으니 그러실 만도 했을 겁니다. 소암선생님은 매우 엄격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상한 면이 없지 않으셨지요.

제가 선생께 방과 후 지도를 받을 당시는 화선지가 귀해서 갱지에 글을 썼는데, 그것도 귀하니까 신문지 위에 썼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글씨본을 써 주시는데 신문지에 연습하고서 최종적으로 갱지에 쓴 작품을 교무실에 들고 가서 선생님께 검사 받았습니다.

한번은 연습을 많이 해서 일주일 치 공부를 이틀 만에 끝내 자랑스럽게 갱지에 써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손 내밀라고 하시더니 대나무뿌리 회초리로 호되게 손바닥을 후려치시는 거예요.

내 깐엔 열심히 했는데 갑작스럽게 맞으니까 어안이 벙벙하고 억울했습니다. "맞을 자격이 있는 놈이 맞는 거여!"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때리려고 때린 게 아니니, 서둘지 말라”는 가르침임을 알았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리 잘 써져도 무조건 신문지에 써서 보여드렸습니다.ㅎ

또 기억에 남는 일은, 2학년 때 담임선생 심부름으로 소암선생께 급훈을 써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담임선생께서 왜 급훈을 직접 짓지 않고 심부름 시키셨는지 모르지만, 소암선생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설향(雪香)>이라고 써서 주시는 겁니다. '눈 설'에 '향기로울 향' 자거든요. "눈에 냄새가 없는데, 왜 향기가 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이라는 것은 깨끗함을 뜻하니 ‘눈처럼 깨끗하고 향기로우라’는 의미를 담아 써주셨을 겁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재단법인 김만덕재단(이사장 양원찬)이 주최하고, 김만덕기념관(관장 김상훈)이 주관하는 2021 김만덕기념관 양상철 초대전 '제주에 살다' 전시가 10일(화)부터 오는 9월 25일(토)까지 김만덕기념관에서 진행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재단법인 김만덕재단(이사장 양원찬)이 주최하고, 김만덕기념관(관장 김상훈)이 주관하는 2021 김만덕기념관 양상철 초대전 '제주에 살다' 전시가 10일(화)부터 오는 9월 25일(토)까지 김만덕기념관에서 진행된다.

#. 매일 일기 형식의 글(즉흥사편(卽興思片)을 만들었다. 설명하자면?

-.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경쟁적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호평받기 위해 욕심을 부려왔습니다. 원래 예술이란 완성도 없고 수준을 계량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이제 손은 제 마음의 지시를 거역하지 않을 만큼 익어 있다고 봅니다. 기능은 꾸밈을 요구합니다. 작품이 내 생활의 흔적일 뿐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른바 비움의 지혜를 터득한 셈입니다.

이후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남의 작품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욕심을 덜어낼 수 있고 가식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진솔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내 생활이 묻어난 작품이 가장 진솔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솔하게 일상을 작품에 끌어들여 생각의 조각들을 100M 두루마리에 쓰고 그려 즉흥사편(卽興思片)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양상철 융합예술가 인터뷰
제주특별자치도와 재단법인 김만덕재단(이사장 양원찬)이 주최하고, 김만덕기념관(관장 김상훈)이 주관하는 2021 김만덕기념관 양상철 초대전 '제주에 살다' 전시가 10일(화)부터 오는 9월 25일(토)까지 김만덕기념관에서 진행된다.

#. 평상시 취미 활동과 존경하는 인물은?

-. 작품하는 것 외에는 별도의 취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게을러서 운동도 못하고 동네 한 바퀴 산책도 안하니 내자가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가끔은 넷플릭스 영화를 보거나 바다 구경하기를 좋아해서 바닷가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마시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인물은 아버지입니다.

#. 도민과 문화예술인들께 마지막 당부나 하고 싶은 말씀.

-. 코로나 시대에 다들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시장경제가 힘들어져 서민들의 삶이 핍박하고 예술가의 활동도 위축되었습니다. 거리두기로 만남이 제한되어 인간관계가 소원해 졌습니다만 이럴수록 가정을 소중하고 자연이 필요해졌습니다.

제주는 청정하고 아름답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하지만 제주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습니다. 제주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도록 아끼고 잘 보살펴야 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포근한 가족 품에서 위로받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벗하며 건안하시기 바랍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문화예술인 여러분 모두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 양상철 작가 프로필

-.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소암 현중화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고, 제주대학교에서 건축공학석사를 취득했다. 한문행초서로 한국서가협회초대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서예월간지에 서예의 현대성을 진단하는 논고를 2년간 연재했다.

제주미의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제주 바람과 필획의 율동, 무작위성에 관심을 두고 초서를 기반으로 창작해 오고 있다. 20년 전부터 서예의 현대화를 위해 전통서예를 중심으로 미술, 건축 등을 융합하여 다원화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초대 개인전 16회, 400여회의 국내외 전시에 출품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예술의 전당 서예관, 중국 장해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성균관대박물관 등에 소장됐다.

제주특별자치도 박물관 미술관 진흥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조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제주원도심(한짓골) 완소재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융합서예술가 梁相哲(양상철)
.호 : 한천(寒泉), 완소재(阮素齋)
주 소 : (작업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남성로 25길 8, 207호
연락처) E-mail : ysc00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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