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19)세상에서 가장 힘든 말
[현명관 칼럼](19)세상에서 가장 힘든 말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8.07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삼성시계 대표이사 사장, 신라호텔 대표이사, 삼성그룹(전주제지,현 한솔제지) 부장, 감사원 부감사관...

이글의 주인공인 현명관 회장의 프로필이다. 현 회장은 해방되기 4년 전인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때 서울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군함을 타야했고 식빵으로 연명하다 고3때는 결핵에도 걸렸다.

사법시험 3회 낙방이라는 아픔을 겪은 뒤 행정고시에 합격해 감사관이 되지만 만족 못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 후 삼성의 부름을 받고 신라호텔을 일류호텔로 이끈 대표이사가 되고 이건희 회장을 도와 신경영 혁신을 추진한다. 이건희 비서실장을 거쳐 그는 입사 19년 만에 최초의 직원 출신 삼성물산 회장의 자리에 오른다.

그렇게 승승장구 했으나 제주도지사 선거에 두 번 낙선하고 획기적인 업무 성과를 낸 마사회 경영까지 적폐로 몰리면서 불명예를 당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용기 있는 도전자로 기억하며 그의 업적은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터득한 경영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내 인생의 위대한 거래는 지금도 계속 된다는 신념으로…

그는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우리 세대는 꿈을 위해 목숨도 걸줄 아는 세대였다. 내가 그랬고 나의 동료와 후배들이 그랬다."며 "세상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 볼 필요가 있다. 세대가 아무리 지나도 이런 가치에 공감하고 도전하는 청년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젊은이들에게 나의 부족한 경험을 바친다. 부디 더 지혜롭게 난관을 헤쳐 나아가 꿈을 이루기 바란다."며 "그 끝에 모욕과 누명이 있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기 바란다. 그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난과 절망이 손잡고 걸어와도 '전력을 다해 도전해 본 사람은 그것들을 다른 느낌으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현명관 회장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는 이제 절반이 마무리 됐다. 이후, 감사원 이야기와 일본 유학 이야기, 제주도지사 선거 이야기, 마사회와 최순실 이야기 등이 남아 있다. 

현명관 회장이 던지는 화두는 지옥 같은 절망과 고난도 시간 앞에 무력하다는 것이다. '순수한 도전자'는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보다 언제나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코로나19와 전쟁같은 싸움에서 시간이 되면 해결이 되고 인간들의 도전은 끝나지 않음을 믿는다. 왜냐하면 자식을 위해 아버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하기 싫은 일도, 어쩌면 비굴한 일도 자식을 위해서는 결국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식이 목격해서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더라도 아버지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은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비굴한 아버지라고 욕하지 말자. 아버지는 자식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자신이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도록 오늘도 '아버지'를 부르면서 이 뜨거운 여름을 잊자. 아버지는 가장 나를 사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8월의 뜨거워지는 주말에 자신을 뜨겁게 사랑한,사랑했을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현달환 편집장]

현명관 회장(좌)
현명관 회장(좌)

제주에서 목포로 가는 배를 타고 가면서 오직 한 생각만 했다. 열차에서도 서울 도착 후 버스를 타서도 현명관의 아버지 현여방은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모든 자존심이 무너진 모습이, 스스로 느껴져 괴로웠다. 그는 돈을 꾸기 위해 지금 친척 집을 찾아가는 중이다.

서울에는 꽤나 잘 사는 친척이 살고 있었다. 명절이면 얼굴을 보고 살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좋은 일이면 축하를 아끼지 않던 매우 가까운 친척 집을 아버지는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찾아갔다.

고문을 당하고도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얻어맞아 다치게 되었는지, 자식들에게 말하지 않은 현여방이었다. 그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도 없고 스스로를 굽혀 비굴함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일도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

서울 문래동 친척 집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그는 제주에서 서울로 오는 내내 입안에서만 맴돌던,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저……. 명관이가 올해 시험을 봅니다. 소 값도 많이 떨어져서 문제가 생겼어요…….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현여방은 자꾸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억지로 끄집어 내어 친척에게 부탁했다. 소 값이 다시 오르면 반드시 갚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쩐 일로 이 먼 곳까지 왔냐며 반기던 친척의 얼굴이 돈 이야기를 듣자마자 싸늘하게 변했다.

“허허 자네는 내가 돈이 많은 줄 아는가 본데 나도 어렵네, 그런소리 마시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는데 차 한잔하게."

"어떻게.. 안 될까요?"

“그동안 공무원하고 목장하면서 뭐 했나? 이런 때를 대비해서 저축을 했어야지. 그리고 내가 전에 말해 줬잖은가! 자네 형편에 대학을 보내는 게 아니라고, 상고 보내서 돈을 벌게 했으면 얼마나 좋은가? 이제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사법고시에 매달리니 답답하네, 답답해."

그렇게 시작한 친척의 장광설은 끝없이 이어졌다. 사람이 성실과 노력으로 아끼며 살아야 하고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자신이 신봉하는 세상의 진리를 현여방에게 훈계했다.

현여방은 저녁을 먹고 가라는 친척의 가벼운 선의를 뿌리치고 집을 나와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서울까지 오느라 돈을 쓰고 괜한 헛걸음만 한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견디기 힘들었고,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이제 어디서도 돈을 구할 곳이 없다는 절망이었다.

서울에 온 김에 공부하는 아들 얼굴을 볼까도 생각했으나 절망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현여방은 그대로 목포행 기차를 탔다. 제주에 도착하자 아내가 달려와 물었다.

“돈은 어떻게 됐어요?"

“응, 사시 준비하는 사람 돕지 않으면 누굴 돕겠냐며 해 준대요. 지금 당장은 없고 며칠 기다려 달라네."

"이런 이렇게 고마울 때가. 제가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네요."

현여방은 아내에게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내가 자리를 뜨자 현여방은 축사로 갔다. 그는 소를 보며 거기서 오래도록 혼자 울었다.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불경 중에 부모의 은혜가 중함을 알려주는 경전이 있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 그것인데 그중 '위조악업은'이라는 말은 부모가 되어 한 번 더 뜻을 새기게 된다. 자식을 위해 악업(혹은 하기 싫은 일)을 짓는 은혜라는 뜻이다.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때론 자식들을 위해 악한 일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악업을 짓기도 한다. 때로는 싫은 일, 꺼리는 일도 하게 된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도 그렇게 우리 자식들을 키우셨다. 특히 나의 성공을 위해 꺼리는 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셨다.

친척 집을 찾아가고 빈손으로 돌아오고 사업을 꾸리는 일은 절대로 아버지의 성격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잠시 슬픔과 좌절이 아버지를 찾아왔을지는 몰라도, 언제나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일상의 고통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나에게는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하라는 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하셨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제가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담담하게 견디셨나요? 언제나 의연한 모습만을 자식들에게 보여주시려 한 것을 압니다. 꿈속에라도 찾아와주신다면 거칠어진 손을 꼭 잡고 그저 한없이 오래도록 안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현명관의 21세기 채근담

-. 세상에는 표현이 불가능한 말이 있다. 나에게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