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글 칼럼](22)암앎
[현글 칼럼](22)암앎
  • 뉴스N제주
  • 승인 2020.06.0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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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앎

-현글

처참하게 무너지다
너를 만나고
천장에서 와르르 뭔가 쏟아졌다
오십년의 세월로 드리워진 이끼들
하얀 먼지들까지
터럭 하나마저
놀라 솟구쳐 올랐다

너를 외면하면
더 다가오려
통증이라는 선물까지 주곤 했다
그 통증에 마른 눈물도 흐르고
너를 떼어내려 발버둥 치면
오십년보다 더 깊은 회한을 노래한다.

썩어 문 들어질 육신을
하나씩 포위하며 다가오는 너를
두 손 들어 포기하듯 내두면
보이지 않는 신음들로
숨소리마저 거칠게 들려온다.

고요는 기침소리에 떠밀린 채
흘러간다.
그때야 아픔이 사그라지는 걸까
언제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너와의 이별은 하고 싶지 않다
끝까지 너와 함께하며
울고 웃고 살고 싶다
그러면서 살기엔
내가 너를 알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나둘
머리카락이 빠졌다


발톱이 무심하게 빠져나갔다
손톱도 그렇게 빠져나갔다
그래
바보처럼 너를 몰랐던 거야

나에 대하여
더 놀라운 것은
슬그머니 찾아온 익숙지 않은
너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은 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야
서먹하지만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운 친구로 살아야하기에
준비하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모처럼 물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참,
내일은 한조각 햇살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눈물을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너를 또렷이 볼 수 있기에
그것이
나의 마지막이 될 수 있기에
삶은 따뜻하게 부서지고 싶다.

현글(현달환) 시인
현글(현달환) 시인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내 주변에서 사라져간다. 아버지, 형님, 그리고 나의 선생님과 지인들.
암이다. 암은 내 주위에서 항상 맴돌고 있었다.

내가 조금 방황하거나 방심하여 틈이 보이면 그 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암이라는 녀석은 다양한 얼굴로 찾아온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는, 두려워하지 않는 담담한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 녀석과 놀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몇 개월 동안 지내면서 느꼈다.

사실 바람이 불어와도 슬프다. 꽃잎이 흩날려도 슬프다. 햇살이 빛나서 하늘이 맑아도 슬프다. 비가 내려도 그냥 슬프다. 자연의 조화는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하는 사람들은 왜 눈물을 흘릴까. 암은 눈물의 존재를 알게 해주었다.

눈물이란 액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눈물만이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그래서 내내 눈물만 흘러내린 세월이다. 그 세월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속 좁은 생각이지만 아무리해도 암을 사랑하지는 못하리라. 암은 정말 떨치고 싶다.

암을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어서 허무한 것이다. 암, 분명 정복할 수 있는 그 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어디에선가 그늘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걱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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