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2024-03-28 17:26 (목)
>
이어산, "시가 소설, 수필과 구분되는 지점?...낭송 되는 시를 써라""
이어산, "시가 소설, 수필과 구분되는 지점?...낭송 되는 시를 써라""
  • 뉴스N제주
  • 승인 2021.05.22 06:39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어산 칼럼]토요시 창작강의(122)
이어산 시인•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22)
□ 현대시 작법의 몇 가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현대시라 함은 대체로 모더니즘(이미지즘)이 등장한 191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시를 다른 말로 자유시라고 하는데 이는 율격으로 표현되는 공적 리듬이 아닌 개인적 리듬으로 시인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드러내는 형태를 취한다.

시 전체에 담겨있는 정서와 사상을 직접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배후에 숨어있는 이미지가 암시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떠오르도록 하는 방법인데 이것을 찾아낼 줄 아는 눈을 시안(詩眼)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현대시를 쓸 때에도 내재율(內在律)을 무시하면 시의 맛이 떨어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시조처럼 정해진 율격은 아니라도 낭송이 될 수 있는 상태의 리듬, 시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고 말이 꼬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시가 소설이나 수필과 구분 짓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처음 시를 쓰려는 사람들이 오해하는것이 있는데 시를 아름답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강의에서도 밝혔듯이 담담하게 써라. 시인이 결정하거나 감탄하는 투, 신파극에 나올법한 ‘아~!’ ‘진실로’ ‘다시 말하자면’ ‘정말’ ‘분명한’ ‘~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등등의 표현은 시인이 경계해야할 단어다.

그리고 꾸미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예를 들자면 ‘아름다운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오월의 정원으로/키 작은 어린아이가 예쁘게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다’라는 표현은 초보중의 초보가 쓰는 형태다. 축약된 말의 덩어리인 시에서 ‘꽃’은 예쁘고 아름다운 상징이므로 여기에다 다른 수식어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장미가 굳이 허드러지게 피었다고 규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아이는 귀엽고 예쁜 상징이며 어른처럼 걷지 않으므로 ‘아장아장’이라는 표현도 중복된 내용이다. 또한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 등등도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므로 시어로 선택하면 그 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시인은 시 속의 화자를 통하여 말하되 결론은 독자가 내릴 수 있도록 여백을 두는 방법이 좋다. 그래서 한 연의 마무리를 ‘~~다’로 끝내지 않는 것이 좋다. 독자는 시인이 내린 결론을 대할 때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라고 되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무리를 ‘~~같이’  ‘그런 듯’ 등 불완전하게 끝내어도 시의 여운이 남을 뿐 아니라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훈적이거 지시적인 표현  ‘~~하라’ ‘~~이다’ 등은 될 수만 있다면 쓰지 말아야할 것들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시도 모방에서 시작한다. 다른 시인의 시를 읽고 좋은 시를 자꾸 모방해 보는 것이다. 그것을 내 것이라고 발표하지 않는다면 공부를 위한 자기만의 모방은 문제될 게 없다. 이때 다른 시인의 시에서 중요하게 공부해야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시인의 응시”다. 그 시에서 시인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시의 의미성’인데 한 편의 시 속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깊은 속뜻이 내포되어 있는 시가 시다운 것이다. 너무 드러나 버리면 산문이 된다.
 
시만 잘 썼다고 좋은 시가 아니다. 이것을 심리적 시인과 사회적 시인으로 나누어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선천적으로 시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심리적 시인으로, 후천적으로 공부하여서 시를 쓰는 사람을 사회적 시인이라고 했다.

어느 경우든 자기가 쓴 시에 못 미치는 삶을 살면서 겉모습만 좋아 보이는 것은 '짝퉁'이라는 생각을 갖기 바란다. 거짓 시는 자기가 썼어도 자기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삶과 같이 가거나 그 시를 이끌어가는 생활의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쓴 시가 살아있는 ‘생명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는 드높은 언어 관습이다. 언어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을 무례한 사람이라고 한다. 저급한 말을 시에 자꾸 차용하면 저급한 시인으로 각인된다. 될 수 있으면 말글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하되 진지하고 품격 있는 말글을 찾아내야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말글에 미숙하다면 치명적이다. 시는 끝까지 말글로 겨루어서 다른 익숙한 말글을 이기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래 기억되는 시는 짧게 말하면서 품격 있는 말놀이가 담겨 있어야 독자의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런 시는 재미있거나 품위가 있어서 독자의 관심도 끌지만 시인의 품격도 높여준다.
 
시를 쓰는 사람은 감성적이고 예민할 수 있다. 감성적이라는 것을 잘 활용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상처를 입거나 스스로 상처를 만드는 경우도 가끔 본다. 시의 본질에 집중해야 시인이 된다. 사람 관계에 너무 신경을 쓰면 주변의 시인이 실수하면 나도 실망하여 시가 싫어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말글과 다투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말글을 물리치고 새로운 말글이 이기도록 글 힘을 연마하자는 뜻에서 필자는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시의 산에는 곧은 나무보다는 뒤틀리고 굽고 처음 보는 모양의 나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시인은 살아가면서 맺힌 한(恨)이나 인간관계를 시로 풀어내는 사람이기도 때문이다. 그렇게 풀어낸 시는 상처가 있고 옹이가 있어도 아름다운 것이다.
   _ 이어산

■ 이주일의 디카시 한 편


명함

비툴비툴 쓴
나의 설명서
손자에게서 받은 선물
 _ 임수현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