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7)힐튼의 역습과 이건희의 질책
[현명관 칼럼](7)힐튼의 역습과 이건희의 질책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5.15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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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대화중에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 상반된 일이나 의견을 말할 때 모순(矛盾)이란 단어를 우리는 흔히 많이 쓰고 있다. 아시다시피 '창 모, 방패 순'이란 단어로 이뤄진 이말은 유래가 있는 말이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내용이지만 전국시대 초(楚)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장에 무기를 팔러 나온 무기상이 창을 들고 구경꾼들에 한바탕 창술을 시연해 보인 다음,  “보시다시피 이 창은 예리함이 천하의 으뜸이다. 어떤 단단한 방패라도 쉽게 꿰뚫을 수 있다."고 말하며 창을 사라고 한다. 아무도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창을 바닥에 내려놓고, 방패를 집어들었다.

다시 그는 “이 방패로 말할 것 같으면 단단하기가 그지없어, 세상의 어떤 창이라도 거뜬히 막아 냅니다"라며 방패를 사라고 종용하자 구경꾼이 무기상한테 말했다.
“당신 말대로 창은 어떤 단단한 방패라도 꿰뚫을 수 있고 방패는 어떤 예리한 창날도 막아 낼 수 있다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한번 찔러봅시다.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소?”

이말에 구경꾼들은 모두 큰 소리로 웃었고, 무기상은 할말도 못해 ‘창과 방패’를 챙겨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오너로서 부하인 직원에게 일을 집요하게 시킨다고 했다. 직원이 어느정도까지 확신하고 있는지 그걸 오너는 즐기는 것이다.

모순이라는 말은 최고의 상품이다. 창과 방패는 명품이다. 그걸 사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창과 방패를 명품이냐, 보잘 것 없는 미물로 만드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부하직원이 오너가 원하는 명품을 만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 오너가 갖고 있는 명품과 싸울 일이 없는 것이다. 경영에서는 그래서 명품이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 답이 없다. 최고의 1등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이 이 경영의 세계인 것이다.

현명관 회장이 바로 맞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성공했지만 "역경의 때가 주는 이점을 아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좀 더 편한 마음이 되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역경이 오니 큰 스트레스 속에서 분투노력만 하며 싸우며 지난 것을 지적했다. 여기서 우리는 직관(直觀)이 중요하다. 통찰이 필요하다.

장기둘 때 선수보다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잘 하는 것처럼 멀리 봐야 전체가 보인다. 그렇게 경영은 전체를 바라보며 달려야 만족이라는 쾌감을 느낀는 것 같다.

현명관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는 이제 이건희 회장과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나온다.  현명관 회장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기업을 운영하면서 위험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위험회피를 해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경영하는 모든 기업인들은 지금,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 경영자들은 코로나19 방역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처방안, IT강국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기업 경영에 올인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서인가 현명관 회장처럼 열심히 뛰면서 홀로 남겨진 사무실에서는 울고 있을 당신은 힘을 내야 한다.  而不覺(이불각) “그러나 그걸 모른다.”라는 이말의 힘을 믿어야 한다. 혼자가 아닌 당신은 가족과 사회와 국가가 친구이고 형제이기 때문이다.

1인 기업이라도 경영은 선수가 감독의 눈으로 해야 한다. 경영은 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앞서 경영의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 본 현명관 회장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걸 모른다"고.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1989년 1월 21일 새벽 두 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이건희 회장은 밤새 경영 현황을 체크하고, 중요 사항은 심야에 계열사 대표와 전화로 보고받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드디어 현명관에게도 그런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지금 뭐 하고 있나요?"

“내년 경영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간부들과 지방 호텔에 왔습니다.”그때 현명관과 신라호텔 핵심 간부들은 충청북도 증평 호텔에서회의를 하고 있었다.

“뭔 전략 회의를 거기까지 내려가서 합니까.

내일 아침 9시까지 회장실에서 봅시다.”

이건희 회장이 특유의 잘라 말하는 어투로 현대표를 압박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너의 첫마디부터 현명관은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다. 힐튼으로 스카우트 되어간 직원들 중에는 특 에이스 급 사람이 여덟 명 정도 됐었다. 힐튼 호텔이 월급 두 배를 준다고 하니 옮긴 것이어서 현명관도 그들을 붙잡을 도리는 없었다.

9시까지 들어오라는 말에 현명관은 회의 시간과 교통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시간까지는 불가능하고 10시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말은 그룹 총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었다. 자기 업무에 충실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새벽에 전화를 건 오너로서는 좋게만 볼 수 없는 항명처럼 들렸다.

서울 중구 삼성 본관의 회장실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현명관과 인사팀장은 무겁게 올라갔다. 회장실에는 그룹 홍보 담당 임원과 재무 담당 이학수 씨가 함께 있었다.

현명관은 재무 담당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자 호텔의 자금 문제에 관한 질책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현명관이 들어서자마자 이건희 회장은 무섭게 질책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힐튼에 뺏겼습니까?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서비스맨 아닙니까? 특급 조리사도 뺏기고 도대체 인력관리를 어떻게 한 겁니까?"

할 말이 없었다. 현명관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인사팀장은 사후 대책을 회장에게 보고했다. 신라호텔도 힐튼에서 A급 직원을 데려오는 등의 향후 관리 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보고를 들으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현명관은 인사 문제는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네는 나가 있어.” 현명관이 인사팀장에게 말했다.

팀장이 나가자마자 순간 이건희 회장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허락 없이 인사팀장을 내보냈다고 화를 냈다. 회장실이 이건희 회장의 노기 띤 음성으로 울렸고 호통이 끝나자 무거운 공기가 나머지 사람들을 짓눌렀다.

잠시 후 정적을 깨며 이건희 회장이 호텔 신라의 자금 사정과 제주 신라 호텔 신축 공사비를 따져 물었다.

“제주 신라호텔 짓는데 돈을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오? 어떻게 할 겁니까?"

현명관은 이런 질책이 낯설지 않았다. 몇 년 전 이건희 회장과의 첫 만남은 리버사이드 호텔 매입에 관한 검토 지시와 보고로 시작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부동산 가치를 생각해서 매입을 원했지만 현명관은 초일류 호텔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리버사이드 호텔의 매입은 좋지 않다고 보고했다. 비록 부하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매입 계획은 취소했지만 오너의 입장에서 현명관이 매우 불편했을 터다.

"현상무는 호텔업이 부동산업의 특징도 있는 걸 모르는 거 같아.”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날, 이 회장이 남긴 말은 현명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때 감정이 아직 남은 것인가?” 현명관은 질책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평소 소신과 계획을 말하기로 했다.

대개 호텔은 7~8년은 적자입니다. 비록 지금은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길게 보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신라호텔 자금 문제는 어떻게 할 겁니까?"

숨 막히는 공격과 방어가 계속되었다.

“신라호텔의 재무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채를 발행하면 될 겁니다. 만약 그래도 부족하면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을 상장하고 자금을 충당하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부하의 보고나 계획이 얼마나 확신 있고 단단한지 알아보기 위해 강하게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가차 없이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허허 이사람… 기업 공개가 그렇게 쉬운 줄 아시오? 호텔 상장한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습니까? 게다가 적자 회사의 회사채를 누가 매입한단 말이오!"

“5개월 정도 시간이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시간 안에 못 해내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창 들고 말 달리던 시절, 삼국지는 장수들의 싸움을 칼이 부딪치는 횟수인 합으로 표현한다. 칼을 몇 번 마주쳤는지 세면서 그 싸움의 치열함을 보여주는데 현대의 장수는 언어와 소신으로 싸움을 한다. 물론 회장님에게 맞서는 대표이사의 힘 대결은 시작부터 상대가 될 리 없다.

화웅의 목을 단칼에 쳐버리고 유유히 돌아와 아직 식지 않은 따스한 술잔을 들이킨 관우의 대결만큼이나 처음부터 이 싸움은 현명관의 패배가 명백했다.

하지만 전문 분야 대 경륜의 대결은 일방적인 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여포 대 관우의 싸움처럼 팽팽했다. 이건희 회장의 질책과 현명관의 대답은 수십 합을 벌이며 1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전문 경영인은 소신을 보여 줄 때 목숨을 걸어야 한다.“

현명관의 평소 소신이었다. 이건희 회장도 그걸 원했다. 그날 현명관은 오너에게 크게 질책 당했다.

동시에 이건희 회장은 “네가 신라 호텔의 진정한 책임자다.”라는 신뢰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회장실 문을 닫고 나오며 현명관은 굳은 각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 죽을 각오로 회사채 발행에 매달려야겠군.”

사실 당시 회사채 발생은 대한민국에서는 국익에 합당한 업종부터 가능했던 상황이라 사치성 업종으로 분류됐던 호텔의 경우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말은 자신 있게 하고 나왔지만 상장은 물론 회사채 발행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1989년은 지금과 다른 대한민국이었다. 상장 여부는 정부 허가사항이었는데 경제정책의 기조가 제조업을 육성하는 데 맞춰져 있어서 소비 산업, 향락 산업으로 인식된 호텔업은 허가해 주지 않았다.

회사채도 마찬가지였다. 건축할 때 들어간 차입금과 이자 부담에 5년 동안 적자였으니 이건희 회장의 호텔 신라에 대한 걱정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부임 이후 첫 흑자를 내고 기쁜 마음에 기념 타월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돌린 때가 1983년 9월이었는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도록 회사의 재무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주식의 과잉 공급을 막겠다는 정부 시책에 딱 막혀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올림픽을 치르면서 서울에는 특급 호텔이 폭증했다.

라마다르네상스, 인터콘티넨탈, 스위스그랜드, 롯데월드 등 5백 개 이상의 객실을 갖춘 대형 호텔이 건설되면서 올림픽 이듬해부터 호텔업계 전체는 불황에 빠졌다. 고객 유치를 위해 객실료를 낮추는 출혈 경쟁을 하던 때였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이자 압박과 5개월이라는 시한을 두고 해내겠다는 결의를 보였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상장시키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관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통부, 증시를 관리 감독하는 증권감독원, 재무부 등 정부 각 부처를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제조업 상장도 허가받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서비스 산업은 소비와 사치산업으로 인식되던 때였기에 나는 대중의 인식 전환을 위한 홍보에도 힘을 쏟았다.

그리고 마침내 회장과 약속한 회사채 발행에 성공한다. 2년 후인 1991년 3월 12일, 상장도 성공했다.(호텔 신라의 상장은 현명관 대표이사 재임 시절 공개 일정과 절차가 마무리 되었으며 실제 코스피에서 거래가 시작된 날짜와 차이가 있음.)

2일 연속 상한가를 치는 성공적인 기업 공개였다. 회장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뤄지는 삼성 그룹 가족회의에서도 신라호텔의 상장 소식은 최고의 화젯거리였으며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들 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나를 더 이상 문책하지 않았다.

역시 큰 경영자였다. 내가 한 모든 것을 지켜봤고, 뭐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룹 총수의 눈에 신라 호텔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리라.

지극히 정성을 다한다면 그는 위태롭지 않게 된다. 하늘이 돕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싸워 본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비록 내가 5개월 안에 상장한다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그 아쉬움은 목표 달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당시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역경 속에 있을 때는 내 몸 주위의 모든 것이 병 고치는 침이요, 약돌이어서 절개와 행실이 갈고 닦이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순경에 있을 때는 눈앞에 가득한 모든 것이 병기의 날이요 창이어서 살이 녹고 뼈가 갈리어도 모른다.

거역경중 주신개침폄약석 지절려행이불각 居逆境中周身皆鍼砭藥石砾節礦行而不覺
처순경내 만전진병인과모 소고미골이불지 處順境內滿前盡兵刃戈矛銷膏靡骨而不知
             -. 채근담/前集第99 (책자 원본에는 한글표기가 상단 것과 그대로 표기돼 바로잡음)

돌이켜 보면 이 시기는 내가 크게 발전했던 시기였다. 채근담은 인생을 크게 둘로 나누어 역경과 순경의 시기로 나눈다. 역경의 시기는 발전하고 자신의 문제를 고치는 때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이다.

채근담이 말하는 진짜 지혜는 맨 마지막 말에 있다. 而不覺(이불각) “그러나 그걸 모른다.”라는 저 세 글자에 핵심이 있다고 본다.

분투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시기라는 것을 알고 담담해지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여유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내게 역경의 때가 주는 이점을 아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좀 더 편한 마음이 되었을 텐데, 큰 스트레스 속에서 분투노력만 하며 싸운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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