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4)읍참마속...이병철 회장의 '잘' 그리고 '많이'
[현명관 칼럼](4)읍참마속...이병철 회장의 '잘' 그리고 '많이'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4.24 09: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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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일에는 희생과 대가가 따른다. '삶'을 도약시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도전 없이, 도약은 없다. 이것이 여든을 살아온 내가 '이 나이에 깨달은 삶의 진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성공했다고 박수를 받는 영광의 시간일수록 그 이면의 대가는 혹독했다.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땀과 인내야말할 것도 없지만, 이룬 후에는 그 자리의 값어치만큼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하면서 제대로 잠도 못자고자유 없이 거의 24시간 대기 상태로 살았던 일, 삼성 구단주 시절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야구 경기에 애태워야 했고, 삼성물산의 회장이 되어서는 거대 그룹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순되게도 거대한 침몰을 경험한 두 번의 도지사 선거 실패는내게 진정한 행복을 찾아 주었다.

이렇게 보면 성공이란 '물건을 먼저 받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고 실패란 대가를 치르고 물건을 나중에 받는 거래'와 같은 것이다.

이런 거래는 과거, 현재, 미래에 끝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도 발생하고 있다.

무언가를 얻고 싶거나 얻으면 그 순간 대가를 치를 일이 생긴다. 이를 철두철미하게 알았더라면 꺼려지는 상황이 조금은 덜 힘들었을 것이다.

치러야 하는 대가보다 내가 받은 선물에 집중했다면 훨씬 감사하면서 생활했을 것이다.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이 뒤늦은 깨침을 바친다. 부디 치러야 하는 대가에 화내거나 두려워 말고 받는 선물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 위대한 거래가 될 것이다. -위대한 거래 '머리말'

현명관 회장의 자서전 'A Great Deal(위대한 거래)'를 지난 주 첫 연재 후 여기저기서 책 주문이 들어오는 현상이 발생했다.

뉴스N제주로 걸려온 전화가 꼭 저자사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사회가 어지럽고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위기의 삼성은 어떻게 극복해서 세계 일류 회사가 되었는지 속시원하게 풀어놓은 책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현명관 회장의 '위대한 거래'의 자서전에서 그가 걸어온 반생을 오로지 기업에 투자하면서 얻었던 경험과 철학, 지혜가 요즘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모양이다.

사실 지난 번에도 서술했지만 이 책은 자서전인데도 무협지 소설처럼 술술 넘어간다.

그만큼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바쁜 세상에 처세술이 필요한 요즘, 이러한 철저한 분석으로 '잘',과 '많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교훈처럼 삼아 기업에서 몸담아 성공한 스토리를 젊은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

우리가 어디론가 성공의 위치에 올라서려면 모델이 필요하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질병과의 싸움에서 허덕이는 삶을 ‘위대한 거래’라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도 참 좋을 것이다. 이 책이 중요한 모델이 될 것이다.

현명관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는 지혜가 녹아 있는 보물창고이다.

 수십년 성실했던 직원이 하루아침에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기흥 모 카페에서 대화중인 현명관 회장(우)
기흥구 소재 모 카페에서 대화중인 현명관 회장(우)

"싸늘하다.
내 다리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정(情)은 규칙을 이긴다."

미스 김은 호텔로 들어서며 전과 달라진 차가운 경비원들의 시선을 자신의 미니스커트에 드러난 늘씬한 다리로 느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침착하자."

얼마 전 부임한 현명관 상무가 호텔의 모든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팁을 금지 시킨 일을 미스 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매매춘 여성의 출입 금지 소식도 동료들의 말을 듣고 알았다.

수년을 보아 온 경비원 황씨가 다가왔다.

"미스 김 이제 호텔에 들어보낼 수 없게 됐어요. 이해해 줘요."
밤 10시, 늦은 밤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손님의 호출을 받고 미스 김은 신라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멈춰 섰다.

“황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번 봐 주세요."

"아… 이러면 곤란한데, 새로 온 현상무님이 장난 아니에요.나 큰일 나요.”

서른 살이 채 안 된 젊은 여성의 안쓰러운 눈빛이 10년 베테랑 경비원 황씨의 눈과 마주쳤다. 황씨는 마음이 흔들렸다. 하루 이틀 본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매정하게 쫓아내야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그동안 명절 때마다 한두 푼, 정으로 받은 담뱃값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황선생님 오늘만 봐주세요. 다음부터 안 올게요.. 중요한 손님이라 지금 올라가지 않으면 안 돼요."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미스 김은 담배 두 보루 값을 봉투에 담아 황씨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아…. 정말 안 되는데….” 황씨는 큰 소리도 못 내고 뒷걸음쳤으나 봉투는 이미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손은 말보다 빨랐다. 미스 김은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에 냉큼 올라탔다. 그리고 감사하다며 연신 허리를 숙여 황씨에게 인사를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황씨는 난감했으나 늘 출입하던 여성을 하루 더 오게 했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다.

다음날 황씨가 받은 몇 푼 되지 않는 돈이 발각되었다. 매춘 여성 출입 금지도 어긴 데다 팁까지 받은 상황이라 사태는 심각하게 돌아갔다. 10년 넘게 회사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동을 감내해 왔던 황씨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될 처지였다.

“황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현상무라도 이 정도 가지고 사람을 자르지는 않을 겁니다. 가벼운 징계 정도 생각하고 기다려 봅시다.”

선배 경비원의 위로가 황씨의 불안한 마음을 다소 가라앉혀 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나고 사건 발생 2일째 되던 날 인사 발령통지가 황씨에게 전달되었다.

현상무는 모두의 예상을 깨는 결정을 내렸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성실했던 직원이지만 해직을 시켰다. 일류 호텔에 다니던 가장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고통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은 매우 크다.

주변에서 관용을 베풀길 원했고 나도 한 번은 봐주고 싶었으나 괴로움을 삼키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은 내게 괴로움으로 남아 있다. 그 경비원은 나와 인사도 나눈 사이였고 많지도 않은월급으로 가정을 이끌던 사람이었기에 쉽사리 내 결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악역으로 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해직 통보를 했다.

그 후 팁 문화가 사라졌다. 서울의 일류 호텔들이 아직도 이 팁문화를 뿌리 뽑지 못하고 있지만, 신라호텔은 내 재임 기간부터 팁을 완전히 뿌리 뽑고 초일류 호텔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24시간 가동되는 호텔에 맞춰 나의 생체 시계도 숨 가쁘게 움직였다.

나는 매일 새벽, 신라호텔 23층 꼭대기부터 내려오면서 지하 5층 기계실,종업원 취침실, 샤워장까지 전부 살피고 돌아다녔다. 먼지는 없는지, 각 층 복도에 비치되어 있는 비상전화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주방의 행주나 도마는 깨끗한지 호텔의 생명인 위생, 청결은 물론 안전관리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포스트잇을 이용하여 지적 사항을 적어 붙이는 일도 빼 놓지 않았다.

"행주가 더럽습니다. 시정 바랍니다."

이런 노란 딱지를 출근해서 발견하면 그 직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리라. 직원들 입장에선 임원이 하루 종일 직접 점검하고 돌아다니니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의 책무를 맡은 나로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일류 호텔을 만들어 직원들과 함께 하리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직 꿈을 향해 철저히 조직을 다져 나가자, 보이지 않는 상품인 고객 서비스가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의 '잘' 그리고 '많이'

신라호텔에서 가장 두려운 장소가 있다. 23층에 위치한 '신라 스위트'는 삼성 임원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방이었다. 이곳에서 이병철 회장은 사장단과 점심을 마친 후 회의를 했다. 주1~2회 열리는 이 회의는 그룹의 사장들에게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더불어 신라호텔의 직원들과 나도 크게 긴장하며 사장단 회의를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출장을 간 사이, 상무인 내가 이병철 회장을 안내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이병철 회장을 직접 보았다. 호리호리한 몸매, 날카로운 눈빛에 차돌처럼 단단한 의지를 품고 있는 모습에 그룹의 사장들이 공포에 떨 만했다. 한 가지 생각을 하면 몇 시간이고 부동자세로 먼 곳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는 풍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현상무, 호텔에 와서 일해 보니 어떤가?"

"재미있습니다.”

“재미있으면 됐다. 일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그것이 회장과의 첫 대화였고 그날 대화의 전부였다. 짧은 말속에서 커다란 무게감을 느꼈다. '예사 분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만남은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 빌딩 33층에 위치한 삼성재팬 회장실에서였다. 당시 신라호텔 손영희 사장과 함께 인사하던 나에게, 이병철 회장은 무심히 신문만 보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너는 뭐 하러 왔냐?"

당황해서 주춤거리는 사이 한마디가 더 날아온다.

“인사만 하지 말고 얘기 좀 해 봐라.”

생전의 이병철 회장 모습
생전의 이병철 회장 모습

이제 마흔을 넘긴 젊은 중역에게 이병철 회장은 패기 넘치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손영희 사장과 함께 일본 호텔의 최신 경향을 파악하고 우리와 비교 분석하여 고칠 것, 배울 것을 알아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무심한 듯 경청하던 회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잘 좀 보고, 많이 배우고 가라.”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치밀함을 갖추었으나 일단 투자를 결정하면 무섭게 돌진하던 회장의 풍모는 짧은 만남 속에 여실히 드러났다. 잘, 많이 짧은 단어였으나 만두 사건을 겪고 난 후라 내게는 천근만근 엄중한 말로 다가왔다.

이 두 마디를 무겁게 마음에 새기고, 나와 손영희 사장은 일본 호텔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관찰했다. 오쿠라 호텔을 중심으로 도쿄 일류 호텔인 제국호텔, 뉴오타니 호텔을 돌아다니며 식사, 룸서비스, 모닝콜을 비교했다. 로비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직원들의 서비스 태도도 점검했다.

초일류를 향한 걸음은 채근담의 경구처럼 지극히 작은 것에서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고 이병철 회장은 그것을 알았으며 무겁고도 간결한 말로 부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출장은 '일본 일류 호텔의 치밀한 벤치마킹 시간'으로 채워졌다.

룸서비스 때 음식은 식지 않는지, 몇 분 만에 나오는지, 모닝콜은 정확한 시각에 이루어지는지, 프런트에서 손님을 맞고 체크인하는 시간은 얼마인지, 일부러 내가 떨어뜨린 담배꽁초를, 몇 분 만에 직원들이 치우는지, 전화 교환원들은 친절한지, 밤늦은 시각 걸려 온 전화는 손님들의 양해를 구하고 바꿔 주는지를 모두 체크하고 기록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신라호텔의 서비스를 이 기준에 맞춰 업그레이드 시켰다. 힘든 일이었지만 잘 보고 많이 배우라는 말이 무겁게 가슴에 남아 저돌적으로 실천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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