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118)
□코로나19와 정호승 시 읽기
필자는 그동안 휴일도 없이 밤늦도록 일에 파묻힌 생활을 해 왔다. 일을 겁내지 않고 즐기는 성격이라 할 일이 자꾸 많아지기도 한다. 이런 내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 3월 29일, 내 옆을 잠깐 스쳐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뒤늦게 받았다는 이유로 나도 불려가서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으므로 별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뒷날 보건소에서 자가 격리 대상자라는 연락 왔다.
2주간 집 밖으로 나오거나 사람을 잠깐이라도 만나는 행위 등을 일절 금한다는 내용이었고 위치 확인 앱을 핸드폰에 저장케 하여 실시간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출장과 몇 가지 행사 일정이 잡혀 있었고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지만 모든 일이 스톱이 돼 버렸다.
이참에 푹 쉬라는 신의 선물인가 보다 하고 집에서 일들을 하려고 하였으나 사무실 컴퓨터에 자료가 다 있어서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열이 나거나 목이 아프거나 감기 증세도 없으므로 검사를 다시 받아서 괜찮으면 자가 격리를 해제해 달라”고 보건소에 부탁을 해 봐도 "한 번 결정된 사항을 번복할 수 없다"는 대답과 ‘생활 구호물품’이라는 상자를 문 앞에 놓고 가는 게 전부였다.
몇 일째 책을 보고 지내려니 좀이 쑤시고 억울한 마음에서 분노감이 슬며시 일었다. 그러다가 “나는 시를 쓰고 평론을 하는 사람인데 이런 상황을 제대로 참아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려 애를 썼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이 말이 떠올랐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을 사노라면 크고 작은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고통은 절집 처마 끝의 풍경을 울리는 바람 같은 것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도 생각해 봤다. 바람이 없으면 어떻게 아름다운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으랴.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미움과 증오와 어둠이라는 인생의 강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용서라는 다리를 놓아서 건너야 한다. 그 다리를 놓지 못하면 증오의 강에 빠져 죽는다.”
오늘은 시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봤을법한 정호승 시인의 시 세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토요강좌를 대신한다.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굳세게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꽃지는 저녁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꽃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
■ 이주의 디카시
그해 겨울
내 나이 9살,
화초가 아닌 잡초란 것을 알게 한
울 엄니 18번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재"
_ 윤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