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8)'재미있는 설화' – '혼인지 삼 선녀탕'①
[장영주 칼럼](8)'재미있는 설화' – '혼인지 삼 선녀탕'①
  • 뉴스N제주
  • 승인 2021.03.0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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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혼인지 삼 선녀탕 사진스토리텔링(신랑·신부 포토존)

혼인지 마을(온평리)의 유래를 보면

제주 시조 고·양·부 삼 선인은 삼성혈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수렵 생활을 하던 중 온평리 바다로부터 떠내려 온 궤짝에 세 명의 공주와 마소, 오곡백과(오곡백과만 보낸 것으로 변환, 나중에 마소는 벽랑국에 방문했을 때 답례품으로 받음) 등이 있었다.

벽랑국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고(옥황상제 사자 삼신 대신이 점지로 변환) 왕이 자기 딸(옥황상제의 딸로 변환)을 보낸 것이다.

궤짝을 건져 올린 곳을 황노알이라 하는 데 이곳 근방에서 삼 공주는 목욕재계한 선녀탕(바다와 근접한 바위로 둘러싼 바닷물 웅덩이로 변환)에서 삼 공주를 맞이한 삼 선인은 연못에 와서(노루가 인도해 준 혼인지 못 세 군데, 현재 한군데는 예전에는 식수로 활용할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물웅덩이였으나 지금은 낙엽이 쌓여 지저분하다. 1년에 한 번 천제를 지낼 때 이 물이 쓰이는 데 이때 1주일 전부터 샘물을 깨끗이 관리하다 한다) 정화수 떠놓고 그 옆 굴에서 신방을 차렸다.

온평리는 온화하고 평화롭다 하여 온평리라 불리고 마을 중심에는 100년이 넘은 백년해로 나무가 있어 마을에 묶어 가는 이들이 무병장수한다는(조천관 근방 금당포는 벽랑국 세 공주가 들어 온 곳으로 조천포로 추정할 수 있는 영주지에 나온 기록이다.

조천포구 연북정 아래에는 금당포터라는 비석이 있다. 고대 전설에 나오는 금당포터, 기원전 3세기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해오도록 진시황의 명령을 받은 서불선단은 천지연 절벽에 ‘서불과차’란 마애명을 새겼다.

서귀포 서복전시관에 가보면 영상으로 잘 소개되는데 조천이란 글씨가 새겨진 비석은 현재 산지천에 있는데, 원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국을 떠나 맨 처음 도착한 곳이 금당포로 추정할 수가 있다.

서불은 이곳에서 천기를 보고 조천이라는 글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고 하며 그 바위는 고려 시대 조천관 건립공사 때 매몰된 것을 산지천 복원 공사 때 찾은 것으로 알려 있다) 이야기가 득남한다는 이야기로 엮어져 전해온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여자의 음부처럼 생긴 곳을 명당자리로 나파동산이라 부르며, 사신과 같이 왔던 거북이(보통 용궁에서 왕자가 뭍에 나올 때 대동하는 동물로 쓰이는 데 이 글에서는 노루로 변환) 흔적 돌이 있다.

○ 우주 삼라만상

하늘나라엔 옥황상제가 천궁에서 선녀들과 함께 산다.
지상나라엔 황제가 황궁에서 양귀비와 산다(서양에선 그리스로마 신화를 참고).
바다나라엔 용왕이 용궁에서 인어공주와 산다.

지하나라엔 염라대왕이 염궁에서 저승사자와 산다.
천상나라엔 왕이 궁궐에서 궁녀와 산다.

천상나라와 지상나라 경계엔 서왕모가 서화정원에서 천도복숭아와 산다.
우리나라엔 단군이 신단수에서 곰과 산다.
남한에서는 마고할미가 마고성에서 혼자 산다.
제주도에는 설문대할망이 영실에서 오백아들과 산다.
그러면?

혼인지 삼 선녀탕 사진스토리텔링(혼인지 전체 전경)
혼인지 삼 선녀탕 사진스토리텔링(혼인지 전체 전경)

혼인지에는 옥황상제 삼 공주선녀(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가 신방굴에서 탐라국 왕자와 함께 산다라하면 어떤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신화가 되어 흘러가다 평론가를 만나, 역사학자를 만나 다른 각도에서 정리한다면 아주 좋은 현상이다.

혼인지 삼 선녀탕에 대한 스토리도 이와 견주어 보아 있으면 있는 대로 재창작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재창작하여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출연하니 첫 시도라 부족함이 있는 건 당연한 수순, 그게 발전 가능성이라는 건데….

□ 장영주 설화전문박사가 새롭게 쓴 혼인지 삼 선녀탕(1)

설화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탐라국(제주도, 영주)에 세 신인이 땅속에서 태어나 자라 황량한 들판에서 가죽옷을 입고 사냥해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하여진 목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와 이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옥함이 들어 있었다.

옥함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오곡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 세 여인은 벽랑국의 공주들로 혼기가 차 혼인할 배필을 찾던 중이었다.

이를 땅속에서 나온 세 신인이 발견하여 나이에 따라 세 공주를 맞아 목욕재계하고 혼례를 올린 곳이 혼인지이다.

혼인한 이들은 활을 쏘아 삶의 터전을 정했는데, 제일 멀리 화살이 떨어진 곳을 ‘일도리’라하여 첫째가 살았고, 두 번째로 화살이 떨어진 곳을 ‘이도리’라 하여 둘째가 살았고, 세 번째로 화살이 떨어진 곳을 ‘삼도리’라 하여 셋째가 살았다.

이런 설화를 소환하여 혼인지에 있는 연못을 하늘나라 옥황상제 세 공주선녀(넷째, 다섯째, 여섯째)가 목욕재계하여 세 신인과 혼인한 연못을 ‘삼 선녀탕’이라 불리도록 하겠다.

○ 하늘나라(천궁) 선문대공주선녀 탄생

하늘나라엔 천궁이 있고 천궁에는 옥황상제가 살고 있지요.

“에구 웬 배가 그리 불룩 튀어 나왔단 말인고?”

옥황상제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어요.

옥황상제, 출처 탐라창조여신 설문대할망 글사랑 2009

황비가 세 번째 임신했는데 글쎄 배가 함빡 만큼 튀어 나왔지 뭐예요?

“황공하오나 이는 보통 일이 아니듯 하옵니다.”

대신들은 옥황상제의 비위를 맞추느라 별의별 아양을 다 떨었지요.

대신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옥황상제는 그래도 태어난 공주 이름은 지어 주어야 할 게 아니겠어요?

“그 애를 선문대라 불러라.”

옥황상제는 하늘나라 셋째 공주의 이름을 ‘선문대’라 지었지요.

선문대는 그야말로 몸매가 대단했어요.

태어나 삼 일째 되던 날부터 걸어 다니다, 뛰어다니다, 날아다니며 엄청나게 빨리 자랐으니까요.

“너는 지상나라에 내려가 살도록 하라.”

옥황상제는 선문대공주선녀가 성인이 되었기에 황실도 좁고, 덩치도 크므로 넓은 곳에서 혼자 살아도 무난하리라 생각하였지요.

선문대공주선녀는 옥황상제의 명을 급히 받는 바람에 속옷도 입을 겨를이 없이 치마에 흙을 가득 담고 태평양 넓은 바다에 내려와 흙을 부으니 ‘탐라’가 생겼고 한라산이 만들어졌지요.

아무리 몸이 뚱뚱하여 천궁에서 살지 못할 정도의 몸매를 가진 셋째 딸 선문대가 미웠지만 그래도 자식 사랑이야 어느 부몬들 다르겠어요?

선문대공주선녀, 출처 탐라창조여신 설문대할망 글사랑 2009

선문대공주선녀를 하늘나라에서 지상나라로 떠내고 보니 옥황상제 마음이 허전하고 여자 혼자 어떻게 살겠나를 걱정 안 할 수 없었던 게지요.

자식사랑 내리사랑이라 아무리 옥황상제라도 어쩔 수 없는 부모 맘이라니깐요.

○ 동해나라 벽랑국 삼 공주 탄생

옥황상제는 늘 가슴 아팠어요.

‘어떻게 지내나?’

옥황상제는 선문대공주선녀가 잘살고 있는지 천리경으로 내려다보다 지상나라 동쪽에 이상한 기운이 돋아나는 걸 보았어요.

자세히 들여 다 보니 동해나라 벽랑국에서 늘 옥황상제께 소원을 드리는 기운이, 자식을 점지해 달라는 자줏빛 기운이었어요.

“저런 가련한지고.”

옥황상제는 먼 지상나라 조그만 곳에서 자줏빛이 가지런히 올라오는 걸 보며,

“저곳에 우리 넷째와 다섯째 여섯째를 보내도록 하라.”

옥황상제의 명에 삼신 대신이 지상나라 동해나라 벽랑국에 내려왔어요.

“나는 옥황상제의 사신이다. 너희 나라에서 간절한 소망을 하늘나라로 올려보내니 이를 가엽게 여겨 옥황상제께서 큰 선물을 내리노라.”

하늘나라 삼신 대신은 동해나라 벽랑국 왕비의 맥을 짚어 말하고는 무언가 주문을 외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어요.

주) 삼신 대신이란? 원래 삼신 할망이라는 말에서 변환시켰다. 삼신 할망이란 자식을 점지해 주는 신이다.

“으앙, 으앙, 으앙.”

동해나라 벽랑국에 아기가 탄생하는 울음소리가 났어요.

“마마, 기뻐하소서. 세쌍둥이 옵니다.”

동해나라 벽랑국에 경사가 났어요.

그렇게 자식 걱정하던 동해나라 벽랑국 왕은 왕비가 공주를 낳았는데 자그마치 세쌍둥이 공주였으니 그야말로 기분이 좋았겠지요.

잠깐, 동해나라 벽랑국은?

문헌 사료나 유적,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대체로 부족국가 시대에 완도지방에 있던 소국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조 후기까지의 각종 지지에는 ‘벽랑도’가 강진현의 섬으로 기록되어 있다.

완도군이 1896년 이전에는 완도, 고금, 신지, 약산 등이 강진현에 속하였다.

‘벽랑’은 ‘청해’와 같은 뜻이므로 완도해역을 벽랑해역이라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진현 남쪽 13리에 고양당(髙梁堂)이 있었다. 제주 고 씨와 양 씨들의 사당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제주 양 씨들의 기일세조(起一世祖) 양보숭의 무덤이 칠량면에 있다고 하며, 장택 고 씨(장흥 고 씨)의 터 자리도 칠량에 있다 한다.

이 지역이 중국의 강남 해양문화와 농경기술이 유입된 곳으로 보면 벽랑국은 완도지방의 해양 소국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설화에 의하면 벽랑국에서 세 공주와 함께 망아지, 송아지, 오곡의 종자를 가져왔다고 한다.

벽랑국 공주와 탐라국 왕자가 혼인하여 자손을 낳음으로 제주 사람들은 삼성혈에서 태어난 세 신인과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의 후손인 셈이다.

사자는 붉은 허리띠를 하고 자주색 옷을 입었으며, 세 공주는 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들은 벽랑국의 문물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망아지와 송아지는 가축이고, 오곡의 종자는 농경문화이며 채색된 의복은 염색기술이 발달한 문명의 집단임을 알 수 있다.

주) 이 글에선 벽랑국 공주를 옥황상제가 보낸 하늘나라 삼 선녀로 환생하였다.

세 공주가 탄생한 후 동해나라 벽랑국에서는 어쩐 일이지 농사가 잘되었고 소와 말이 잘 키워 졌어요.

“이제 공주들이 혼기가 다 됐으니 배필을 찾아보아라.”

동해나라 벽랑국 왕은 세 공주를 시집보낼 생각을 한 거지요.

“마마, 저 서쪽 나라에 보니 붉은 기운이 솟는지라 아마 왕자가 태어날 징존가 봅니다.”

동해나라 벽랑국 책사는 서해나라 땅속에서 붉은빛이 솟아나는 걸 본 게지요.

동해나라 벽랑국 왕이 들여다보니 서해나라 탐라라는 곳 땅속에 구멍이 뚫리더니 뽀얀 안개가 붉은빛에 섞여 피어오르며 눈이 와도 눈이 쌓이지 않고 비가와도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삼성혈’에서 건장한 선남 세 명이 나오는 걸 눈여겨보고 있었던 게지요.

“그래, 네가 공주를 데리고 가 보거라.”

동해나라 벽랑국 사신은 자줏빛 옷을 입고 오곡 씨앗을 목함에 넣고 옥함 속에 삼 공주를 앉혀 서해나라 탐라국으로 온 게지요.

그러는 사이 서해나라엔 아닌 게 아니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땅속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자그마치 세 명이나, 모두 남자아이래요.

그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녔고, 걸어 다니다 뛰어다닐 만큼 성장 속도가 빨랐어요.

이젠 어느새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니까요.

주) ‘삼성혈’에서 태어난 아이 세 명이 ‘벽랑국’ 공주 세 명을 만나 혼인하게 되는, 한마디로 동서화합형 청약결혼을 한 셈인가요?

○ 옥황상제 삼 공주선녀

‘음, 저 정도면 사윗감으로 충분해.’

옥황상제는 하늘나라 천궁에 칠공주 중 셋째는 이미 지상나라로 내려와 설문대하르방을 만나 신풍목장 ‘마장굴’에서 신방을 차려 오백 명이나 되는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넷째 다섯째 여섯째 삼 공주선녀를 선문대공주선녀가 사는 곳으로 보낼 궁리를 하던 참이었거든요.

‘동해나라 벽랑국 공주로 환생시켜 서해나라 탐라국 왕자와 짝을 지어 줘야 내 맘이 편할 거야.’

옥황상제는 이젠 복부인이 다 된 양 결혼 중개업까지 하는가 보죠?

이렇게 하여 동해나라 벽랑국 공주 세 명과 서해나라 탐라국 왕자 세 명이 삼신 대신과 벽랑국 사신이 중매로 맞선을 보게 하니, 옥황상제가 결혼상담소 소장쯤 되는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동해나라 벽랑국 삼 공주선녀가 도착한 곳은 연혼포였어요.

벽랑국 삼 공주선녀가 마중 나온 탐라국 삼 왕자선남과 첫 만남에서 나이 순서대로 짝을 지었으니 그룹 미팅이 100% 성공한 셈인가요?

원래 뿌리를 찾아보면, 하늘나라 옥황상제 삼 공주선녀가 지상나라 탐라국 삼 왕자선남과 혼인하게 되었으니 하늘나라와 지상나라가 사돈을 맺게 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 게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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