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29)고사리 꺾는 회장님
[경제인 칼럼](29)고사리 꺾는 회장님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2.14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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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신축년 새해에도 계속 독자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번에 올린 자서전 여섯 번째 섹션인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 첫 내용으로 '고사리 꺾는 회장님'이라는 제목으로 쓴 것은 제주 사람들에게 많이 공감이 가는 글인데 고사리라는 생명체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의지와의 닮은 모습을 그렸다.

고사리는 사실 제주 사람들에게는 선물이다. 제주의 봄이 되는 시기엔 어김없이 고사리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제주의 오름이나 들판 등지에는 제주의 많은 사람들이 고사리를 꺾으려고 동분서주 한다. 요새는 관광객들 조차도 렌트카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고사리 찾기에 혈안이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녀도 고사리는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가도 어떤 이는 보이지 않고 어떤 이는 잘도 꺾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여러 명이 같이 꺾어도 사람들의 바구니가 용량이 다 다르다는 것.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노하우(knowhow)라는 것이 고사리 꺾는 현장에서도 적용된다.

고사리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파이팅을 하고 태어난다. 길을 가다 마주한 고사리가 주먹지고 파이팅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주먹쥐고 우렁찬 울음을 우는 모양처럼 감동적이다. 그 고사리를 바구니에 넣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고사리는 꺾어도 다시 저녁이 되면 다시 몸을 만들고 재생한다. 실패하거나 좌절이라는 바닥에 닿아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고사리의 저 열정을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아마도 저 고사리의 모습에서 닮은 꼴이 아닌가 싶다.

고사리는 하늘로 뻗어가는 기운의 모습과 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의 시작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고사리라는 식물은 높은 이치가 담긴 일을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특히 제사상에 진설하는 나물로 삼색나물을 올리고 있다. 삼색나물, 즉 흰색은 뿌리를 사용하는 도라지나 무나물, 검은색은 줄기를 먹는 고사리, 푸른색은 이파리를 쓰는 시금치나 미나리 등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뿌리는 조상, 줄기는 부모, 잎은 자녀를 의미) 

고사리의 계절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있는 고사리의 의미를 되새기며 가족들과 함께 고사리 걲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기가 돌아오기를 기원해 본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라!"라는 고사리의 외침이 들리는 이 시간.

코로나19라는 벽으로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네 삶, 오히려 들판에서 상념없는 시간을 갖는다면 새로운 도전, 자신을 향해 파이팅을 하면서 반겨주는 고사리 정신을 배우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늘도 좋은 시간이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이거 네가 들고 갈래?”

자동차 뒷좌석에 턱하니 자리 잡은 고사리를 보자 마음이 심란해졌다. 하지만 함께 고사리를 꺾던 직원도 심난하긴 마찬가지다.

“저도 고사리 들고 집에 가면 야단맞습니다.”

벌써 여러 번 내 대신 고사리를 들고 갔으니 매일 상에 올라오는 고사리가 지겨울 법도 했다. 더 이상 아무도 고사리를 반기지 않느니 고사리를 꺾기 시작한 내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 양손 한가득 고사리를 들고 들어가자, 현관부터 아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또 고사리예요?”

난 죄지은 아이처럼 눈만 멀뚱히 뜬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지만 뒤늦게 고사리를 꺾는 내 취미 때문에 집 안에는 고사리 말리는 냄새가 가득했다.

이런 말을 하기가 민망하고 꼭 자랑만은 아닐 테지만 나는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은 날 부지런하게 만들어줬다. 집 하나를 지어도, 빈터를 고르고 뼈대를 세우고 전기배선을 설치해 번듯하게 완성하면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뿌듯해진다.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일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상사를 모시는 아랫사람들은 곤혹스럽다. 회장이라는 사람이 해가 뜨기도 전에 일터로 나가, 삽(?)을 들고 설쳐대니 아래 직원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상사가 출근하기 전에 출근해야 하고 상사가 퇴근할 무렵에 함께 퇴근하는 것이 직장생활의 예의일 텐데 회장인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니 직원들은 울상이 됐다.

나는 상관하지 말고 근무시간에만 일하면 된다고 하지만 아랫사람 입장에서 내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 직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하는 것이 즐거우니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집에 들어가기 무섭게 머릿속에는 오늘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떠오르고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일터로 나가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남들에게 일중독이라는 핀잔을 들을 만큼 부지런함이 몸에 밴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내가 투자할 수 있는 것이 시간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에 인색하게 군다. 잃어버린 돈은 다시 벌면 되고, 도전한 일을 실패하면 다음 기회를 준비하면 되지만 한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하루 후가, 1년 후가 달라진다. 젊은 내가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었고 젊은 시간을 오롯이 일을 하는데 바쳤다.

부지런히, 성실히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자부심을 느끼지만, 허투루 보낸 시간은 세월이 흐른 후에는 부끄러움이 된다.

열심히 사는 오늘 하루는 내일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되고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슬럼프에 빠진다. 그러나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화장실에서 쓰는 시간도 아끼는 나는 노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술도 사업을 시작하며 배웠고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도 달랑 4곡이 전부다. 작은 공을 가지고 4~5시간씩 노는 골프도 별 취미가 없고 남는 게 없는 등산도 즐기지 못한다.

대신 내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하는 일은 ‘고사리를 꺾는 일’이다. 산을 돌아다니며 고사리를 꺾으며 얻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처음 고사리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천마종합건설을 설립하고 건설을 위해 터를 고르던 중이었다. 현장 근처 산비탈에서 고사리가 눈에 띄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고사리를 꺾던 기억이 났다. 고사리에 홀린 듯이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현장에 나온 직원이 어디 가시냐고 물었지만 잠자코 있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내가 찾은 고사리는 가시덤불에서 숨어 자라고 있었다.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비탈길에 올라 고사리를 꺾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어린 소년이 되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걱정들은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사라진다.

그 가시덤불을 제치자, 푸른 고사리가 햇빛을 받아 빛나기 시작했다. 고사리를 꺾는 아주머니들이 올라오기에는 가파른 산길이었고 가시덤불 속에서 자란 고사리는 크고 억셌다. 어린 시절 추억에 빠진 나는 어느새 주저앉아 고사리를 꺾기 시작했다.

산 비탈길 가시덤불 사이에서 고사리를 꺾으려면 주의력이 필요하다. 딴 생각을 했다가는 산길에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시덤불에 찔리게 된다. 함께 현장에 나왔던 직원이 어디선가 비닐봉지 하나를 구해 와 내 옆에서 고사리를 꺾기 시작했지만 내 눈에는 고사리만 보였다. 한참 동안 허벅지가 뻐근해지고 허리가 시큰해질 때까지 가시덤불을 헤치며 고사리를 꺾었다.

그렇게 아깝고 인색해하던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온 몸이 땀에 범벅이 됐지만 숙면을 한 듯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리고 비탈을 내려오는 내 손에는 고사리가 가득했다.

“당신, 이런 고사리 봤어?”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크고 싱싱한 고사리를 아내에게 자랑했지만 아내는 내가 고사리를 꺾는 것을 처음부터 탐탐해하지 않았다.

고사리를 꺾으려고 나선 길이 아니기에 나는 청바지에 구두차림으로 고사리를 꺾었다. 산비탈 가시덤불에 주저앉아 고사리를 꺾다보니 입은 청바지도 신은 구두도 엉망이 되었다. 시장에서 사면 1~2만원이면 충분할 고사리 때문에 옷도 구두도 망가져 버렸으니 아내 입장에서는 꺾어 온 고사리가 반가울 리가 없다.

회장님 체면에 위험한 산비탈에 기어 올라가 고사리를 꺾는다고 하니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고사리를 꺾어가는 날이 많아지자 아내는 고사리를 찌고 말리느라 일손이 바빠졌고 고사리라면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아내의 걱정과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업상의 중요한 판단을 할 때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새벽부터 고사리를 꺾기 위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따가운 봄볕을 받으며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고사리를 꺾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아무리 거친 들이라도 때가 되면 새싹이 돋아난다. 이런 척박한 땅이 어떻게 생명을 품을 수 있을까 하는 곳에도 어김없이 새싹이 돋는다. 하지만 아직 때에 이르지 못하면 어떤 기름진 땅에서도 생명은 자라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이 거름을 주고 밭을 가꿔도 자연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거둘 수가 없다. 들에 자라는 고사리와 새싹은 늘 성급하고 바쁜 내 마음을 다독여준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들에서 배우는 가르침은 어떤 책에서 주는 가르침보다 크고 진실했다. 모든 생명에 축복을 내리듯 따사로운 봄볕에 성큼성큼 자라는 새싹들을 보며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길옆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크게 자라지 못한다. 길 주변으로 다니는 사람들 손에 쉽게 꺾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외지고 가파른 비탈길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크고 억세게 자라 진한 향을 품는다. 남들이 터놓은 길이 아닌 내 길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는 나를 닮은 것 같아 그런 고사리를 보면 반갑다.

그래서 고사리를 꺾을 때에도 남들이 가지 않는 곳, 외지고 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은 곳에서 고사리가 크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남들이 터놓지 않은 길로 가야 크게 자랄 수 있다고 나를 위로한다. 이것이 일하지 않는 시간을 늘 인색해하는 내가 시간을 내서 고사리를 꺾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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