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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가치가 있는 언어] 이어산 교수가 시 공부했던 8가지 방법은?
[시적 가치가 있는 언어] 이어산 교수가 시 공부했던 8가지 방법은?
  • 뉴스N제주
  • 승인 2021.01.22 23:43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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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12)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12)
□ 시적 가치가 있는 언어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끔 “시 쓰기”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가벼운 취미 수준의 장르가 아니라 시적 대상을 찾아서 그 내밀한 곳까지 파고들어 가는 고도의 전문가적이고 정신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장르다.

시적 대상이란 제련되지 않은 원석 같아서 그것을 잘게 부수고 ‘일상적 언어’이라는 잡석을 골라내고 ‘함축성’이라는 시적 언어만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것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것이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언어다.

언어의 순도가 높을수록 좋은 시가 탄생된다. 순도가 높다는 것은 벌말(필요없는 말)이 없는 새로운 내용의 축약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재료들로 언어의 집을 짓는 일이 곧 시 짓기다.

시 짓기의 많은 이론을 알고있어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사람이 많다. 지극히 정상이다. 처음부터 그것이 잘 된다면 모두가 유명 시인이 될 것이다. 누구나 롤러코스터를 타듯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시의 길에 발을 내디딘 사람은 그 마력에서 벗어나기 힘들기에 쉬었다가도 돌아온다. 가장 비경제적인 장르인 시가 모든 예술의 으뜸에 놓이는 이유도 시의 본질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인간 최고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시 공부를 어느 정도는 했었지만, 시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알기까지는 10여 년도 더 걸렸다. 그리고 이 토요 강좌도 360회에 걸쳐서 이어오고 있지만, 고백하자면 아직도 시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표현력의 부족을 느끼고 있다.

어떨 땐 소경이 꺼진 등불을 들고 밤길을 인도하는 격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이 강좌는 수준 높은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필자가 시업의 길을 걸어오면서 시 짓기의 난관에서 봉착했을 때 그것을 헤쳐 나온 경험을 공유하면서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므로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라는 수준이다.

필자가 시 공부했던 몇 가지 방법을 소개 한다.
1. 시적 대상을 정하되 넓고 크게 하지 말라. 대상을 될 수 있으면 좁혀서 선택하고 집중하라.
2. 시적 대상과 그 주변을 자세히 보고 그 특성과 향기, 색감, 원천 등을 조사하고 그것을 정리하라.
3. 시적 대상과 연결될 수 있는 제3의 비유적 이야기를 적어보라.
4. 내가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걸어보고 그 대답을 유추해 보라.
5. 시적 대상과 자리바꿈을 하고, 그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것을 적어보라.
6. 시적 대상의 독백을 만들어 보라. 그독백은 시의 ‘주제’가 짐작되도록 하라.
7. 주제와 연결되거나 주제를 암시하는 제목을 달아 보라.
8. 형용사나 명사가 아닌 동사를 제목에 달아라.

위 내용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시는 과학적이거나 이성적인 것을 초월한 예술적 표현 방법이기에 그렇다. 일필휘지로 쓴 시는 시 공부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방법이다.

서두르지 말라. 당신의 시를 못 봐서 숨넘어가는 사람은 없다. 서두르면 내용이 단조롭고 빈약하게 된다. 제목을 거창하게 붙이거나 제목에 예속된 내용의 시는 실패하기 쉽다. 

전문적인 용어나 한자어 투성이의 지식을 자랑하는 내용은 꼴불견 작법이다. 담담하게 시적 대상의 말을 받아 적는다는 듯 쉽게 쓰고 그 내용이 일반적이지 않은 새 말이어야 시적 언어로서의 가치가 있다.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어떤 실직

춥고 긴 겨울, 갈 데가 사라진 노장들
그나마 낙이었던 *지공거사 일도
코로나로 실직한 지 오래.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들
눈총은 피할 수 없어
                _ 이 수 을


* 지공거사 地空居士
  지하철을 공짜 승차(무임 승차)하여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을 얕잡아
  부르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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