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협 칼럼](6)남극, 또다른 세상...첫 블리자드,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들
[강민협 칼럼](6)남극, 또다른 세상...첫 블리자드,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들
  • 뉴스N제주
  • 승인 2021.01.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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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협 박사
(사)한국기술사업화진흥협회 기술품질연구센터장

1월 4일 금요일, 남극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블리자드를 맞이했다. 남극에서의 한랭하고 습윤한 폭풍을 블리자드(blizzard)라고 하는데, 매서운 눈보라를 동반한 낮은 온도와 강한 바람이 그 특징이다.

풍속 14m/s 이상, 기온 –7℃ 이하, 시정 150m 이하를 블리자드라고 하며, 풍속 18m/s 이상, 기온 –12℃ 이하, 시정이 0m인 경우는 심한 블리자드로 분류한다. 대체로 겨울철에 자주 발생하는데, 지금은 엄연히 여름철이다. 매해 여름철마다 남극에 오는 하계연구대원의 표현에 따르면, 10년간 매 여름철 남극에 왔으나 이처럼 강한 블리자드는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이 기준으로 보면, 블리자드가 머 별건가 싶기도 하다. 적어도 심한 블리자드 정도는 돼야 남극에 들어온 실감이 나지 않을까? 블리자드는 사진보다는 영상으로 보아야 실감이 날 것 같다. 이렇듯 강한 바람 앞에서도 펭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유유자적하다.

기지 앞에 적지 않은 유빙들이 몰려들었던 어느 날, 편안히 누울 자리를 확보한 물개 한 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휴식이 아니라 취침이다. 거의 6시간 이상을 저렇게 누워 있더니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물개는 여기 바다에서 최상위 포식자이다.

저렇듯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하게 쉴 수 있는 여유는 바로 강함에서 오는 것 아닐까 싶다.
남극에서 펭귄의 가장 큰 천적은 스쿠아(Skua)다.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를 훔쳐먹는 습성 때문에 우리말로 도둑갈매기라고도 부른다. 몸집이 크고 부리와 발톱이 날카로워 ‘남극의 매’로도 불리는데 평소에는 해안에서 크릴 등 바다 생물을 먹지만 펭귄의 알이나 새끼, 심지어 동족의 알까지 훔치거나 잡아먹곤 한다.

스쿠아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사람에게도 위협을 가하곤 한다. 둥지 근처를 지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물론, 새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의 장갑이나 모자, 수첩 등을 물고 둥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림으로써 연구원들이 둥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영특함마저 지니고 있다.

이런 행위를 전환과시(distraction display)라고 하는데, 자신과 그 무리를 보호하기 위한 지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펭귄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등에서는 언제나 악역을 도맡지만, 스쿠아는 암컷과 수컷 사이 금슬이 매우 좋을 뿐 아니라, 새끼들을 매우 아낀다.

가족 단위로 물웅덩이에서 목욕을 즐기는 상황을 자주 목격할 수 있음을 보면, 매우 가족적인 종임이 분명하다. 남극의 청소부 역할도 하는데, 큰 몸집의 해표 사체도 며칠 내에 처리할 정도로 굉장한 포식자이다. 해안가 등에 동물 사체가 없는 이유가 이 청소부들 덕분인 셈이다.

한편, 아이러니하겠지만, 자신이 찜해 놓은 펭귄무리에 다른 포식자가 들어올 경우 격렬하게 다툼으로 인해 펭귄무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한다고 하니, 인간의 눈으로 생물을 평가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도 든다.

남극에서의 또 다른 포식자는 해표이다. 여기 남극에서 주로 보이는 해표는 웨델해표, 코끼리해표, 표범해표이며, 그 중 웨델해표가 가장 자주 눈에 띈다. 체중이 400kg, 길이가 3m에 달할 정도로 몸집이 크며, 순진해 보이는 큰 눈과 통통한 몸매가 특징이다.

물개와 달리 털을 통한 보온능력이 적은 대신 지방이 두꺼워 추위를 막으며, 그로 인해 몸이 통통한 편이다. 이들은 바닷가 자갈밭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을 자는데, 우리가 다가가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저 집채만한 빙산을 보라.

크기 자체만으로도 큰 집 한 채에 맞먹는데, 실제 크기는 저 크기의 약 9배가 된다. 물속에 숨어 있는 빙산을 우리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액체는 고체로 변하면서 부피가 감소하는데 물이 얼어서 고체가 되면 부피는 증가하고 비중은 감소한다.

얼음의 비중은 약 0.9이고 바닷물의 비중은 약 1.0이기 때문에 빙산의 무게에 해당하는 바닷물의 부피만큼 물에 잠기고, 부력으로 인해 나머지 빙산은 물에 뜨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빙산의 90%는 물속에 잠기고 10%만 수면 밖으로 보이게 된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은 매우 과학적인 것이다.

외부활동을 하다가 발견한 나무 밑동이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바위가 아닌, 이렇듯 매끈한 나무 밑동에서 잠시 앉아 취하는 휴식은 행운이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다니는 길들에는 자갈과 이끼류, 그리고 펭귄의 배설물 말고는 거의 없는데다, 나무라고는 자랄 수 없는 이 척박한 땅에 웬 나무 밑동이 있지? 라는 의문 말이다.

생물연구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는 나무 밑동이 아니란다. 과거 포경선들이 이곳에서 고래를 해체했던 적이 있었으며 그때 해체하고 남은 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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