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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고광자 시인 제15시집 '바다와 소나무'
[신간]고광자 시인 제15시집 '바다와 소나무'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01.08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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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시인, 제주 서정의 시적 진실
고광자 시인
고광자 시인

바다의 시인,
제주 서정의 시적 진실을 노래하는 고광자 시인이 최근 문예사조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열다섯 번째 시집 '바다와 소나무'를 출간했다.

고 시인이 '해송'이란  자신의 호를 이번 작품에 제목으로 옮긴 그는 이번 작품에는 비양도 등 제주바다를 그려낸 시편 등이 실렸다.

고 시인은 "애월읍 곽지해수욕장엔 비둘기가 구구구 변함없이 세월을 노래하고 바닷가 날쌘  제비들이 모래사장을 낮게 해회한다"며 "언제나 가까이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준 '바다와 소나무' 돌아서면 그리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시집은 2015년부터 각 문학지에 실린 시모음과  신작시를 포함하여 15번째로 시집을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생의 모자람을 위해 또 채우며 부족한 글을 세상에 발표한다"며 겸손함을 내비쳤다.

이 시는 1부에서 5부까지로 편성했고 1부 곽지에서 16편, 2부 비양도 16편, 3부 토지 16편, 4부 나비야 청산가자 16편, 5부 가마솥 16편 등 총 64편의 제목을 갖고 세상에 드러냈다.

김송배 시인(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은 작품 해설에서 바다의 시인, 제주 서정의 시적 진실을 표현했다고 극찬했다.

이어 "서정적인 기질을 남김없이 제주 자연에 쏟아 붇고 있다. 제주에서 생성하는 자연 사물과 교감하는 서정적 시향(詩香)이 어쩌면 그의 존재이유와 무관하지 않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그가 철저하게 사랑을 발산(發散)하는 시법은 시 정신에서 구현하려는 인본주의(humanism)에 입각한 인간 정신과 인생 노정의 순탄에서 고뇌와 갈등, 모순 등의 현실을 정화하고 화해하는 해법을 탐지하는 그의 지성적인 정서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고광자 시인 프로필
전, 마포문인협회 지부장 현재 고문.
대한민국공무원문인협회회장 역임,
한올문학가협회회장역임
한국문인협회재정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제주지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제주문인협회 부회장역임
제주한림문학회 초대회장역임
한국아동문학회서울지회장
시집: 바다의 시인이 되어, 한라산과 바다는 언제나 손잡고 외 14권
수상 공무원문학상, 영랑문학상, 한국아동문학창작상, 제주문학상 외 다수

◆김송배 시인의 해설을 옮겨본다.

1. 제주 바다와의 시적인 교감

현대시의 요즘 경향은 서정성을 탐구하되 현실적인 생활 현장에서 감응(感應)하는 이미지들을 소재나 주제로 창출하는 시법(詩法)을 많이 대하게 된다.

이는 그 시인이 현재 접하고 있는 일상적인 현장 상황에서 시청각적으로 감지해서 감동으로 연결된 심리적인 교감이 시 장작의 발상 동기로 전환하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서정성은 우리 시가 지향하는 건전하고 안정적인 시정신의 구현으로써 많은 시인들이 자연 정경에 동화(同化)하거나 심취하는 하나의 심적 정화(淨化) 작용을 작품 속에서 탐구하는 시적인 효용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고광자 시인의 15시집 '바다와 소나무' 표지
고광자 시인의 15시집 '바다와 소나무' 표지

여기 고광자 시집 『바다와 소나무』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이처럼 제주 바다와 삶의 행보를 동행하면서 그가 삶의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제주 바다에서 직접 시상을 생성하거나 다양한 생활 속의 애환(哀歡)을 작품에 투영하면서 ‘나’와 ‘시’가 제주 바다와 함께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작품 「모국어와 인물」 중에서‘나는 누구이고 /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 조상님의 핏줄이요 어미의 딸이요 / 한 남자의 아내이며 애들의 어머니. // 오늘날 비양도에서, 곽지에서, 홍은동에서 / 모국어로 탄생하는 시가 고맙고 / 바다의 둥근 수평선을 바라봄이 축복이요 / 백련산의 꾀꼬리 들려오는 터전에 / 감사하는 하루를 연다.‘라는 그의 실재(實在)의 상황에서 읽을 수 있듯이 ’나‘와 ’시‘에 대한 불가분의 상관성을 토로(吐露)하고 있어서 자아 인식과 성찰의 자화상을 제주 바다에서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제주의 여인
전통음악 시조창을 띄우니
한라산도 내려와 장구를 친다
도포 자락 휘날리는 하얀 포말
곽지 바다가 대금을 분다

시의 소리 모여와 합창하는
서녘의 아름다운 황혼
하늘빛이 고와라

바다와 소나무
수평선에
시를 쓴다.

--「바다와 소나무」 전문

고광자 시인은 이와 같은 어조로 ‘수평선을 바라보는 / 제주의 여인’임을 전제로 시의 도입상황을 설정하고 시조창과 시를 병행하면서 ‘바다와 소나무’ 그리고 ‘수평선’ 을 동시에 창작의 모티프로 응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집의 표제시(標題詩)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바다와 소나무가 아님을 절감하게 하는데 거기 잠재한 내면에는 제주도의 정취와 그곳에서 살아온 현실 체험들이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점을 깊이 이해하게 한다.

그는 시조창과 시의 소리를 펼치면 ‘한라산도 내려와 장구를’ 치고 ‘도포자락 휘날리는’ 곽지 바다의 하얀 포말이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은 그가 얼마나 제주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거기에 동화해서 낭만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로즈마리 조롱조롱 달린 새날
마당 한가운데 자리를 떡 버티고
한라산의 힘찬 호흡에 화답하는 해송

솔방울 수루루 세찬 목덜미 부여잡고
바람 부는 곽지 바다 거센 파도를 안는다

늙은 향나무와 비자나무
곳곳에 피어나는 향기 어린 제주 수선화
‘시가 있는 해송의 집’에
노트북은 나의 분신인 양 비행기를 타고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도닥이는 한라산과 눈이 마주친다.
--「곽지에서」 전문

고광자 시인은 ‘한라산의 힘찬 호흡에 화답하는 해송’과 ‘바람 부는 곽지 바다 거센 파도를’ 남달리 좋아한다.

거기에는 ‘늙은 향나무와 비자나무’, ‘제주 수선화’ 그리고 ‘시가 있는 해송의 집’이 있어서 그가 평소에 동경하면서 사유(思惟)의 원천으로써 시와 시조창이 생성하는 ‘곽지 바다’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제주 사랑은 자애(自愛-self love)의 지향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수선화가 만발한 제주도 ‘곽지리 1575-18번지’에서 생존의 터전을 마련하고 언젠가는 마포 ‘신수동 93-153번지’에서 추억을 쌓고 마포문인협회 회장과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서대문구 ‘백련산의 쾌적한 바람이 불어’오는 홍은동 7층에 둥지를 틀고 한국문협과 한국펜에서 중견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실생활(real life)에서도 그가 불망(不忘)의 제주에서 아직도 어른거리는 흔적의 여백에는 한림읍 한림공원, 청천면의 자욱한 안개, 월문리의 벌 나비, 관덕정 돌하루방, 명월리 명월대, 제주 중앙성당, 제주 중앙로, 금악리 금오름 그리고 천년의 섬 비양봉과 자귀도 석양은 항상 그의 심저(心底)에서 시를 창조하기 위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정신적인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작품 「제주 영주십경」은 지금 ‘돌아봐도 돌아봐도 빼어난 섬 / 흐트러짐 없이 우아한 한라산 / 영주십경이 과연 절경’으로 전국에서 칭송이 자자한 제주의 명승지로 그 풍광의 미적자태를 그는 가득 누리고 있는 것이다.

2. ‘비양도’ 정경에 함축된 이미저리

고광자 시인은 제주에서의 궤적(軌跡) 중에서도 ‘비양도’에 많은 삶의 의미와 시적인 복합 이미지(imagery)를 탐색하고 있다.

그는 ‘비양도’를 소재로 연작시를 창작할 정도의 심혈을 기울여서 다양한 정경을 묘사하고 있어서 그의 정감은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吸引)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그는 작품 「수채화가 있는 비양도」 중에서 ‘유일하게 화산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 코끼리바위, 아기 업은 돌, 화산층 등 / 보존되고 있는 천연기념물 / 해안 길을 돌며 감탄의 소리. / 서녘으로 지는 석양을 볼 때면 / 꼭 있을 것 같은 저편 하늘 / 미지의 세계로 빨려갈 것 같다’는 시각과 청각 등의 이미지가 공감각적으로 현현되는 비양도의 실상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투영되어 있다.

그는 ‘나는 비양도를 좋아하는 / 바다의 시인(「해녀와 시인」 중에서)’이라거나 ‘비양도 예술인의 집 / 서각을 하여 달아놓으니 근사하다(「비양도 예술인의 집」 중에서)’, ‘바다에서 태어나 / 바다가 좋아 / 바다에 산다네.(「비양도-천년의 섬」 중에서)’ 그리고 ‘네 몸이 곧 신선이니 / 세월 다 잊고 / 새가 되어 나무가 되어 / 나도 비양도에 산다네.(「외가리」 중에서)’ 등의 어조와 같이 비양도에서 시인으로 살고 있음을 한없이 충만된 정신적인 지표(指標)로 각인(刻印)하고 있다.

바다도 맑게 세수를 하고
새날을 맞고 있네
나는 이곳이 좋아
굴뚝으로 솔솔 연기 날리며
아궁이에 불을 지폈네.

온돌은 아랫목을 데우고
뚫어 놓은 천장으로 별들이 총총
처녀 가슴 반달도 보고 있네.

비양도는 동화의 섬
여기에 있으면

시인이 되고
삿갓이 되네
유랑구름이 되네.

--「비양도-새날・2」 전문

고광자 시인은 이 비양도에서 구가(謳歌)하는 제재(題材)는 대체로 바다와 섬에서 교감하는 청정(淸淨)한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 전체를 채색하고 있다. ‘나는 이곳이 좋아 / 굴뚝으로 솔솔 연기 날리며 / 아궁이에 불을 지폈네.’라는 정경은 바로 그가 시인으로서의 정감적인 긍정으로 유유자적과 성찰의 의식이 비양도에서 원류로 흐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작품 「비양도-새날 1」 중에서도 ‘뒷집 아주머니가 빠끔히 내다보며 / “왓수광? 반갑수다. / 이번엔 좀 오래 살다 갑서.” / 성글성글 앞니로 그림처럼 웃는 / 비양도 해녀 // 담벼락 사이 / 차 한 잔의 정을 나눈다.’는 이웃 간의 정의(情誼)가 넘치고 있으며 작품 「예술인과 이장」 중에서는 ‘7년이란 세월이 후딱 지나가니 / 동네 분들도 견제가 사라졌다 / 젊은 새 이장님이 지나가다 새해 인사를 한다 / “비양도가 올해는 바빠질거우다”’라는 이장과의 소통은 이제 비양도 완전한 주민으로써의 의사를 교환하는 정다운 정경이다.

바다 위에 뜬
대형 초가집
그곳에 누가 살까요

사면의 바다는 멍석
보말, 소라, 미역, 꽃멸치, 톳
온갖 바닷새들의 노래에
백로, 반딧불, 황근꽃, 로즈마리
아기 업은 돌, 코끼리 바위
어부와 해녀
그리고 내가 살지요

비양도는
한 채의 대형 초가집
대식구를 거느리고
바다를 지키고 있지요.

--「대형 초가집-비양도」 전문

그는 다시 비양도 전체를 ‘한 채의 대형 초가집 / 대식구를 거느리고 / 바다를 지키고 있’다는 비유로 그 소박한 경관에 감탄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여기에서 보말, 소라, 미역, 꽃멸치와 톳 등의 해산물이 풍성하게 넘쳐서 ‘사면의 바다는 멍석’으로 여유롭고 한적한 곳이며 한편 백로 등 ‘온갖 바닷새들의 노래’와 함께 반딧불, 황근꽃과 로즈마리지 그리고 ‘아기 업은 돌, 코끼리 바위’ 등의 비양도 특징적 현상에 대해서 그는 영육(靈肉)의 환상적인 몰입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비양도에서 결론적인 시적 진실은 ‘어부와 해녀 / 그리고 내가 살지요’라는 자신이 동행하면서 그 섬에서 다양한 체험을 배가(倍加)하고 있어서 앞으로 비양도 사랑과 함께 더욱 활기 넘치는 작품들이 창조될 것으로 확신하게 한다.

이 밖에도 ‘손님처럼 우아하게 / 비양호를 타고 와서 / 새빨간 혈관으로 피어나는 / 바다 사랑 // 한라산을 바라보며 / 바다를 바라보며 / 비양도 섬처녀가 된 / 제라늄.(「제라늄」 전문) 그리고 ’비양도의 바람은 물결 / 몰고 다니는 바람의 신 / 바라보는 자체가 시다(「바람-시 3」 중에서)‘라는 그의 명징(明澄)한 비양도 사랑이 그의 내면에서 항상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3. 비극의 역사 현장 회상과 아버지

고광자 시인에게는 이와 같은 낭만이 충만한 제주 사랑에서도 지금은 잊혀져 가는 비극의 역사 현장을 회상하면서 그 참극(慘劇)에서 아직도 생경하게 남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문득 북받쳐 오르고 있다.

그는 ‘갑자기 내 아버지가 그립다. / 가을처럼 눈물이 나려 한다 / 천륜의 바다 / 나는 하 많은 사랑을 받았고 / 이젠 사랑을 주어야 할 때란 것을.(「71세 생일날」 중에서)’ 또는 ‘1세기 삶 아버지가 걸어온다 / 틀니 없는 노인네가 지나간다(「무궁화」 중에서)’는 등의 사부곡(思父曲)을 애절하게 들려준다.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육지에 6. 25전쟁이 터졌다(「갑종합격을 받고」 중에서)’는 애월읍의 확성기 소리에 ‘대한민국 사나이’가 ‘나의 조국아’를 외치면서 신체검사에서 갑종합격을 받고 입대하여 참전용사가 되었던 위기의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시적인 발성(發聲)이 시작된다.

뻐꾸기가 10시를 칩니다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의 흐름도 흘러갔지요.

후박 꽃 하나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내 발자취를 기다립니다.

아버지의 초상화가
6·25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가
제주도 도민 훈장 증서가

벽면에 걸린 채
예전처럼 방은 그대로인데
빈자리가 더욱 그립습니다.

--「국가유공자」 전문

그의 아버지는 참전 ‘국가유공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의 초상화가 / 6·25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가 / 제주도 도민 훈장 증서가’ 벽에 걸린 채 남아 있어서 그는 더욱 사모(思慕)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당시의 국가의 전란이 국토와 국민의 생사가 걸린 시점에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사나이로 참전하게 되고 국가유공자로 찬사(讚辭)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예전처럼 방은 그대로인데 / 빈자리가 더욱 그립습니다.’라는 어조로 벽면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유공자 증서들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들과 함께 아버지의 활짝 핀 초상(肖像)을 가슴에 품은 채 역사를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튼튼한 굵은 등뼈
다시 동족상잔이란 상상도 하면 안 되지요
할아버지가 벌떡 관을 열고나올 테니까요

새로운 뉴스가 다시 흐르고
남북 군인들이 발굴하는 공동 합세에
유해 목걸이 인식표를 발견하게 되니
투명의 그분들이 서 있는 것 같아요

늦게나마 가족의 품에 안긴 영웅의 안식
충혼 묘의 영혼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6・25 참전용사인 내 아버지도
그들에게 거수경례를 해요. 묵념을 해요.

--「삼팔선」 중에서

다시 고광자 시인은 아버지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동족상잔의 현실적인 역사의식이 새롭게 부각되고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참전전사자들의 유골을 찾고 있는 실상의 뉴스를 보면서 아버지와 함께 거수경례와 묵념으로 진심어린 예(禮)를 표하고 있다.

그는 ‘3. 8선을 지우개로 지우면서 나비도 훨훨 / 삼팔선 두 동강 언제나 넘나들 수 있을까요’라는 애국적인 관념이 아버지와 동시에 오버랩되면서 그의 시법을은시적인 사회성 내지는 시사성에서도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충혼은 ‘무궁화를 닮은 국군 6・25 참전용사 / 제주 중산간에 국립충혼묘지가 확장중이라 / 2021년에 끝난다고 하니 그곳에 안치를 위해 / 임시 양지공원에 모’셔져서 내년쯤에는 충혼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할 예정이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 한 권의 시집을 낭송으로 들으며 / 환히 웃던 아버지가 지금 왜 더 그리워질까? / 16 년 5월 보령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천륜의 바다 시집을 내고」 중에서)
- 대한민국의 국군 용사였던 / 내 아버지도 내 남편도 내 아들도 / 나라 사랑! 충성 언제 나 자랑이다. / 백의민족은 휘날리는 태극기다.(「한글날 태극기」 중에서)
-“고맙다. 잘 먹었다. 오늘이 내 생일이란다.” / 온화한 얼굴로 아버지는 늘 인사를 하였 다. / 소풍 가신 아버지.(「영원한 국군 참전용사」 중에서)
- 곽지리 하얀 집 마당에 핀 무궁화 / 아버지가 평생 가꾸던 소중한 손길 / 오늘도 환하 게 웃는다(「꽃잎의 수난」 중에서)

4. ‘곽지 바다’에서 음미하는 서정성

고광자 시인은 서정성을 진솔하게 탐색하는 진정한 서정시인이다. 시인들은 자연 서정을 주로 탐구하는 관념적인 경향이 있는데 그는 특히 제주 서정에서 다변적인 자연 섭리와 순응의 미학을 추구하는 안정된 시 정신을 발현하고 있다.

살며시 다가온 구름 무리
광대한 자연의 빗살

상사별곡(相思別曲)을 부르며
세상만사 섧지 않은 인생사를
새 아침 붓을 들고
생각 사(思)에 총총 수를 놓는다

넓은 바다에
띄운 시조창의 율녀
한라산이 내려와 귀를 기울인다
곽지 바다가 음표를 띄워 놓았다.
--「새아침」 전문

그는 바다 시인이면서 ‘시조창의 율녀’로서 그에게 내재되어 있는 지적(知的)인 정신세계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제주 자연의 친화로 안온하고 평화로운 인생관을 구현하려는 그의 작품에서 광범위한 이해를 흡인하게 한다.

그의 ‘새아침’은 그의 생활 근거지였으며 정서적인 모태(母胎)이 ‘곽지 바다’에서 열린다.

구름의 무리와 자연의 빗살 그리고 넓은 바다와 한라산 등이 ‘상사별곡(相思別曲)을 부르며 / 세상만사 섧지 않은 인생사를’영위하고자 하는 그의 푸른 욕망과 무한의 기원이 동시에 발현하는 서정적인 사유에 공감하게 된다.

그는 작품 「부추꽃」 전문에서도 ‘봉평 메밀밭을 닮은 곽지 정원 / 서울 주인 기다리며 / 밤하늘 우러른 부추 꽃 / 지난 장마에 쑥쑥 자란 앙가슴 / 족두리도 쓰기 전에 잉태했다. // 왕왕 왕벌이 들락이는 밤 / 곽지 정원에 깊어가는 별꽃 사랑.’이며 작품 「둥글레」 중에서도 ‘제주로 건너온 후 구엄밭에서 곽지로 / 한 번 준 사랑은 변할 수 없다 / 둥굴레 꽃이 / 조롱조롱 달려서 웃는다.’는 등의 서정적 정감(情感)은 역시 ‘곽지’라는 정적(靜的)인 토양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꽃멸치가 떼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
고기들은 질서가 있다

숲속의 반딧불도
바다에 내려와
등불을 달고 다닌다

밀물 썰물의 오묘
바다는 자랑도 아니하고
침묵하지도 않는다.

--「꽃멸치와 반딧불」 전문

여기에서도 제주도의 명물인 ‘꽃멸치와 반딧불’을 작품 소재로 취택하면서 그가 평소에 간직한 제주 사랑이 다시 부상(浮上)하게 되고 ‘바다=꽃멸치’ 그리고 ‘숲속=반딧불’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켜서 서로 바다에서 만나서 오묘한 정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바로 ‘바다는 자랑도 아니하고 / 침묵하지도 않는다.’는 밀물과 썰물의 자연 순환의 조화에서 획득한 서정시의 한 단면임을 이해하게 한다.

달려온 세월만큼은 아니 되어도
목숨 다할 때까지
시작노트에 붓놀림을

이젤을 세워
바다를 채색하고
시조창을 부르며

심중의 사과나무
정성 다하여
지극한 삶을.

떠오르는 얼굴
영역의 아이들아
언제 자랐나 그만큼.
--「사과나무」 전문

고광자 시인은 자연 사물을 응시하면서도 ‘세월’과 ‘목숨’(생사)까지도 순응과 수용 미학에서 서정시의 근간(根幹)과 핵심작인 주제의 의미성을 구가하는 특성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이 ‘사과나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젤을 세워 / 바다를 채색하고 / 시조창을 부르며’ ‘지극한 삶’을 추구하는 시법에서는 그가 탐색하고 구현하려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복합적으로 용해(溶解)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정시는 고광자 시인의 주관적인 체험과 감정 등이 자신의 생활환경으로 하여 환기(換氣)된 현상이 작품으로 묘사되는 자신의 정제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는 작품 「호박의 꿈」 전문에서는 ‘동글동글 둥글둥글 / 때론 맛난 반찬이 되고 / 언어의 보약이 되는 / 지구 사랑 // 튼실한 만삭 / 잎사귀 검버섯 피어도 / 정안수에 비는 / 어머니 사랑.’이라는 어조로 호박의 진정한 꿈은 어머니의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 「반달」 「고사리와 안개」 「메꽃처럼」 「달빌 수국」 「토끼풀꽃 마당 」 「경의선 숲길」 등등에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순정적인 운율로, 때로는 인간들의 여망인 삶의 강한 편린들로 현현되고 있어서 그의 서정은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고광자의 시집 『바다와 소나무』의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이미 시집 『바다의 시인이 되어』 『한라산과 바다는 언제나 손잡고』 『천륜의 바다』 등 14권 시집을 상재하고 공무원문학상, 영랑문학상, 제주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시인으로서 시조창도 대상을 받은 다재다능의 활달한 모습을 존경하게 된다.

그는 서울과 제주를 왕래하면서 시와 창으로 인생을 충전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구상하는 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평소에도 변함이 없듯이 제주를 지극히 사랑하면서 취득한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역시 제주 바다의 시인이란 별칭에 걸맞는 시인이다.

그는 대체로 이 시집에서 제주 바다와 교감하면서 사랑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특히 비양도에 대한 애정은 그 정경의 정황(情況-situaition)만큼이나 황홀이 충마되어 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역사적인 회상에서 잊혀지려는 아버지에 대한 사모의 부정(父情)이 애절하게 각인되고 있어서 위난의 역사의식을 다시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는 서정적인 기질을 남김없이 제주 자연에 쏟아 붇고 있다. 제주에서 생성하는 자연 사물과 교감하는 서정적 시향(詩香)이 어쩌면 그의 존재이유와 무관하지 않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가 철저하게 사랑을 발산(發散)하는 시법은 시 정신에서 구현하려는 인본주의(humanism)에 입각한 인간 정신과 인생 노정의 순탄에서 고뇌와 갈등, 모순 등의 현실을 정화하고 화해하는 해법을 탐지하는 그의 지성적인 정서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