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칼럼](15)바수반두의 혜안(慧眼), 보이는 것은 일체가 진실이 아니다.
[김성훈 칼럼](15)바수반두의 혜안(慧眼), 보이는 것은 일체가 진실이 아니다.
  • 뉴스N제주
  • 승인 2020.12.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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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성훈 수필가
김성훈 수필가

바수반두의 혜안(慧眼), 보이는 것은 일체가 진실이 아니다.

용수(龍樹 ; Nagarjuna)의 중론은 2세기경에 설파되었으며 5세기경에는 무착(無着 ; Asanga)과 세친(世親 ; Vasubandhu)의 유식론으로 발전하였다.

용수는 일체가 인(因)과 연(緣)으로 생겨났다가 인(因)과 연(緣)으로 변화하고 인(因)과 연(緣)에 따라 사라진다고 보았다. 용수는 이것을 공(空)이고 가명(假名)이며 중도(中道)의 이치라고 말하였다. 단 하나의 현상도 인과 연을 따라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일체의 모든 법이 공(空)한 것이라고 설파하였다.

바수반두(Vasubandhu)는 인식(認識 ; cognition)에 대하여 논하였다. 일체의 인식이 허상(虛像)이고 미망(迷妄)이라는 것을 설파하였다. 인간의 인식작용을 보면 일단 오감을 통해 외부 대상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이를 분석하며 외부대상을 인식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촉감으로 느끼면서 외부대상을 파악하여 인식한다. 이 다섯 가지 감각을 오감이라고 하는데 이 오감은 인식을 할 뿐이고 좋고 나쁘다는 분별을 하지는 않는다.

좋고 나쁘다는 것은 어떻게 분별되는가? 그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과거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의식이 근원적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alaya vijnana)를 음을 따라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한다. 분별하는 의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과거 정보와 현재의 정보를 통합하여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현재 삶에서의 행위결과도 모두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된다.

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투영하여 만든 환상일 뿐인 것이다. 이 세상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다. 이는 법화경에서 설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며 내 마음이 굳건하다면 외부의 어떤 대상도 나를 괴롭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사업가가 비행기를 제 시간에 타지 못하여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없었다. 그는 비행장에서 계약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생각하며 매우 고통스러워하였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비행기가 추락하였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순식간에 고통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안도감과 다행스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사업가는 지혜가 있어서 그 순간에 요사스러운 마음의 작용을 깨달았다. 그 사업가는 그 후부터 어떤 불행한 일을 직면하게ㅐ 되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일체유심조! 이 진리만 깨달아도 인생의 많은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항상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의 눈으로 본다면 인식하는 과정에서 투영된 외부 대상물의 형상은 허망한 것이므로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 창문을 열고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이상한 냄새를 맡고 동승한 사람이 운전자에게 말하였다.

“저 옆에 있는 밭에 거름을 준 모양이로군요.”

운전자가 잠시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말하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방귀를 뀌었습니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인식은 믿을 수 없고 자기중심적이다. 만일 운전자가 동승자의 질문에 “그렇군요.”라고 대답하였다면 동승자는 끝까지 주변 밭에 거름을 주었기 때문에 거름 냄새가 난다고 믿었을 것이다. 동승자의 아뢰야식 정보와 현재의 정보가 통합되어 이상한 냄새는 거름냄새라고 분별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좋다’ 혹은 ‘나쁘다’하는 분별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항상 허망하고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세상에서 극단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극단의 세계는 비극의 세계이다. 극단적인 대립은 전쟁과 파국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과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만이 옳다고 믿은 것을 참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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