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잠자리
창공 휘젓던 잠자리 한 마리
지친 날개 쉴 곳 어디였을까
수많은 겹눈으로 찾아보았을 텐데
그 어디에도 없었을까
수고 많은 내 손등은 아닐 터
-조현석
[해설]조현석 시인은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 스케치』 등을 출간했고. 중앙일보, 경향신문 기자로 근무했으며 현재 도서출판 북인 대표이다.
잠자리 한 마리 창고를 휘젓고 다니며 쉴 곳을 찾았지만 시인의 손등에 앉았다. 시인은 손등의 잠자리에 자아를 혹은 생을 투사하고 있다. 생이라는 것이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과 다를 바 없음을 잠자리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서유기(西遊記)」에 보면 손오공이 72가지 도술과 구름 타는 법을 익혀 용궁에 가서 여의봉을 빼앗고 천궁에서는 선단을 훔치는 소란을 피운다. 이에 부처님이 “내 손바닥을 벗어나면 소원을 들어주고 그러지 못하면 벌을 주겠다”고 하자 손오공은 근두운을 타고 수 만리를 날아갔지만 결국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 봐야 넌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일 뿐이야”라는 관용적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오늘의 인간도 스마트폰을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장착하고 온갖 도술을 부리며 구름을 타고 나는 존재가 된 것 같지만 역시 부처님의 손바닥 안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손오공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본래의 서정시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시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보다는 분열상, 파괴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오늘의 시대가 다원적이고 복합적이고 혹은 탈권위적 무정부 상태로 치닫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것이다.
극순간 예술로서의 디카시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의 명징하게 제시함으로써 오늘의 시가 잃어버린 서정적 비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시인의 손등에 앉은 잠자리를 통해서 한계 내 존재인 인간의 실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디카시 「잠자리」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