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15)정직의 무게
[경제인 칼럼](15)정직의 무게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0.11.08 0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의 후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번에 올린 '정직의 무게'라는 주제는 김택남 회장이 위기에 몰렸을 때 정직이라는 얼마나 위기극복에 도움을 주는 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친구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아버지는 보물이고 형제는 위안이며, 친구는 보물이자 위안이다' 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있다. 그만큼 친구는 아버지와 형제보다 또다른 차원에서 중요한 존재이다.

사업을 하면서 늘 오르막길을 걷는 탄탄대로의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어렵다. 서로 맞물려 있는 관계로 이어졌기에 부도가 이어지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다. 그 정직이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소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지면서 '정직'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졌을 때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앉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다른 사람이 다른 말을 해도 그 믿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어려워도 정직해야 되는 것이다. 특히 가장 가까이 잇는 친구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 정직이 친구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더욱 어려워진다.

김회장이 사업을 하면서 쌓아 올린 정직의 무게는 당시 위기를 돌파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또한, 위기일 때 빛나는 것은 '지도자의 리더십'인 것이다. 집에 들어와 잠자는 아이와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김 회장의 말에서 우리는 가족이 있기에 지금 어려워도 모두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진정한 친구가 있기에 용기를 갖고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들은 그러한 감정을 자식에게도 전파되어 아이가 진정한 친구가 하나 정도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부모와 친구의 차이점이라면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더라도 친구는 늘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친구를 영원히 함께 하고 이 글을 통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나는 자식들에게 엄한 아버지는 되지 못했다. 워낙 권위를 차리는 데는 관심도 없었고 아이들을 일일이 가르칠 시간도 부족했다.

대신 아버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배우는 것은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딱 하나, 내가 자식들에게 행동뿐만 아니라 말로 가르치는 것이 있다. 바로 정직하라는 것이다.

“거짓말 하지 마라, 도둑질 하지 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자식들이 어떤 사람이 되든지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정당한 대가 없이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며,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채워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거짓말, 도둑질, 속임수가 잠깐 동안 몸을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중요한 신용을 잃게 한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으면 많이 잃는다’는 말이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신용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자식들에게 늘 ‘정직’하라고 가르치고 나 역시 정직하려고 애를 쓰지만 나는 일생의 단 한번, 내 미래를 걸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한참 사업이 뻗어가던 1996년 무렵이다.

“형님, 00전기가 부도가 났답니다.”

수금을 다녀온 처남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태평양기전은 사업이 안정되긴 했지만 실적과 자본의 부족으로 아직 포스코의 제1협력업체는 되지 못했다. 다만 품질을 인정받아 조금씩 사업을 확장하고 있던 시기였다. 00전기는 당시 포스코 제1협력업체였고 포항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00전기의 하청을 받아 일을 수주하던 때였다. 00전기의 부도는 포항의 전기관련 업체들에게 대재앙이었다.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태평양기전도 00전기로부터 받아놓은 어음이 5억 원이나 됐다. 나는 처남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00전기를 찾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00전기의 대표를 만났다. 대표를 만나 5억 원짜리 어음을 꺼내 놓았다.

“저 주실 돈 있습니까?”

00전기 대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의 마지막 희망은 무참히 깨졌다. 당장 결제해야 할 자재비 생각에 눈앞이 컴컴해졌다. 부도난 00전기의 어음으로 태평양기전의 운명도 위기에 처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눈앞에서 부도난 어음을 찢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소를 하네, 고발을 하네,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고소와 고발을 한다고 해서 그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괜한 기대에 시간을 끌다간 태평양기전이 더 위험해질 뿐이었다. 나는 헛된 희망을 품기보다 절벽에 서서 해결책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00전기 대표는 나에게 8천만 원짜리 부동산 문서를 하나 건넸다.

나는 그 부동산을 매각하고 나오면서 속이 쓰렸다. 00전기의 부도는 예견된 일이었고 포항의 다른 업체 어음은 미리 결제를 해줬다는 소문이 돌았다. 포항 출신이 아닌 섬 촌놈 업체의 어음은 결제대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직원들과 대책회의를 한답시고 밤늦게까지 머리를 싸봤지만 당시 연매출이 30억 원 정도였던 태평양기전에게 5억 원의 어음부도는 감당하기 힘든 손실이었다.

뾰족한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오자 아내와 세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곤하게 자고 있는 아내와 세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울적해졌다. 태평양기전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인데, 내일 당장 문을 닫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노릇인데 그것도 모르고 단 잠에 빠져 있는 가족을 보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기업의 대표였다.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겠다,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다음날 회사로 가 직원들에게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을 꺼려한다. 어린 시절 우리 괸당들도 그랬다. 사업이 잘 될 때는 너도 나도 돈을 빌려주고 자재를 대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인색하게 군다. 공장이 멈추면 손실을 만회할 길은 사라지고 만다, 지금은 더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는 예정돼 있던 입찰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입찰에 필요한 ‘공장등록증’을 떼기 위해서 포항시청으로 향했다. 공장등록증을 담당하는 직원은 내 얼굴을 보자, 놀란 듯이 물었다.

“태평양기전 괜찮아요? 부도났다는 소문이 있던데.”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는 공무원에게 우리 회사는 끄떡없다, 별일 아니라 큰소리를 쳤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도 있지만 나쁜 소식은 더 빨리 퍼지는 법이다.

제주도 출신인 나는 이미 포항에서 미운털이 박혀 있었고, 우리 회사의 소식은 포항 일대에 순식간에 퍼졌다. 공장이 멈추면 안 되는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포항 일대 자재상 어디서도 나에게 물건을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태평양기전의 신용은 땅에 떨어졌다. 일도 자재도 모두 구할 수가 없었다. 이제 벼랑 끝에서 발 하나까지 들고 있는 셈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은 언제나 있다. 그때 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야, 택남아, 너희 회사 어떻게 된 거야? 본사에서도 자재 넣지말라고 하는데, 무슨 일이야?”

양성선으로부터 구원의 메시지였다. 나와 한림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성선은 당시 LG산전 자재과에 근무하고 있었고 어려운 일이 있거나 급한 자재가 있을 때는 성선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성선은 갑작스런 나의 부탁에도 군소리 없이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었다. 객지에서 하는 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성선은 나의 작은 성공도 자신의 일처럼 응원해주었다.

호기롭고 의협심 강했던 친구는 태평양기전이 위험하다는 소리가 들리자, 나에게 연유를 묻기 위해 연락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늘 정직하라고, 아이들에게 직원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때만큼은 차마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뗐다.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는지 안산에서 근무하던 친구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포항으로 달려왔다.

“사실대로 말해 봐, 무슨 일이야. 너 부도 맞았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나는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이 친구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자재가 끊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사실에 거짓을 보태서 내 상황을 설명했다. 부도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태평양기전은 그리 허약하지 않다, 포항에서 사업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니 모함을 받은 것 같다며 나는 사실이 아닌 내 바람을 성선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던 친구는 미안한 듯 내게 물었다.

“나는 너를 믿어. 그렇지만 내 말만 가지고 회사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없잖아. 회사 자금 사정이 어떻게 되는데?”

당시 회사 통장에는 곧 자재비로 결제해야 할 돈이지만, 수금받은 돈과 새로운 일의 계약금을 합쳐서 7억 원 가까운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는 듯이 통장을 정리해 성선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는 통장의 금액을 보고 나의 사실과 거짓이 혼재된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네 말이 맞네, 자금 사정은 탄탄한데. 제주 섬 것이라고 포항 놈들이 모함하는구나!”

의협심이 강했던 성선은 자신의 일처럼 분노했다.

“미안한데, 이 통장 복사해서 가도 돼?”

친구는 회사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통장복사를 원했고 나는 마지막 기대를 담아 친구에게 복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친구가 안산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재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LG산전 같은 대기업에서 자재가 공급되기 시작하자, 포항의 업체들도 조금씩 의심을 거두고 자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김택남 천마그룹 회장

위기는 곧 기회가 됐고 5억 원의 부도를 만회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모두 성선이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해결해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성선이 나를 돕기 위해 치렀던 대가를 알게 됐다.

“아니, 성선 형님이 막무가내로 태평양기전에 물건을 대주라는 거예요.”

LG산전의 포항대리점을 운영하던 사장이 그 간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형님이야 동창이니까 믿을 수 있지만 저는 사실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위기가 물러가자 대리점 사장은 지난 일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성선 형님이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겠냐며 떼를 쓰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선 형님한테 보증이라도 서실 수 있냐고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사시는 아파트랑 퇴직금으로 보증을 서주시더라고요. 공증까지 했다니까요.”

다 지난 일이고 좋은 끝을 봤다며 무용담처럼 털어놓는 대리점 사장 앞에서, 나보다 더 나를 믿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후에 포항에 내려온 성선에게 어떻게 보증까지 설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친구는 쑥스럽다는 듯 말을 아꼈다.

“친구잖아.”

역경은 진정한 친구를 가려준다고 하는데 성선은 내게 친구란 인생을 얼마나 밝게 빛나게 해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지금은 육지의 일을 접고 제주도에 내려와 천마에서 일하는 성선은 가끔 봐도 자주 봐도 늘 고맙기만 한 오래된 벗이다.

아들 태호도 뼈 속까지 믿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뼈 속까지 믿을 수 있는 친구는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는 귀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오현고등학교 정문)
아들 태호도 뼈 속까지 믿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뼈 속까지 믿을 수 있는 친구는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는 귀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오현고등학교 정문)

태호 녀석이 포항에서 제주로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육지에서 전학 온 학생에게 오현고등학교는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너 손이 왜 이래?”

아내는 태호가 손에 상처를 내 오자 걱정이 앞선 모양이었다. 나는 태호를 불렀다.

“무슨 일 있어?”

이제는 다 커, 말을 아끼는 아들이 내 눈치를 보며 띄엄띄엄 속을 털어놓았다.

점심시간에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나보고 육지에서 전학 왔냐며 흘낏 보는데 영 기분이 나쁘더라고. 그래서 참을까 했는데 여기서 참으면 졸업할 때까지 눈치 봐야 할 거 아냐. 그래서 그 녀석 안경을 벗기고 발로 차버렸지. 그랬더니 수업 끝나고 나보고 남으래.”

아들 녀석의 무용담이 흥미진진해졌다.

“걔네는 여럿이고 나는 혼자니까, 겁 좀 먹었거든. 여러 명이 달려들어도 한 놈만 붙들어 때려야겠다, 수업시간 내내 고민했는데 수업 끝나고 보니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 포항에서 사고치고 온 놈으로 오해했다고.”

나는 아들이 맞고 오지 않은데다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아들에게 잘했다 칭찬을 해줬다. 아들은 친구들과 다툼을 벌이고 왔는데도 아빠가 칭찬을 해주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태호는 학교를 외롭게 다니지 않았다. 아침이면 학교에 같이 가자며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아내는 껄렁해 보이는 아들 친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지만, 나는 사내 녀석들은 저리 크는 법이라고 아내를 안심시켰다. 아들 녀석이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분명 저 중에 하나는 훗날 태호보다 태호를 더 믿어주는 오래된 벗이 되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