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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를 배운다는 것? 타성과 고집 등 익숙한 것을 떼어내는 작업"
이어산, "시를 배운다는 것? 타성과 고집 등 익숙한 것을 떼어내는 작업"
  • 뉴스N제주
  • 승인 2020.11.0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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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01)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01)

□ 시인의 체험과 시의 조건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좋은 시를 쓰려면 체험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체험에는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 상상적 체험이 있다. 그러나 시가 직, 간접의 체험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직, 간접의 체험 이상의 것이다. 오히려 상상적 체험을 묘사하고 진술하는 장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선험적(先驗的)으로 세상에 먼저 발을 디디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를 쓴 현실의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 속의 화자를 만들어서 그 화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윤리관이나 가치관, 이성 등 직접 체험했던 것에 갇히게 되면 시에 등장하는 화자(話者)의 상상력을 확장하는데 방해를 받는다. 시는 화자가 처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화자의 정서를 솔직 담백하되 신선하고 내밀하게 표현해야 한다.

또한 시에는 화자(話者)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他者)나 사물이 등장한다. 이때 시에 등장하는 대상들과의 관계가 있거나 역할이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직접적 관계가 아니라 의미(意味)나 이미지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시적인 표현이 된다.

시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던 타성과 고집, 익숙한 것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작업이다. 이런 노력 없이는 시가 절대로 새로워 질 수 없다. 시는 '새롭게 하기' 즉 시적 대상에서 새로운 해석을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거나 누구나 느꼈음직한 세속적 사실을 반복하는 것은 장황설(張皇說)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반적 상징'보다는 '개인적 상징' 위주로 시를 써야 한다. 인간의 삶이 개개인마다 다른데 시는 더욱 시인마다 다르게 써야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시를 쓴다면 잘 쓰는 대표시인 한 사람이면 된다.

일반적 상징은 보편성에 토대를 둔 집단적인 것이라면 개인적 상징은 드러난 현상의 후광(後光)이고 어둠을 뚫고 나온 알레고리(allegore/추상적인 개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유사한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문학 양식)이고 개인적인 느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시 창작법에 달관한 사람이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사람살이에 시가 긍정적으로 이바지 하도록 쓰자는 것이 필자의 시론이다. 이 말은 시에서 고통이나 눈물을 멀리 하라는 말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시의 궁극적 목표인 삶의 카타르시스, 담담하되 재미있거나 감동이 배어나오는 시를 쓰자는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나 내가 불편한 것은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자. 거룩한 분노는 시대를 증언하고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개인적인 욕심이나 분노를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시에 담아 내 놓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흉기가 된다.

또한 시인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장식품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겸손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의 시인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특이한 성격으로 불화의 주범이 되는 시인은 아무리 시를 잘 써도 시인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시인이 작품의 높낮이보다 우선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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