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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33_ 공광규 디카시 ‘수련잎 초등학생’
[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33_ 공광규 디카시 ‘수련잎 초등학생’
  • 뉴스N제주
  • 승인 2020.11.0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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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시인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수련잎 초등학생

 

수련잎 초등학생들이
교문을 빠져나오며 하교 중입니다.
등 뒤에서 앞에서 옆에서 누가 듣든 말든
입을 벌리고 종알거립니다.
_ 공광규

[해설] 지난해 6월 전국고교생 모의고사 2학년 국어 시험문제에 디카시 관련 3문항이 출제되었는데, 디카시 창작 방법 설명 지문과 함께 예시로 제시된 작품이다. 공광규 시인은 디카시 '몸빼바지 무늬'로 제1회 디카시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수련잎에서 초등학생을 환기하는 것을 넘어 아예 수련잎 초등학생이라고 호명함으로써 수련잎과 초동학생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 디카시는 영상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전면에 초점화된 수련잎 하나가 초등학생의 얼굴을 캐릭트화시킨 일러스트 그림 같은 모습을 해서 이채를 띤다. 수련잎들을 제시하고 교문을 빠져나오며 하교 중인 초등학생들이 천진난만하게 종알거리는 모습으로 언술한 것은 디카시의 절묘한 순간 포착이라 할 것이다.

시인은 수련잎들의 이미지만  언술할 뿐 더 이상의 의미 부여는 하지 않고 있다. 그 장면에서 생의 무슨 다른 교훈이나 의미를 끌어내었다면 수련잎의 환유적 상징성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디카시 특유의 여백과 절제의 미의식을 잘 드러내었다.  

여기서 디카시와 문자시와의 미학적 차이도 잘 보여준다. 디카시는 대체로 문자시보다는 능동적 독자의 역할을 부여한다. 디카시는 순간 포착, 순간, 언술, 순간 소통의 극순간예술로 SNS를 활용 현장성을 생생하게 독자와 교감하는 것이다.

시인이 체험한 시적 감흥이 그대로 SNS를 타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실시간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거니와 독자는 비록 작가가 아니지만 작품에서 의미를 생산해내는 능동적 역할을 하는 매혹도 누릴 수 있다.

디카시가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 쓰기의 도구로 활용하다는 측면에서 독자의 능동성은 디카시의 본질적 속성이라 해도 좋다.

독자는 시인이 제시한 환유적 상징을 수용미학적 측면에서 의미를 깊이 있게 읽으며 새롭게 의미를 생산해 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디카시는 문자시에 비해서 의미의 여백과 틈이 많이 존재하기에 더욱 그렇다.

디카시에서 사진과 문자의 틈은 존재론적 상수이고, 디카시의 언술도 사진의 숨겨진 의미를 다 드러내지는 않음으로써 독자가 읽어낼 여백을 보다 탄력적으로 구축하는 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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