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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N인물]소프라노 오능희 인생 30년...다시 시작을 꿈꾸다
[뉴스N인물]소프라노 오능희 인생 30년...다시 시작을 꿈꾸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0.10.13 20: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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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불모지 제주서 인생 성악을 꿈꾸는 성악가 오능희
"신들의 고향서 자연 노래하는 제주만의 오페라 만들고파"
소프라노 오능희
소프라노 오능희

프리마돈나 오능희씨가 천혜의 제주 자연환경을 접목한 오페라를 꿈꾼다.

인공지능 AI 시대다 보니 그동안 인간이 해왔던 수많은 일들이 자동화로 대체되고 있지만 문화예술의 감동은 컴퓨터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게 오능희씨의 지론이다.

지난 30년 간 소프라노로 왕성히 활동한 그는 앞으로의 30년은 고향인 제주에서 후진 양성은 물론, 관객들이 오페라를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상설 공연 토대를 다지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국내외 오페라 무대에 꾸준히 출연하며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위치에 오른 지 오래지만 지금도 가르침을 받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출산 후 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 뒤 정기적으로 음악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는 게 올해로 10년째다.

그는 소프라노로서 개인 기량을 갈고 닦아 푸치니의 마지막 대작이자 최고의 오페라인 ‘투란도트’를 그리고 있다.

투포환 소녀 집념으로 성악의 길 들어서다

오씨는 어릴 적부터 노래에 소질을 보였지만 본격적으로 성악에 발을 들인 건 고등학생 2학년으로 남들에 비해 다소 늦은 편이다.

“초등학교 때 투포환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힘이 셌고 목소리도 컸죠. 초등학생 합창단 선발 과정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음에도 합창단은 들어가지 못했어요. 제 목소리가 커서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가 묻힌다는 이유였죠. 합창은 하모니가 중요하다 보니 입단하라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어요”

어릴 적 접어뒀던 꿈을 끄집어 낸 것은 그가 고1 당시 성악을 전공한 음악교사로부터 ‘성악에 재능이 있다. 묻혀두기에는 아깝다’는 말을 듣고 난데서다. 1년 이상 ‘성악을 배우고 싶다’고 졸랐지만 부모는 완강히 반대했다. 춥고 배고파 보이는 예술보다는 직업적으로 안정적인 교사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오씨는 고2 시절인 1990년 “제주MBC 방송이 주최하는 고교생 가곡제에서 예선을 통과한다면 성악을 배울 수 있게 해 달라. 탈락한다면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부모에게 제안했다.

단 한 번의 레슨도 받지 않고 참가한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 무대에서 3위에 오르자 부모는 더 이상 자식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의 집념이 성악의 길로 입문하게 한 배경이다.

소프라노 오능희 프로필

제주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성악과 졸업
이태리 로렌쪼 페로지 캄포바쏘 국립음악원 졸업
이태리 페스카라 아카데미아 전문 오페라 과정 졸업
이태리 아람 아카데미아 오페라 해석 및 연구과정 졸업
독일 에쎈 국립대학(KA과정) 수료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대학 오페라과정 수료(박사과정)
오페라 “돈 죠반니”, “꼬지 판 뚜떼”,“ 일 트로바토레”,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 “ 피가로의 결혼”,“ 리골렛토”,“투란도트” 주역 출연
창작 오페라타 “이중섭” , 창작오페라 “백록담”주역 출연,
오페라 “나비부인” “토스카” 주역 출연 및 총감독
2020년 창작오페라 “해녀” 총감독
콘서트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까나” 총감독 및 주역,
제주-미야자키 교류 음악회(일본 미야자키),
제주-대구 교류 음악회(대구 팔공홀)
독창회 서울 영산아트홀 (2004)
제주문예회관 대극장 (2004, 2008, 2010, 2013, 2017년)
제주아트센터 (2015, 2019년), 서귀포 예술의 전당 (2017년)
2004년~2016년 제주대학교 예술대학 성악학부 출강교수 역임
현재 (사)제주특별자치도 성악협회 회장, 제주오페라연구소 소장, (사)한국음악협회 제주지부 이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예술단 운영위원, 제주 고은솔어린이합창단 지휘자, 제주 함덕고등학교 출강

오페라 불모지 제주서 연구소 창립

1996년 제주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유학길에 오른다. 이탈리아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8년간 오페라를 공부한 뒤 2003년 제주로 귀국한다.

그가 귀국할 당시에도 제주는 문화의 섬으로 불렸다. 특히 제주국제관악제 등 관악 분야는 입지가 탄탄하다. 제주 관악인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우수한 연주자가 매해 여름이면 제주를 찾는다.

소프라노 오능희
소프라노 오능희

제주국제관악콩쿠르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함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에 가입된 한국의 3대 국제음악콩쿠르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에 반해 오페라는 불모지 수준에 가깝다. 매해 열리는 국내 오페라 페스티벌에도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은 제주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오씨가 해외나 수도권이 아닌 제주를 활동 무대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5년 제주오페라연구소를 창립한 오씨는 이듬해인 2016년 푸치니의 ‘나비부인’ 2017년 마스카니의 ‘까발레리아 루스티카’ 2018년 푸치니의 ‘토스카’ 2019년 창작오페라 ‘해녀’를 공연했다. 오는 9월 5일에는 돌문화공원 야외에서 오페라 ‘라보엠’을 준비 중이다.

오씨는 “매년 오페라 공연을 선보이고 있지만 모든 단원들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물론 기획과 홍보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힘이 붙이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매 공연마다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하기 때문에 다음 공연에서는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자는 갈망이 더 크다”고 말했다.

지역 예술인 한계 스스로 깨야

이러한 제주오페라연구소의 노력에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차고 넘친다. 오씨는 “가장 큰 문제는 제주의 인재를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제주에서 초연된 오페라 작품은 서울과 타지에서 배우를 초빙해 무대를 올렸다. 제주 출신은 조연급 내지 합창단 뿐”이라며 “제가 그리는 오페라 무대는 제주의 숨은 인재를 발굴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씨는 “무대가 스승이다. 100번 연습을 잘하고 노래를 잘 불러도 한 번의 무대경험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생각한다”며 “이런 무대를 많이 만들어서 스스로 깨우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아카데미도 생각하고 있다. 오씨는 “오페라는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도 해야 한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하겠지만 테크닉적인 연기는 그렇지 못하다. 제주에는 이렇다 할 연출가가 없기 때문에 전문가를 초빙해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오페라가 추구해야 할 방향

오씨는 제주 오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도 설명했다. 오씨는 이와 관련해 “최근 제주도가 창작 오페라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데 5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며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연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페라가 꼭 길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막극 형식으로 소규모 무대에서도 충분히 올릴 수 있다”며 “그 예로 이건용의 창작오페라 ‘봄봄’이라는 작품이 있다. 상당히 코믹하면서 작은 무대에서 공연이 가능하며 교육사업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씨는 “제주신화에는 1만8000명의 신들이 있다고 한다. 이 신화 내용만 그려내도 제주를 소재로 한 단편 창작오페라를 무수히 만들 수 있다. 지루하지 않도록 코믹스러운 부분을 가미해 오페라가 결코 어렵지 않고,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오능희
소프라노 오능희

제주 천혜자연 충분히 활용해야

오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우려로 문화공연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방법을 찾으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씨는 “제가 9월 5일 열리는 오페라 공연을 야외공연장(돌문화공원)으로 생각했던 이유는 행정당국에서 코로나 감염 우려에 따른 거리두기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라며 “안 된다고 했을 때 되는 쪽으로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페라 공연을 공연장에서 하면 편하겠지만, 공연장 사용이 불가능하다면 눈을 돌려야 한다”며 “야외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제가 어느 제주 지역에서 원반 모양으로 돼 있는 분구를 찾았다. 소리를 직접 내봤는데 그 울림이 굉장했다. 나무가 둘러진 너무나 훌륭한 무대다. 자연적인 음향과 미술이 배어 있다. 여기에 약간의 음향기기와 무대 미술이 가미된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무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장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길 누군가는 가야

오씨는 “제주는 글로벌 할 수 있는 환상의 섬이다. 그러나 문화예술로 국제적인 교류가 다양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크루즈 여행이든 외국인이 얼마나 수용될지는 모르지만 예를 들어 크루즈 여행객을 모셔놓고 밤에 갈 수 있는 장소, 향유할 수 있는 공연내지 놀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이어 “제주 오페라 공연을 상설로 올리며 상품화 시킬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듯하다. 제가 오페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음악과 연극, 미술, 무용, 시와 문학 등 모든 부분이 들어간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고용창출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씨는 “이를 위해서는 국제교류를 통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제주섬 안에서만 이뤄질 게 아니라 국제적 감각은 어떤지 국내에선 어떤 유형으로 가고 있는지 직접 현장에서 보고 접목시키는 문화예술을 그리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저 혼자 다 이룰 수도 없을 뿐더러 10년 내지 30년을 그려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제 후대에 이뤄진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걸어야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성악가 오능희로 활동했다면 앞으로 30년은 선배로서 후배들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발전시킬지 고민하려 한다. 지도자라는 의미보다는 제가 오페라를 습득하기 위해 ‘완행열차’를 탔다면 후배들은 ‘직행열차’를 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도민들이 더 쉽게 다가가도록 하면서 관광상품으로까지 계발하겠다는 오능희씨의 향후 활동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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