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10)권위의식이 싫은 이유
[경제인 칼럼](10)권위의식이 싫은 이유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0.10.05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청바지 차림의 모습(2019년)
청바지 차림의 모습(2019년)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의 후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 있는 자녀까지 이글을 전달해 주는 사례도 들려오고 있다.

이번 올린 '권위의식이 싫은 이유' 주제는 김택남 회장이 직장생활에서 최연소로 계장 승진하면서 갈등을 겪고 풀고 바른 직장문화에 대한 내용을 제시했다.

흔히 같은 직장동료가 먼저 승진하거나 아니면 후배가 먼저 승진했을 때 동료들은 대부분 기뻐하면서도 질투가 있는 법이다. 그러한 것은 어느 곳이나 다 존재하고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발생되는 감정이다. 그러한 갈등의 감정들을 풀고 이해하기 위해 대학 등에서 인간학이나 인문학 같은 과정의 공부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푸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김택남 회장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해 능력으로 인해 그 위치에 올랐다. 직책, 직급이 올라가면 자신이 갖춰야 될 것이 리더십이다. 그 리더십이 없으면 조직문화는 개판이 되는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생기고 여러가지 감정을 겪으며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그 갈등해소(김 회장은 '사고 수습'을 언급)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조직이 잘 돌아가는 지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리더가 제대로 못하면 일(기술)을 잘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전보되거나 잊혀져 가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직장생활은 자기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보면 김회장은 선배 직장동료 집에까지 찾아가는 성의를 보인다. 직접 방문한 성의들이 선배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게 되는 것이고 어느 한 사람과 마음이 잘 통하면 전체 조직이 평정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권위의식은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해 봤다.

직장에서 상사의 자리에 올랐다고 권의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권의의식을 가지면 안되는 것이다. 직장 동료로부터 마음을 얻은 권위는 리더십을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다. 그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자신이 권위의식을 가지면 절대 안되는 것을 스스로 느낄 것이다.

필자가 만나본 김택남 회장은 정말 겸손한 사람이다. 순수함이 보인다. 자신이 높은 회사의 책임자이기에 상대방들은 매우 어려워하는 분도 있지만 사실 만나보면 제주도 사람 그자체이다.

권위는 갖고 있지만 권위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김택남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육지에서 사업을 하지 않고 제주에서 사업을 하면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습에 도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다.

오늘 김택남 회장의 '권위의식이 싫은 이유'를 탐독하면서 내 자신의 권위의식의 지수는 얼마인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포항종합제철엔지니어링 시절, 스물일곱 살에 최연소 계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포항종합제철엔지니어링 시절, 스물일곱 살에 최연소 계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내 옷차림은 늘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천마에서 근무를 할 때도, 제민일보에 출근을 할 때도 늘 청바지 차림이다. 가끔 천마의 영업소를 둘러볼 때도 이 차림이니, 회장 얼굴을 모르는 직원들에게 ‘동네 아저씨’ 취급을 받곤 한다.

애가 타는 건 영업소 소장들이다. 제발 회장님의 체통(?)을 지켜 달라 청하는데 나는 회장님 체통이 뭔지 잘 모르겠다. 혹시 그 체통이 Y-shirt에 넥타이를 매는 거라면 나는 그런 체통은 절대 사절이다. 평생 현장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넥타이를 맬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난 그런 차림이 영 불편하다. 언론사의 회장으로 어쩔 수 없이 공식행사에는 정장을 차려입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나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고집한다.

나도 옷차림에 따라서 사람들의 대접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고 허름한 차림이라고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옷이나 지위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 나는 평생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제부터 결제할 서류를 책상 왼편에 놓아 주세요. 제가 검토를 한 후에 책상 오른편에 놓겠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한 결제방법을 동료에게 이야기했지만 반응은 서늘했다. 며칠 전만해도 설계부의 막내였던 내가 갑자기 계장으로 승진했으니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차라리 나이 차이가 많았던 선배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줬는데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은 영 불편한 모양이었다.

하긴 동기가 승진해도 속상할 판에, 까마득한 후배가 먼저 계장을 달았으니 황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앞에서 무시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업무였다.

모두 작정이라도 한 듯이 나에게 결제할 서류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나이 어린 상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결제를 받는 것이 자존심 상했던 모양이다. 인사부에서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나의 승진을 두고 인사부에서도 걱정이 많았다. 전기설계부서 32명의 직원들을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 통솔할 수 있을까 의견이 분분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풍토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당시만해도 승진의 기본조건은 ‘연공서열’이었다.

조직의 문화는 대화를 통한 소통보다는 직급에 따른 권위가 중요하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적은 청년이 과연 그런 조직을 통솔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인사부나 총무부에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80년대는 새로운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내가 일했던 전기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기술개발에 도전하던 시기였다. 도전에는 새로운 인력이 필요한 법이고 당시 인사부 부장은 결정을 내렸다.

“나이 어린 게 문제가 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승진을 해야지!”

인사 부장의 결단으로 나는 최연소 계장이 되었고 나를 보는 눈이 많아졌다. 나는 이후 승진요건의 기준점이었다. 내가 잘해 나가면 이후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서 승진이 될 것이고 내가 부서통솔에 실패한다면 이전처럼 능력보다는 나이나 경력이 우선될 것이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책임감이 커지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상사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실력’이면 충분했다. 전선을 설계하다보면 전기 값을 잘못 계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기 값이 잘못 계산되면 전기가 과부하돼서 모터가 타고 화재가 발생한다. 지금은 기존의 데이터를 통해서 정확한 값을 계산하지만 그때는 경험이 부족했고 동료들뿐 아니라 가끔 나도 그런 실수를 했다. 실수를 하지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상사에게 인정받는 것은 ‘실수의 여부’가 아니라 ‘실수의 수습’에 있었다.

자신이 설계한 부품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대부분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단 책임자인 부장에게 보고부터 하고 본다.

그러나 어린 내 생각에도 보고부터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었다. 사고가 난 부품을 설계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고 문제가 발생했다면 해결책을 찾을 사람도 나 자신이었다. 나는 사고가 발생하면 낮이고 밤이고 현장으로 달려가 사고원인을 찾을 때까지 현장에 매달렸고 문제점을 찾아 부품을 수리하고 설계를 변경했다. 보고는 모든 문제를 해결한 후였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부터 대처방안까지 차근차근 보고를 올렸다.

당시 부장은 사고에 대한 책임보다는 후처리에 만족했는지 별 다른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동료들과 나의 일처리의 다른 점은 순서였을 뿐이다. 사고가 난 후에 바로 보고를 하느냐, 대처방안을 찾은 후에 보고를 하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사의 신뢰를 얻는 건 언제나 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영민하고 눈치가 빨랐다.

승진도 빠른데다 상사의 신뢰까지 받으니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결제방법도 바꿔봤지만 협력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쫓아다니며 결제를 받아야 했는데 그 모양새가 우스웠다.

그래도 동료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나는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나이 어린 상사라고 얕잡아 보는 것을 경계했다.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이라고 잘못된 도면을 봐주는 법이 없었고 나이가 어린 상사라고 허술한 보고서를 보고 넘기는 법도 없었다. 당시 나는 꼼꼼하고 엄격한 상사였다. 나이까지 어렸으니 호감 가는 상사는 절대로 아니었을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해서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는데 동료들과의 관계는 자꾸만 어긋나기만 했다.

“쾅!”

늦은 밤, 갑자기 대문을 차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막 잠든 어린 하나가 놀라서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고 아내도 겁을 먹은 눈치였다. 대문 밖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우리집에 다녀간 사람이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지난 낮에 업무에 관련해 호되게 지적당한 선배가 틀림없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냐며 걱정하는 아내를 별 일 아니라며 안심시켰지만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다음날, 나는 아침부터 선배를 찾았다.

“00선배, 어제 우리집에 왔으면 인사라도 하고 가지, 그냥 가서 서운했어요.”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러자 선배도 당황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김 계장 집에 언제 갔다 그래?”

선배의 발뺌에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애도 있으니까 엉뚱하게 대문에 화풀이하지 마시고 다음에는 말로 하세요.”

그러자 선배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대문을 차는 걸 봤느냐, 어린 나이에 출세하더니 사람이 변했다, 계장 자리가 뭐가 그리 대단해서 선배를 우습게 아냐며 그동안 쌓아놨던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이 말리고서야 다툼이 일단락되었다. 그날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배가 쏟은 말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옳고 바르기 때문에 언젠가 그들도 나를 인정해 줄 거란 생각에 내가 먼저 다가갈 생각을 미처 못 했다.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이 서운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눈에는 먼저 승진했다

예전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으니 나는 그저 ‘잘난 척하는’ 꼴사나운 어린 상사로 보였을 것이다. 서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니 평행선처럼 멀어진 사이는 좁혀질 리가 없었다. 마음의 상처가 더 벌어지기 전에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그날 밤, 선배의 집을 찾았다. 나를 맞는 선배도 어색한 듯 눈을 맞추지 못했다. 나는 텁석 선배의 손을 잡았다.

“선배 미안해요. 제가 미처 생각이 부족해서 선배의 마음까지는 챙기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내 진심 어린 사과에 선배도 속내를 털어놨다.

“김 계장, 먼저 사과해줘서 고마워. 하긴 김 계장 잘못은 일 잘하는 것 밖에 없는데 속 좁은 우리가 잘못이지. 그래도 찾아줘서 고마워.”

선배는 나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업무에 대해 지적하는 날이면 못하는 술자리를 만들어 그때그때 풀었고 동료들의 제품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내 일처럼 수습해주었다.

진심은 통하는 법. 조금씩 다가가는 나의 모습에 선배들과 동료들도 마음의 문을 열었고 마침내 나이와 상관없이 ‘상사’로 인정해주었다. 나를 상사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준 동료들은 후에 크게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최연소 계장을 하면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지만 큰 삶의 지혜도 얻었다. 남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꿔야 한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권위는 필요치 않다는 진실을 배웠다. 내가 계장이라는 작은 자리의 권위를 내세워 다른 동료들 위에 서 있으려고 할 때는 아무도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자리에서 내려와 내가 먼저 동료들을 받들자, 진심을 주었다.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력이면 충분했지만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품(人品)이 필요했다. 나는 남들보다 빠른 승진으로 그 인품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얻었다.

이후에 나는 지금까지 되도록 겸손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지위가 높다고 내가 나이가 많다고 내 의견을 강요할 때,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하물며 내가 좋은 옷을 입었다고 나를 인정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 나와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송사가 있을 때는 내가 손해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은 이견과 손해는 나를 더 크게 키우는 거름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광양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