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25_ 최형만 디카시 ‘어떤 자세’
[이상옥 칼럼] 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25_ 최형만 디카시 ‘어떤 자세’
  • 뉴스N제주
  • 승인 2020.09.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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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이상옥 시인

어떤 자세

한쪽으로 머리를 두는 일은
바다를 기억하는 태곳적 자세일까
온몸으로 비린내를 토하는 동안
바구니에 물회오리 인다

이처럼 엄숙한 생의 최후를 본 적이 있느냐
-최형만

[해설] 2020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제6회 디카시공모전의 대상 없는 최우수상 2편 중 한 편이다. 죽어서 바구니에 담긴 열 마리의 물고기가 저마다 바다를 향하고 있다고 보며, 그것이야말로 태곳적 자세가 아니겠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형식을 통해서 생의 근원적 문제를 제기하는 언술로 시작한다.

물고기는 분명 생명이 끊어진 상태지만 몸은 비린내를 토하며 계속 메시지를 뿜어낸다. 온몸으로 생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는 죽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물회오리를 일으키며 비린내 풍기는 몸은 두고 물고기의 이데아는 본향을 향해 가는 포즈다. 죽어서도 물고기가 생생하게 증언하는 목소리를 화자는 듣는다.

화자는 이처럼 엄숙한 최후를 본 적이 있느냐고 마무리한다. 이 담론은 물고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물고기의 얘기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물고기의 환유를 읽으면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의 삶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환기된다.  

우연의 일치라고도 볼 수 있지만 물고기 열 마리의 열은 완전 수이다. 어떤 생명체도 인간도 예외없이 엄숙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 열 마리의 죽은 물고기는 환기한다.

물고기의 시선을 통해서 인간의 죽음도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릇 모든 생명체는 유한한 존재지만 영원을 지향한다.

디카시는 영상과 문자가 하나의 텍스트성을 구축하는 멀티 언어 예술이다. 문자시 같은 경우는 문자로 하나의 텍스트가 되는 것이지만 디카시는 영상과 문자의 결합이라는 멀티성을 드러내기에 문자와 영상 사이에는 미세한 여백성이 존재한다.

디카시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영상과 문자와 여백성 삼자가 하나의 텍스트를 구축한다고 해도 좋다. 그 여백성은 당연히 독자가 채워넣어야 하는 공간이다.

이 디카시는 영상과 언술, 그것으로 다 말해지지 않는 여백성까지 염두에 두고 읽으면 죽은 물고기의 환유를 더 깊이 읽게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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