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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N인터뷰]기네스북에 오른 장영주 작가..."불후의 돌하르방 책 만들 것"
[뉴스N인터뷰]기네스북에 오른 장영주 작가..."불후의 돌하르방 책 만들 것"
  • 현달환 기자/강정림 기자
  • 승인 2020.09.03 18:2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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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박사, 문학평론가, 대한민국 최고기록 공무원 등재, 신지식인
‘인영이의 일기’, ‘어깨동무’ 투고 당첨..."아동문학가 길 들어선 계기"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글이란 어떤 특정한 의미나 목적을 가진 내용을 글자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하여 정보 전달이나 이야기나 감정의 표현, 또는 사실이나 의견 등을 나타낼 수 있기에 글의 중요성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그래서 주위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엄청난 복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 보통 책이다. 책에는 엄청난 정보가 들어 있다. 과거에도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미래에도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글의 종류로 시, 소설, 수필, 극본, 소설, 체험기,  감상문, 설명문, 편지글, 소개서 등이 책으로  엮어 나올 수 있으며 종류에 따라 글의 목적과 성격이 달라질 뿐이다.

작가가 글을 쓸 때에는 대상자로 불리우는 독자들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들에게 맞는 단어나 문장, 혹은 표현법 등을 선택해야 하며 글의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

글이란 것을 책으로 바꾸면 쉬운 책이 더 많이 독자에게 사랑받는다는 의미도 일맥 상통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금방 읽고 지나가는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의 책 표지

좋은 글을 통해 책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짜임새 있는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문단과 문단, 문장과 문장의 연결 관계가 분명하여 논리적인 구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내용이 진실해야 하고 표현은 간결하며 정확해야 한다.

더불어 독창적인 표현과 문법에 맞는 표현으로 좀 더 세련된 글로 만들 수 있다. 특히 현재의 트렌드에 맞게 제목이나 글 내용이 세련돼야 한다.

두꺼운 책을 만들어서 책이라는 개념으로만 알고 있다가 이제 전자책이라는 개념까지 알게 되고 시간이 지난 후 오디오 북이라는 개념까지 다다른 책의 진화.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책을 집필하고 그것도 하루에 두 권씩 만들 수 있는 경지까지 다다른 장영주 작가.

오늘 관덕정 앞에서 만날 약속을 했는데 관덕정을 지키고 있는 돌하르방을 조우하게 된다.

제주1호 돌하르방이 관덕정에 서 있다. 그 유래도 파악하고 사진도 찍고는 용담1동 청소년 문화의 집까지 이동했다. 거기에는 돌하르방이 4기가 지키고 있었다.

정문에 두 개의 돌하르방과 안쪽에 두 개의 돌하르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는 원래 4기의 돌하르방을 마련한 곳이 여기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통 두 기나 한 기 정도 하는 데 이곳은 대단하게도 4기가 자리 잡고 있는데 원래 4기가 세트라고 했다. 동서남북 개념을 설명하며 도청이든 관공서도 4기로 해야 좋다고 했다.

갑자기 돌하르방을 이야기 하는 것은 장 작가의 요즘 실상을 말하려고 꺼낸 것이다. 그의 요즘 작품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의 관광지 등 소개 책을 이미 만들었다고 했다. 돌하르방의 유래부터 온갖 정보를 통해 새로운 책이 탄생될 조짐이다.

돌하르방 4기를 목격하고는 주차장에 자동차 등으로 사진이 잘 안 나올 것 같아 그림이 좋지 않게 나왔지만 한 화면에 나와 있는 돌하르방 사진을 촬영하고 그 앞에 있는 두부 전문 식당에서 점심을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모습

#. 안녕하세요? 장영주 작가님, 간략하게 본인 소개해주세요.

-.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소장과 동화섬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도서(개인전자)출판 영주 대표로 있고요.

교육학박사와 명예문학박사를 취득하여 여러 대학교에서 겸직교수를 역임했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인지 대한민국 최고 기록(기네스북) 공무원에 등재되었고 정부에 신지식인으로도 등재 되었습니다.

#. 대단한 성과인데 언제부터 작가에 대한 꿈을 꾸게 됐는지요?

-. 아마도 1977년에 모슬포 바닷가 학교에 근무 할 때였어요. 당시는 숙직이라는 걸 할 땐데 밤에 운동장 구령대 위에 앉아 있노라면 바다의 파도소리, 물새소리가 합창이 되어 들리는 거예요.

당시 내 나이 21세였는데 아주 민감한 정서를 가질 때여서인지 그때부터 신춘문예에 시를 8군데나 응모했는데 모두 낙선했지요. 그때 맥이 빠져서 원고 뭉치를 불태워 버렸죠.

그 후 1978년 5월이었어요. 당시는 어머니날이라 불리는 날이 있었는데 어버이에게 효도하자는 내용의 웅변 원고를 내가 썼어요.

그 웅변 원고를 가지고 '인영'이라는 아이가 대회에 참가 했는데 그 절절함이 관중들을 울리고 말았어요.

원고 내용이 집안이 가난하여 아버지가 농약을 먹고 자살하면서 딸에게 꿋꿋하게 공부 잘하고 열심히 살라는 말을 남기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바로 인영이란 아이에게 현실로 나타난 거예요.

웅변하기 바로 전 날 밤 인영이 아버지는 농약을 먹고 세상을 떠났고 인영인 웅변대회에 나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동적으로 감정이 섞인 웅변을 열변으로 하는 게 바로 그 내용 그대로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청중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었지요.

그 때 ‘인영이의 일기’란 제목으로 제가 ‘어깨동무’에 일기 동화를 투고하여 당첨이 되며 아동문학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된 것이지요.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도서 표지

#. 작품을 많이 남긴 것으로 알고 있는 데 그동안 작품 활동에 대한 설명?

-. 맨 처음 작품집이 ‘바른 생각 바른 글’이란 글짓기 독본을 만들었어요. 그 후 제주도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교사로 있었기에 채록, 취재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 제주도 설화(전래동화)를 수십 편 정리하며 ‘제주신문’에 연재를 3년간 하였지요.

그것을 기본으로 ‘민족전래동화 6, 8, 9’라는 제주도 처음으로 '제주도 전래동화'란 말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면서 '소년문학'이란 월간 잡지에 1992년부터 소년소설, 속담 등을 장영주, 편집부 두 이름으로 계속하여 연재 하며 수권의 책이 탄생하게 됩니다.

지금도 '소년문학'에는 북한 설화를 연재하고 있는데 민통교사협의회장, 남북교육교류위원회 위원, 동화섬 이사장, 평통자문위원 등을 거치며 북한물품 반입승인서를 통일부로부터 발급 받아 북한 설화책을 평양에서 구입해 이를 토대로 북한 설화를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하여 북한 설화 책만 수십 권을 만들게 된 동기라 말씀 드릴 수 있겠어요.

또한,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교지’를 발간했고 앨범 사진은 도맡아 촬영하기도 했지요. 특별한 교지로는 제주 YMCA에서 글짓기 학교 교사를 겸임하며 ‘고동소리’라는 문예집을 10년간 낸 것과 온라인 독서지도로 신지식인 인증서를 정부로부터 받았고요.

그러다 종이책 150권 정도가 만들어지며 대한민국 최고기록(기네스북) 공무원으로 등재되기도 했지요.

빌게이츠의 자서전에 빠져 읽고 또 읽기를 수회 반복하다 ‘빌게이츠’라는 위인전을 집필하게 되어 이를 계기로 전자출판에 관심을 가져 도서(개인·전자)출판 영주라는 출판사를 내면서 전자책 1001권을 목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데 현재 250권정도 발행 했습니다.

앞으로 8년 6개월 사이에 600권을 써야 하는 데 체력이 따라 갈지 모르겠어요. 어떻든 저에게는 책을 몇 권 쓴 제목을 말해보라는 질문은 무의미해요. 솔직히 저 자신도 모르니까요. 아마 400권이 훨씬 넘어 500권 가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 특별히 생각나는 작품집이 있다면?

-. 순서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씀 드려 볼게요. ‘7학년 0반 꾸러기들’이란 소년소설집으로 상하 전 2권입니다. 좀 오래된 책입니다만 1996년에 초등학교에 재학했던 아마 지금 30대 중반이면 이 책을 거의 읽었을 겁니다. 제주도 최다 판매부수를 기록했었거든요. 원고료도 좀 괞찮았구요.

또한, '설문대할망’이란 설화 책은 제가 박사학위논문의 기초가 되었죠. '설문대신화에 나타난 교육이념연구’가 주제입니다. 영남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영화에도 출연했었습니다.

얼굴은 안 나오고 제일 뒷부분에 협조했다는 문구 밖에 없네요. 사실 이틀을 꼬박 촬영했었는데……. ‘아! 광해’도 잊지 못할 책입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취재, 채록 정리 교정 편집 출판까지 혼자 했으니까요. 모 기관에서는 수백 수천만 원 용역비로 무슨 자료를 만드는 모양인데 그 쪽에도 자료를 건네주었습니다. 관련 기관의 무관심 속에서도 혼자 아무런 보상도 없이 대가도 지원도 없이 만든 책이어서 더 값어치가 있어 보여요.

'표해록’은 장한철이라는 인동장 씨 입도 7세손이 쓴 책인데요. 저가 인동 장 씨 입도 14세손이거든요. 조상의 얼을 돼 찾는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심혈을 기울려 책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장한철 백일장은 하고 있고요.

장한철 생가 집은 2억여 원의 비용으로 터를 구입, 1억여 원의 비용으로 내부를 단장하여 곧 세상에 얼굴을 내밀 장한철 생가 복원 사업도 마무리 되면 아마 그 쪽에서 창작실을 열면 종종 들려 보려고요.

‘돌하르방 시리즈’, ‘용 시리즈’, ‘수필집 시리즈’는 저를 책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음의 부자죠. ‘따따부따 나팔 붑니다’ 작품집은 예전에 MBC 드라마로도 촬영 제안 받아 계약하기는 했는데 그 이후론 잘 모르겠어요.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이 4기가 보이는 모습(용담1동)

#. 많은 성과를 보여줬는데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 현재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라는 온라인 등록 비영리 법인을 만들어서 대표직을 맡고 있어요.

제주권, 중부권, 남부권, 수도권으로 나누어 대학교 교수, 박사 가 20여명이고요, 각 문학 단체 대표, 회장이 20여명, 그 외 문화예술을 하고 있는 임원이 40여명 등 200명 가까이 회원들이 무회비, 무모임, 무불평이란 기저아래 활발하게 온라인 문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 코로나 정국 탓인지 몰라도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기며 약간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상업성, 정치성, 종교성이 들어가는 느낌이어서 입회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단체를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온라인 문화단체로 키우고 싶어요. 물론 현재까지는 한해연 만이 유일하게 온라인으로 문화 단체를 등록(정관) 돼 있어요.

덧붙인다면 ‘동화섬’이란 통일동화구연대화를 여는 단체 대표도 맡고 있는데 창립 20년 되었거든요.

올해로 19회째 통일동화구연대회를 코로나 정국을 맞아 화상대회로 치러 보려고 준비중이예요. 이 행사도 잘 됐으면 하고요, ‘돌하르방’ 시리즈, ‘제주 용’, ‘나의 길’ 수필 시리즈가 수십권 전자 출판 됐는데 이를 한데 묶어 종이출판 하는 데 힘을 쏟고 싶어요.

개인이 혼자 어마어마한 정보를 모운 책이 나올 거예요. 그 때가 되면 홀가분하게 좋아하는 사진스토리텔링에 전념할 계획이예요.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 평상시 취미 활동과 존경하는 인물은? 

-. 평상시 놀고먹는데 하나도 빠지지 않는 습성이 이죠. 그러다가 컴퓨터에 앉아 집필을 시작하여 최소 20시간 이상을 몇날 며칠을 지내죠. ‘하루를 28시간으로’가 제 집필 슬로건 이예요. 다른 사람이 8시간 잠을 잘 때 4시간만 자자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도가 텄는지 어떤 땐 하루에 두 권 책이 출판되기도 하더라고요. 이는 빌게이츠를 평소 존경하며 그에 대한 저서를 쓴 경험이 저에겐 두말 할 나위 없이 좋은 길라잡이가 된 것 같아요.

초기는 대학교에서 겸직교수로 일하며 ‘교육학’이란 교육학 교재도 전자출판 하여 그것으로 강의도 수년간 했고요.

‘오마이뉴스’ ‘제주인터넷뉴스’ ‘녹원 환경 뉴스’ ‘주간 교육’이란 언론사에 수십 년간 프리랜서로 있으면서 그의 결과물을 한데 모운 ‘일을 즐겨라 이젠 골라서 해라’란 자서칼럼집으로 마무리 하였죠.

#. 글을 쓰려는 분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일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의 진의를 알아 차렸으면 해요.

부지런한 참새는 굶지 않는 법이거든요. 기회는 언제나 자신의 옆에 있는 게 아녜요. 기회가 다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았으면 해요.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 장영주 작가 프로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이며 문학평론가로 대한민국 최고기록 공무원(저술분야)으로 등재(기네스북) 되었고, 신지식인(행정자치부장관)으로도 등재 되었다.

평생학습원과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며 문화발전을 지원하여 제20회 한국아동문학 작가상(1998년), 제6회 한국동화구연가상(2006년), 제29회 한국교육자 대상(2010년), 제1회 박화목 문학상(2013년)을 수상하였다.

동화섬이사장이며 한국사진작가협회(민속사진연구)회원,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도서(개인·전자)출판 영주 대표, 평통(통일교육위원)자문위원, 대한민국독서대전(제주독서대전·작은도서관독서대전 운영위원장 3회 역임) 운영위원이다.

장영주 작가는 혼자 탑동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는 카메라를 통한 사진으로 세상을 보려하고 있다.

이름이 장영주로 처음 응모한 곳에서 여성으로 착각해서 여자의 모습으로 소개됐다는 말에서 한참을 웃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도 이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물어본 것이 건강이었다. 현장에서 은퇴한 이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활약을 하는 것을 보고 특히 시력에 대해 물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시력이 많이 약화될 것 같은데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물려줄 덕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앞으로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끝없이 움직이는 장 작가님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우리는 다음 만날 기약을 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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