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24_ 김성백 디카시 ‘업’
[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24_ 김성백 디카시 ‘업’
  • 뉴스N제주
  • 승인 2020.09.0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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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이상옥 시인

입만 있는 것이
입 없는 것을 물고 있다
살아본 적 없는 것이
살다 온 것을 꽉 물고 있다
두 업이 한 줄에서 만나고 있다
-김성백

2020 제4회 황순원 디카시공모전 최우수작이다. 한국디카시인협회에서는 한국디카시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의 대상과 최우수 수상자에게 디카시인 등단 및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원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최근 한국디카시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각종 디카시 신인상과 디카시공모전은 보통 육칠 백 편을 상회하는 응모가 이뤄진다.

김성백 시인도 이번 수상으로 디카시인과 아울러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원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업은 불교에서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은 어떤 것이든 모두가 과거에 자신이 지어놓은 업의 결과이다. 내생 역시 현생의 업에 의해 결정된다.

이 업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과 관계가 깊다. 인연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은 전부가 그럴 만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결국 자기 복은 자기 스스로 짓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라는 개념과는 다른 국면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과 관계로 볼 때는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선언이고, 마땅히 그 죄값으로 영원한 영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 상환에 놓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십자가 대속으로 아무 값없이 구원을 베풀어준다. 인과 관계가 아닌 절대적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기독교적 논리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인과 관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대속이라는 원인에 의해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거니 결국 인과라 할 것이다.

이 디카시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것이 살다 온 것을 꽉 물고서 한 줄에서 두 업이 만나고 있다고 언술한다. 입만 있는 것이 입 없는 것을 물고 있다고 전제로 하고서 말이다.

불교 철학적인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빨래 집게에 물린 것은 입은 잘리고 몸통만 남은 고등어처럼 보인다. 그 물고기가 지금 빨랫줄에 널려 말려지고 있다.

빨래 집게와 고등어가 악연인지 모르겠지만 한 줄에서 만나고 있는 장면이 바로 현생을 환기한다. 현생이라는 한 줄에서 너와 내가 인연으로 만나 선업을 쌓기도 하고 악업을 쌓기도 하는 것이 실존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디카시 <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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