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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23_ 박우담 디카시 ‘참수’
[이상옥 칼럼]극순간의 예술, 이주의 디카시 감상 23_ 박우담 디카시 ‘참수’
  • 뉴스N제주
  • 승인 2020.08.2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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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이상옥 시인

참수

참수
참수

새벽이 오기 전에 떠나야만 하는 길

동료들 깰까봐

뒤꿈치 들고 나가 이슬이 된 당신
    - 박우담

디카시는 스마트폰 디카로 시적 감흥을 느낀 사물을 찍어 가져온 시적 영상과 짧은 언술이 한 덩어리의 시로 SNS를 활용 소통하는 것을 비전으로 하는데 있어서 사진과 문자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시인이 견자로서 포착한 시적 영상에는 시인의 정서가 투영돼 있는 것이지만 사진 자체의 영상 이미지는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미 해석의 열린 공간으로 가치 중립적인 허상으로 자리한다. 디카시에서 영상이 1차 기호로 가치 중립적이라는 말은 문자와 결함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의미체로 재구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덕수 선생이 무크지 『디카시 마니아』 2호 대담에서 지적한 것처럼 디카시에서 영상이미지의 무의미적 열림과 문자 언어의 의미적 기능은 둘이 요철이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하나의 텍스트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덕수 선생은 영상이미지와 문자는 작품이라는 공간을 이루고 있는 백지에 분명히 각각 독립된 존재로 병존하고 있지만 디카시라는 새로운 명명이 장르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이 텍스트는 상호 보완하면서 병존하는 통합체인 기호체계로 드러나는 것으로 본다. 영상이미지와 문자 언어가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확적 결합으로 한 덩어리의 시가 되는 것이다.

박우담 시인의 디카시 <참수>는 사진과 문자의 관계성을 잘 보여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동네 냇가에 몸통이 잘려 나간 나무가 서 있는 풍경을 클로즈업하여 영상이미지로 제시해 놓고 있다. 이것은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가치 중립적인 1차 기호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상이미지는 의미 해석은 열린 공간으로 문자와 결합함으로써 2차 기호로써 의미를 지닌다.

디카시 <참수>는 나무를 참수된 당신으로 2차 기호화함으로써 영상과 문자가 요철이나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하나의 텍스트로 구축된다. 목을 베는 참수는 사형 수단이다.

참수를 앞둔 사형수의 가족들은 망나니에게 단칼에 베어 고통이라도 덜하게 해달라고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디카시에 등장하는 ‘당신’은 새벽 오기 전에 떠나야만 하는 길이라 동료들 깰까봐 뒤꿈치 들고 나가 이슬이 되었다.

가슴이 먹먹하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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