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 짓는 일은 사람의 심미안적 세계를 표현하는 것"
이어산, "시 짓는 일은 사람의 심미안적 세계를 표현하는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20.07.31 23:25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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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97)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97)

□ 무의식과 심미안적 시 쓰기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 쓰기는 기존의 양식을 벗어나 모험정신으로 새로운 발견을 위해 떠나는 문학여행이다.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일상세계를 벗어나는 보통 사람들의 여행과 비슷하다.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우리 마음에 잠재하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과 같다. 평소 생각하던 것이 무의식으로 응축되고 치환 되어서 상징과 이야기로 꿈에 나타나게 된다. 이것도 시 쓰기의 방식과 닮아있다.시적 대상의 이면을 상징과 이야기를 만들고 우리의 사람살이로 치환시키는 방법이 현대시에서 장려되는 작법과 비슷하다.

그러나 꿈이 아니라 시를 쓸땐 언어경제의 법칙(가장 적은 말로 가장 많은 말을 한 것과 같은 효과)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초보 시인의 시를 보면 상황에 얽매여 그것을 설명하느라 시적대상에게 끌려 다니기 일쑤다. 반면 시를 잘 쓰는 사람은 상황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시의 표면이 아니라 상황이 함의하는 내용을 진술한다.

여행을 할 때 차창으로 스치는 풍광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의 저장고에 기억된다고 한다. 처음 보는 일이나 대상, 장소 등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이 느껴지는 것, 즉 ‘데자뷰’라고 하는 것도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현상이다. 그러므로 시를 짓는 일은 사람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심미안적 세계를 발견하는 작법과 연관 된다.

심미안(審美眼)이란 꾸밈말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뜨고 시적대상 뒷면의 것을 발견해 내는 주관적 해석”을 말한다. 그리고 심미안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키워가는 느낌이다. 보고, 느끼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차를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골목에서 갑자기 아이가 뛰어나온다면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또한 갑자기 닥친 위험이나 무서운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이 무의식의 세계다.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할까?”라는 의식적인 생각을 한다면 사고가 나던지 감각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봐야한다.

무의식이란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감춰놓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인 행동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시를 살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현대시는 자연을 노래하는 서정도 아니고 의식 속에 고정되어있는 리얼리즘이 아니라 시적 대상을 발견하여 미적 자율성이 나타나도록 쓰는 행위인 것이다.

다음의 시 한 편을 감상하자.

섭씨 33도

김정수

빨리 나와
꽃 피울 시간이야

악어의 이빨보다
늦으면 수꽃
빠르면 암꽃

너는 누구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바람으로 솟구쳐 아무 꽃잎이나 흔들고 싶다고 그러다 관절염에 걸린 빨간 열매를 낳으면 어쩌려고 그래 난 택배처럼 배달된 건 아닐까 중간에 햇볕이 성을 바꿔치기한

늦은 봄과 이른 여름
사이에선
암수가 고르게 태어나

경기가 좋을수록
수꽃이 많이 태어나고

난 몇 도에서 영혼이 익었을까

느리게 떠날수록 싱싱한 울음
온도의 농간으로 잉태한 죽음

이마가 뜨겁구나
너, 식물성 맞니?

잠잘 시간이야
늪은 너무 포악하단다

위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중견 시인이다. 그의 시는 마음의 눈으로 대상을 해석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예시도 그런 시다. “악어 이빨보다/늦으면 수꽃/빠르면 암꽃”이라는 해석이 재미있다.

‘섭씨33도’라는 상징성으로 이 시를 해석하면 시의 확장성은 커진다. ‘아무 말 대잔치’ 같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있다. 무엇인지를 느낀대로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란다.

지난주 강좌에  예시로  든 심언주 시인의 시의 감상평을 달아주신 112명 중 다음 다섯 분께 시집을 보내드립니다. (시사모와 연결된 밴드 포함 댓글임)

1. 박치준  2. 이윤선  3. 이호재  4. 박준희  5. 최소정

■ 디카시 한 편 감상

     담다

어디서부터 오는걸까
그 따뜻한 미소와 고운 선율
모두 다 받아주고 싶은 이 순간
모두 다 주고 싶은 이  순간

- 임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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