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수수께끼 풀듯 조밀한 언어 밀도의 시가 성공한 시"
이어산, "수수께끼 풀듯 조밀한 언어 밀도의 시가 성공한 시"
  • 뉴스N제주
  • 승인 2020.07.1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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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95)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95)

 □ 언어의 밀도와 시의 확장성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는 언어의 양적 부피를 버리고 말의 밀도로 표현하는 문학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극단적인 말의 밀도를 든다면 비명, 울음, 웃음, 욕설 등과 같이 비논리적인 것들이다.

그런 표현에는 사람의 감정이 가장 직설적으로 담겨 있다. 만약 시에서 그런 감정을 드러내면 억제가 안 되는 사람의 종주먹질 같은 것이 되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짧은 언어로 심미안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가장 성공한 시가 될 것이다.

즉 가장 단단한 말의 밀도란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아니한 발을 덧붙여 그려 넣는 것 같은 사족(蛇足)이 없는 상태, 한 마디라도 빼면 무너질 것 같은 짜임새를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논리적인 표현으로도 사람의 뜻을 전할 수 있듯 시는 논리를 거두절미한 채 새롭게 해석한 시적 감성을 발설하는 장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언어는 최대한 조밀한 밀도를 지향하는 것이 현대시에서 적극 장려되는 작법 이다.

이때 논리를 지나치게 벗어난 언어의 함축은 시 해독을 어렵게 하므로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반대로 서정성을 이유로 아름다운 말로 매끈하게 시를 썼어도 내용이 너무 드러나면 줄거리를 알고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시적 긴장감이나 시를 읽는 재미가 반감된다.

시의 깊은 맛을 느끼려는 독자나 전문가는 오히려 감춰진 내용을 찾아가면서 읽을 수 있는 시를 선호하고 장려하기도 한다. 그래서 메이저급 시 전문지에 소개되거나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을 읽어보면 수수께끼를 풀듯이 읽어야 되는 시가 많은 이유이다.

기억의 인질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의 고집을 잘 꺽지 않는다. 시를 쓰는 사람은 항상 나의 시각은 편협한 고집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적 대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한 번 읽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 시나 시인을 펨훼하는 것은 대단한 교만이다.

뿌리가 흔들린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의 뿌리는 되지 못한다
온 마음을 현실에 심고
몸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두말할 것도 없이
뿌리는 관념이다
그냥 그랬으면 하는 허구일 뿐이다
부표처럼 떠다니는
세상에서의 뿌리의 역학
소실되는 것이지만
어쩌면 이미 무명을 얻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지표에 굳게 박힐 미명이라는 것을 믿으며
멀쩡하게
다시 가지가 되고 잎이 되고 싶은
볼 수도 느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이 환상의 리듬들

- 김광기, <뿌리의 역학>전문

위 시는 도덕적 무정부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향한 일침과 같은 시라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진영논리나 동질의식이 장려되는 현실에서 우리의 보편적 사고가 환상이 되어가는 어지러운 세상의 리듬을 지적하고 있다.

시인은 그것을 뿌리의 역학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가지가 뻗고 잎이 피어나고 보편적인 사고가 통하는 세상의 지표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싶은 시인의 작은 소망이 읽혀진다.

언어의 밀도가 큰 작품일수록 짧고 비논리적 말 속에서도 세상을 향한 수많은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시는 단번에 읽혀지기보다는 두세 번 정독했을 때 그 시에 담겨진 언어의 밀도가 높아서 의미의 확장성이 큰 작품이 오래 살아남는다.

■ 디카시 한 편 읽기

어떤 부페

    음식 종류가 많은 부페 식당
   한식 양식 중식 일식
    골라 먹는 재미가 솔솔 하지요
    부정 부페도 다양한 메뉴라
   적폐같이 쌓여있답니다

 - 이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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