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참신함 없는 시를 쓰는 것은 시에 대한 죄악"
이어산 "참신함 없는 시를 쓰는 것은 시에 대한 죄악"
  • 뉴스N제주
  • 승인 2020.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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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91)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91)

□좋은 시의 조건

이어산 시인, 평론가

소설은 갈등이 전제되는 형식이지만 시는 본질적으로 언어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양식이다.

어떠한 대립이나 어긋남이 없이 서로 어울려서 최상의 상태로 조립된 언어의 형태, 이것이 시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므로 조화가 깨어진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이 된다. 우리의 언어구조상 잘 어우러진 언어에는 리듬, 즉 운율이 있다.

요즘의 시에서는 이미지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산문시 형태가 많이 나타나지만 산문시에서도 본질적으로 율동적 리듬을 무시하면 시로서의 중요 요소를 갖추지 못하여서 시로 봐주기가 어렵게 된다.

또한 좋은 시의 핵심(核深)은 자연스러움이다. 그것은 억지스런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동양 시학의 핵심인 공자의 사무사(思無邪/생각에 거짓(사특함)이 없는 상태)와도 뜻이 통한다.

즉 진실한 언어가 아니면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가 아니라는 말이다. 시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란 미사여구나 내용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새롭거나 문제적 시를 말한다.

시를 배울 때에는 새롭지 않거나 실험정신이 결여된 시는 “시에 대한 죄악이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모든 예술의 최대 미덕이 바로 참신함이기 때문이다.

참신함을 찾아서 헤맬 필요가 없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대상이다.

그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때 어린아이의 호기심처럼 난생 처음 보는 것을 보듯 찬찬히, 그리고 깊게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설득되지 않는 것은 자꾸 물어보고 비틀어서 보고 연애하듯 사랑스런 마음으로 껴안아도 볼 일이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어떤 대상이든 언젠가는 감춰진 비밀을 반드시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받아쓰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주전자

신미균

보리차를 끓이다 깜빡 잊었다
물이 다 졸아붙고 주전자 안의 보리가
새까맣게 타고 주전자 꼭지가 녹아내리고
손잡이의 플라스틱에 불이 붙으려 하는데 발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손잡이에 붙은 불이
온 집안에 옮겨 붙을 뻔했다
왜 이 주전자는 뜨거워도 자기가 다 타버려도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는 걸까

암이 온몸으로 번져
죽을 지경에 이른 아버지를 만난다
까맣게 타버린 얼굴로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어릴 때 뛰어놀다 들어와 입을 대고 마시면
언제나 시원한 물이 콸콸 나오던 아버지
의사 말대로 조기에 발견 했더라면
이렇게 심하게 타버리지는
않으셨을 텐데
한쪽 구석에서 소리 없이 계신
아버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늦었지만
나는
초강력 철 수세미로
있는 힘을 다해
주전자를
닦기 시작했다

신미균 시인의 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읽어볼수록 맛이 있다. 그의 시집들을 읽어보면 시적 대상에서 찬스를 잡는데 능하다.

이렇게 쉽게 쓰면서도 울림이 있다. 시로서의 생명력을 가지려면 재미있거나 울림이 있거나 독자로 하여금 깊은 공감이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카네기는 성공의 비결은 '찬스를 잡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 성공하는 사람을 연구해 보면 거의가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하여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이다.

기회가 왔는데도 자존심 세우고 이런저런 온갖 계산을 하거나 우물쭈물 우유부단한 사람은 성공의 기회도 지나가 버린다.

기회의 포착은 감(感)이다. 감을 잘 잡는다는 것은 그만큼 평소 훈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 창작도 마찬가지다. 시적 모티프(motif)도 감이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 순간을 놓치면 시 창작의 찬스를 잃게 된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 고집 때문에 찬스 잡기도, 시 쓰기도 쉽지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집이 좁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일 시 쓰는 일의 우선이 되어야할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없듯 시적 감수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시로 옹알이 하는 단계와 혼자 몸을 뒤집을 수 있는 때가 있고, 혼자 앉거나 걷고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다.

시가 자랄 수 있는 자양분도 흡수하지 못한 사람이 쓴 시는 혹 눈에 띄지 않을지는 몰라도 영양부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과 같다.

물론 그런 시도 좋은 시로 기억 되는 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화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다.


■ 디카시 한 편 감상

담쟁이

담을 넘어야 살기도 하고
 담이 있어야 살기도 해서
   당신과 나 사이 오래된 담장도
 허물지 않기로 했어
 - 박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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