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시를 잘 쓰려고 애쓰기 보다 자연스러운 시 쓸 수 있어야"
이어산,"시를 잘 쓰려고 애쓰기 보다 자연스러운 시 쓸 수 있어야"
  • 뉴스N제주
  • 승인 2020.06.0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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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9)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89)

□ 시의 고수가 되는 지름 길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인’이라는 이름은 명사다. 이 명사를 얻는 것만으론 시인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시인다운’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사람만이 비로소 시인이라는 생각을 필자는 밝힌바 있다.

그러나 시단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시의 작품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 풍토는 여전하다. 흡사 어떤 수단방법으로든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면 그 과정을 묻지 말라는 말처럼 느껴져서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시를 배우다 보면 "시는 어려운 거야"라는 선을 긋고 포기해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처음 시를 쓸 땐 시가 잘 써졌는데 막상 어디에 내어 놓았을 때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질타를 받고나면 시를 쓰기가 겁이 난다.

그러나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된다. 시가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이 쉽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것과 같다. 쉬운 인생이 어디 있으랴. 시는 바로 시인의 인생 그림자가 서려 있는 말로 그린 그림이다.

"시의 고수가 되는 지름길이 있나요?" 가끔 초보 시인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필자는 명쾌하게 말한다. "답이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시의 고수가 된다" 그리곤 덧붙이는 말이다 "사람다운 시인이 최고의 시인이다"

사실 필자도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실수를 하거나 남의 입방아에 오른 적도 많다. 그래도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고상한 일이기에 때론 주제 넘는 일 같기도 하지만 시인다운 시인의 길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공자(孔子)에게 제자 염유가 "스승님,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하자 "능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은 미리 선을 긋고 물러나는 것이다"고 꾸짖었다.

누구에거나 시적 능력은 있다. 다만 그것을 끄집어내는데 게으름을 피우기에 시를 못 쓰는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언젠가는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시를 쓰는 사람은 실력을 키워서 시를 쓰겠다는 사람보다 앞서간다.

왜냐하면 시는 자꾸 쓰고 발표하면서 그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 훨씬 빠른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올해 82세인 황금녀 시인을 필자가 만난 건 12년 전이다. 필자의 시 창작 교실에서이다. 필자도 함께 배운다는 생각으로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의 시에 대한 생각을 들었는데 각자의 인생이 다르듯 시도 각 사람의 처지와 생각에 최대한 맞춰서 써야 된다고 했었다.

70세 시인은 그 나이에 자연스런 시를 쓰고, 젊은 사람은 패기 있는 시를 쓰자는 것이었다. 황금녀 시인은 자기가 살아온 방식과 생각대로 자신감 있게 시를 써 왔는데 82세가 된 올해 열두 번째 시집을 펴냈다.

시를 잘 쓰려고 애쓰면 시가 어색해진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시를 쓸 수 있어야 중층적인 의미의 시도 쓸 수 있다. 다음의 시를 보자.


소문리를 지나며 1

강희근

지나가기만 하는 마을
소문리를 풀꽃 하나 따들고 지나간다.
저만치 들앉아 있는 남문산역을 바라보며
어디로 가도 있을 법한 제일식당 간판
글자 한 획 뭉개진 것 눈으로 먹을 친다.
그래도 아직 바라볼 것 많이 있고
먹을 칠 자리 어디든지 남아 있다.
아, 아쉬움으로 지나가든지 무덤덤으로
지나가든지
지나가기만 하면 진성고개인데
아무런 수확이나 한 일 하나 없이도
그냥 고개를 만나고 마는 일이 이 고개
감겼다 풀리고 풀렸다 뒤트는 자리에서
하나로 만나 풀꽃 모개미 흔든다.
지나가기만 하는 마을
소문리도 어느짬 풀꽃만 하게 보인다.

위의 시처럼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그림처럼 시를 쓰자. 마음의 그림이 그려지도록.

□디카시 한 편 감상

 흰민들레꽃 소녀

       꽃 앞에서 구 남매를 키워낸
       구순이 넘은 어머니
       모두가 떠난 고향 지키며
     순박하고 수수하게 백발로 피어 앉은
         토종 민들레꽃 소녀가 웃는다.

      -. 이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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