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수미상관 되지않는 단어 나열은 시가 아니"
이어산, "수미상관 되지않는 단어 나열은 시가 아니"
  • 뉴스N제주
  • 승인 2020.05.29 22:06
  • 댓글 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8)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
□시의 눈을 만드는 작업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에 동원되는 단어는 천상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말이다. 다만 그것을 시인의 언어로 바꿨을 때에만 시의 언어가 된다.

시인의 언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소수어’다. ‘소수어’란 시인이 선택한 일반적 내용을 제일 축약된 말로 조합한 ‘구체적 언어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입체감을 살리는 일이다. 입체감이란 비유에서 온다. 예를 들어서 ‘아름다운 장미꽃’이라는 표현이 시에 들어갔다면 이는 ‘A는 A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므로 시어가 될 수 없다.

장미꽃이 아름답다는 것은 일반적인 이미지, 즉 1차 가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수어가 되기 위해서는 2차 가공에 들어가야 한다. 2차 가공의 대표적인 작법이 ‘비유’다.

보이는 대상의 이미지와 연관되는 다른 대상으로 가공하거나 그림자를 찾아내어서 입체감이 있게 가공하는 방법이다.


살짝 잠이 드신 듯
누워 계시다
속저고리 속바지 속치마
하나 하나 바쳐 입으셨다
이마, 빰엔 연지 곤지
이제 나들이 가실 듯
어머니 참 환하시다

누가 슬쩍 집어넣었을까
양산 하나
연, 하늘색이다
며칠 째 내리는 봄비
이제, 그칠까

- 이동백, <찔레>전문​

위 시에서 어머니를 ‘찔레’에 비유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입관에서 ‘찔레’라는 은유적 그림자를 찾아내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추의 힘’이다. 누가 슬쩍 관에 넣어 준 양산 하나, 봄나들이를 떠나실 것 같은 어머니의 모습과 너무 어울리는 이미지다.

그러나 봄비가 며칠 째 내린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비처럼 눈물이 내리는데 이 슬픔이 언제나 그칠까?”

‘유추’란 다른 말로 ‘상상’이다. 시의 재료를 잔뜩 늘어놓고도 유추의 힘이 없으면 결합을 할 수 없다.

같은 재료라도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도 있고 맛없게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 서로 어울리는 재료를 잘 결합해야 좋은 시가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유추의 힘은 시에 눈을 단 것 같이 시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적 대상을 절실하게 보고 축약해서 보고 구체적인 음영(陰影), 즉 그 그림자를 통하여 내면세계를 볼 수 있어야 시에 눈을 제대로 단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작가의 깊은 생각이나 느낌을 주관적인 시각으로 현현화(顯現化)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유추’와도 연결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지향하는바가 무엇인가다. 설계도 없이 함부로 집을 지을 수 없듯 지향하는 목표가 없이 이것저것을 늘여놓아도 안 된다.

시에서 시적 대상을 선택하면 그 대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다.

시의 주제가 뚜렷해야 하는데 수미상관(首尾相關)이 되지 않은 단어의 나열은 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시에 동원된 대상이 그 시에서 동원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를 치장하기 위한 꾸밈말이거나 벌말이어서 전혀 어울리지 않은 천박한 화장을 한 것과도 같다.

◆ 디카시 한 편 감상

      이순(耳順)

이어산 시인, 평론가

       과속으로 도착한 이순
       앞으로 인생은 절대 감속 
  천천히 여유롭게

 -. 손병규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