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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은 열심히 시 쓰는 사람 아닌, 열심히 사는 사람"
이어산, "시인은 열심히 시 쓰는 사람 아닌, 열심히 사는 사람"
  • 뉴스N제주
  • 승인 2020.05.15 21:55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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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6)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86)

 □겸손이 교만에게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시는 인생의 길에서 목마를 때 찾는 생수이며 앞이 캄캄할 때 켜드는 등불이자 죄인의 피난처고 혼탁한 세상에서의 호흡이고 고백이다.

그러므로 시는 내 삶과 같이 가는 자연스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시를 억지로 쓸 필요는 없다. 정말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내가 느낀 새로운 것을 그 때마다 호흡을 하듯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는 그 시의 씨앗을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사랑과 정성으로 자꾸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겐 시의 씨앗이 때가 되면 반드시 발아하여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된다.

시를 꼭 써야하는 노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또한 자기의 삶이 따라가지도 못하는 시를 쓰는 시 기술자가 되는 것도 허망한 일이다. 자기의 색채가 있도록 자기의 삶과 어울리는 시를 쓰자는 것이 필자의 시론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계관시인(桂冠詩人) 김남조 시인은 “시인은, 열심히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즉 사람과 시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시인의 자격이 없다"라는 말과도 같다. 필자의 시인관인 "시인은 벼슬이 아니라 겸손하게 삼라만상의 방언을 해석하고 통역하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뜻이 통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 바로 '겸손'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교만하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웠다고 해도 '편협한 시각과 좁쌀만한 지식'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써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겸손해진다. 세상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시도 겸손한 것이 사랑 받는다.

시 짓기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것을 찾아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며 말라비틀어져 가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글이 폭력적이면 시적 대상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독자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시를 읽고 행복해지거나 공감되어지지 않는 시는 시로서의 가치가 없거나 시인의 감정 배설일 가능성이 크다.

겸손은 다른 사람의 시를 평하는 일에도 해당된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스승이라도 제자에게 꾸중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하물며 얼굴도 성향도 제대로 모르는 상대방에게 좋은 뜻이라도 가르치듯, 훈계하듯 잘못 지적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떤 이는 비평 자체를 기분 나빠한다. 그러나 비평과 비난을 구분할 줄 모르면 시를 쓸 자격도 없다. 비난이 아닌 비평은 시를 키우는 자양분이고 글에 대한 큰 관심의 표현이다. 그러나 진실로 겸손한 사람은 비평도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쓴다.

겸손에 관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사람이 살믄 을매나 산다고
목에 힘주고 눈꼬리 치켜세워
지그들은 뒷간에 안 가고
입으로 먹고 입으로 내놓는 감
지그들은 죽으믄
무덤에 풀 안 나고 생수 솟는 감

지나 나나 시장 뒷골목에 서서
꽁치 한 마리에 흥정하는 건 매일반여
어디서 잘난 척을 혀
비싼 옷 입으면 다냐구
지들이 잘났으면 을매나 잘났길래
지그들은 똥 안 싸고 금덩어리 싸냐구
아이구 세상에나
그려도 손에 흙 만지는 우리가 낫지
분바르는 낯바닥 생비린내 나서 싫여
저승사자도 싫어 할껴

- 김옥진, <겸손이 교만에게> 전문


■ 디카시 한 편 감상

     지네 날다

          좁은 땅덩이
              이젠 더 높은 세상으로
              공중부양 중      
        -.고지현

 

지난주 원구식 시 "정밀한 숲'에 대한 감상평을 올려주신 다음 분들께 시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1.유경화 2.김희종 3.박상원 4.김솜 5.허순금 6.박상원 7.이상태 8.박치준 9.이인철 10.전영임 11.안선숙 12.이둘임 13.박대선(시나래) 14.조영란(시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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