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 쓰는 일...사람과 세상 이해와 관계 맺는 작업"..."비시(非詩) 경계"
이어산 "시 쓰는 일...사람과 세상 이해와 관계 맺는 작업"..."비시(非詩) 경계"
  • 뉴스N제주
  • 승인 2020.04.17 21:5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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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2)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

□비시(非詩)의 문턱 넘기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를 쓴다는 일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게 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관계없는 사물의 묘사만으로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시가 아닐 가능성이 많다.

시인은 자기가 체험 했거나 일어날 법한 상상의 공간에서 생산한 영혼의 양식을 잘 요리하여 독자가 먹을 수 있도록 밥상을 차려서 내주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사물이나 시적 대상을 묘사하는 단계를 지나 사람에게 접목시킬 수 있느냐가 비시(非詩)의 문턱을 넘는 기준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사물의 묘사는 잘 했지만 그것을 사람살이와 연결시킬 진술(시인의 마음)이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시(詩)답다'라는 것은 그 시로 인해서 마음의 위로나 공감, 감동이 있는 생명의 시정신이 들어갔느냐가 중요하다.

자신만의 자의식이 넘쳐서 넋두리를 시라고 우기거나 자기만족에 취해서 사유의 깊은 맛이 없는 평면적이고 설명적인 글, 행과 연 사이에 긴박감이 결여된 글, 상식적인 언어의 글, 다 아는 체 폼을 잡는 글, 훈계조의 글은 시작(詩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시의 언어는 사건이나 사물과 독자 사이의 전달 수단인데 시의 언어를 잘 알지 못하면 시가 안 된다.

그렇다면 시의 언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응축된 말의 덩어리'다. 즉 낱말의 새로운 언어조합을 통해서 시적 언어인 말의 덩어리가 완성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시는 강력한 낱말을 재료로 한 언어의 덩어리다. 즉 단어마다 적확(的確)하고 절제된 언어를 골라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언어를 덩어리화 하는 일이다.

또한 사물의 생각을 읽고 마음에 심으면 그것이 시의 덩어리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 뒷날에 쓴 필자의 졸시 한 편을 텍스트로 올린다.

아편 같은 햇살이 뚝뚝 떨어지는
4월 15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내 안방에서 선종한지 15년째
위대한 업적이 박혀있는
벽을 물끄러미 보다가
미켈란젤로의 고독 한 자락
마약에 취한 듯
거대한 시스티나 천정화에 온몸을 던지는데
라파엘로는 질투의 불화살을 당기고
거센 불길이 번진다
행장行裝을 꾸려 길 나서려는데
천정에서 뱀들이 기어 나와
라파엘로를 칭칭 감는다
죽음까지 간섭할 것인지 지옥문이 열려 있다
어제와 오늘 머리를 맞대고
내일의 희망을 궁리한다
매번 문턱에서 거세당한 희망들
지나간 날들을 되짚는다
위대한 위정자들은
목마른 자들에게 바닷물 한 사발을 주다가
한 동이씩을 입속에 퍼 넣는다
15년 전의 교황이여
우리를 위한 당신의 기도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려는지
그 봄날
가만있어라던
어느 선주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데
겁에 질린 쥐 떼들
우르르 몰려다니고
- 이어산, <가만있어라> 전문


철학은 이성에 호소하지만 문학은 상상에 호소한다. 특히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이란 절대적이다.

상상력은 시의 씨앗인데 이것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서 비시(比詩)의 문턱을 넘을 수도, 넘지 못할 수도 있다.

상상력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으나 경험한 것 같은 상황이나 가상의 사건을 만들어서 간접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위 시를 읽고 소감을 댓글로 달아주신 분 중 몇 분을 선정하여 신간 시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디카시=이동세 시인>
                         어미꽃

    자식 앞에서
      지은 죄 없이
            고개 숙이는 어머니!
                 - 이동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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