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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N아침시](61)능내역을 출발하다
[뉴스N아침시](61)능내역을 출발하다
  • 이은솔 기자
  • 승인 2020.03.03 0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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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곽인숙, 시평/ 현달환
곽인숙 시인
곽인숙 시인

길 따라 걷다 보니
생채기를 보듬고 견디어온
능내역이 웅성거리며
나에게 말을 거는데
기억이 녹슨 철길 위로
동행하던 느릿한 한숨
떠나보내라고
4킬로만 더 가면 북한강이라고
표지판을 앞세워 등을 떠미는데
분수처럼 쏟아지는 햇빛을
마재성당 기와집이 받아내며
마리아 수녀는 다산 선생의 생가를
가리키는데
다산이 손을 흔들고
정조의 반짝이는 눈길은
피폐했었던 마을을 향하는데
낡은 부모 같은 기차 칸
오래된 책 냄새에 이끌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기차의 두 바퀴처럼 달려온
욕망의 속도를 계산해 보다가
나그네의 피곤한 마음도
강진 땅 어디쯤에 유배되었으면 하다가
4킬로 저쪽 북한강
어느 기슭에 다다르면
가난한 나의 마음 내려놓고
쉼을 얻을 수 있을까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 곽인숙 시인의 '능내역을 출발하다'

우산을 쓴 서울 친구가 찾아 왔다. 모자를 쓴 강원도 친구가 찾아 왔다. 안경을 쓴 충청북도 출신의 친구가 찾아 왔다. 저기, 과거 추억을 쓴 경상북도 친구가 찾아 왔다.

뿌우- 기차를 타고 달려온 친구들이 모여 부끄럽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만나는 곳, 그 곳이 느린 역驛의 모습이라는 데 공감이 앞선다.

덩그러이 남겨진 선로의 만날 수 없는 직선의 날카로움은 어디갔나.

서서히 무뎌지는 날카로움은 세월속에 묻히고 곳곳에 추억과 무한한 상상으로 남겨진 간이역의 이야기는 수명 다해가는 폐마냥 서서이 콜록거린다. 

막상 생채기를 보듬고 견디어온 봄이 찾아와도 다시 떠나야 하는 운명이 거기엔 남겨져 있다. 삶의 무게만큼 무거운,[현달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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