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N아침시](59)들소 구두를 신고
[뉴스N아침시](59)들소 구두를 신고
  • 이은솔 기자
  • 승인 2020.02.20 13: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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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시향, 시평/이은솔
이시향 시인
이시향 시인

제주 동문 로터리 동양극장 간판에서
하얀 콧김 뿜어내는
들소 떼를 보며 오르막길 걷다가
반지하 비스듬히 열린 틈으로
가위질 소리, 망치 소리 들리는
세화 양화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사십 년 넘게 수제화만 고집하는
소를 닮은 왕눈이 주인
뒷굽이 깎여나간
낡은 내 구두를 살핀다
황소, 물소, 들소 가죽 구두를 내보이며
세월이 어수선하니
질끈 동여매고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들소 구두를 신으라고 한다
끝없는 초원을 달려가는 고달픈 들소
나를 기다리는 초원은 어디에 있는지
몇 발자국에 뒤축이 아리다

  -이시향의 ‘들소 구두를 신고’

제주 동문로터리는 오래전부터 제주 토박이들과 이주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1960년 거대한 배 모양으로 건축되어 영화전문 극장으로 유명했던 동양극장은 지금은 관광도시로 변해버린 구도심의 지난 삶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시인은 아련해진 기억 속으로 불러들여 구두를 수선하듯 그때의 열정을 되살리게 한다.

어수선한 세상을 동행해 줄 질기고 튼튼한 구두같이 단단한 마음이 필요한 때, 끝없는 초원을 달리는 들소의 고달픔 마저 누군가에게는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우리는 낡은 구두를 고쳐 질끈 동여매고 아린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이은솔 시인]

이시향(본명 이승민) 프로필

제주도 출생
2003년 계간 《시세계》 등단
2006년 《아동문학평론 동시》 등단
울산예술문학상, 울산동요사랑대상, 울산아동문학상, 울산남구문인상 등 수상
시집 『들소 구두를 신고』외 4권
디카시집『삼詩세끼_3인 공저』
동시집 『아삭아삭 책 읽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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