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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훈 해녀사진전]제주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해녀
[양종훈 해녀사진전]제주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해녀
  • 이은솔 기자
  • 승인 2020.02.02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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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세영 월간 사진예술 편집주간
상명대학교 양종훈 교수(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가 지난 1월 15일부터 4월 15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제주해녀 사진특별전을 개최한다
상명대학교 양종훈 교수(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가 지난 1월 15일부터 4월 15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제주해녀 사진특별전을 개최한다

지구촌 곳곳을 돌아 마침내 고향의 바다로 시선을 돌린 사진가 양종훈의 “제주해녀”는 그의 지난 30여년 사진작업에서 가장 백미다. 제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향을 떠난 지 45년, 그동안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미국과 호주에서 사진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아프리카, 호주, 21세기 신생 독립국가 동티모르, 히말라야 등, 촬영을 위한 그의 발걸음은 보폭이 크고 분주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그의 카메라는 고향의 바다, 그 바다에서 평생 삶을 일궈가는 제주해녀에게 향했다.

마치 지난 30여년 사진공부와 사진작업이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제주해녀에게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었던 것처럼, 그의 이번 사진 “제주해녀”에는 사진가 양종훈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제주해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역사가 오래되고 독특한 존재다. 별다른 잠수도구 없이 오로지 자신의 ‘숨’에만 의지하여 바다 속 20미터까지도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해왔다.

해녀에게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고된 일이지만 그들의 특이한 작업의 형태는 사진가들에겐 특별한 소재여서 그동안 해녀를 찍은 사진들이 상당수 발표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과 소통하여 그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사진은 드물었다.

상명대학교 양종훈 교수(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가 지난 1월 15일부터 4월 15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제주해녀 사진특별전을 개최한다
상명대학교 양종훈 교수(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가 지난 1월 15일부터 4월 15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제주해녀 사진특별전을 개최한다

그런데 이번 양종훈 작가의 “제주해녀”는 아주 가깝고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갔음이 느껴진다.

해녀들이 바다로 향하는 모습부터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 그리고 오리발만 물 위로 드러내며 잠수하는 순간, 물속에서 마치 한 마리 고래처럼 혹은 부드럽게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 어망에 전복이며 소라를 가득 담아 물위로 올라올 때 거인 같은 강인한 모습, 그리고 뭍에 올라와 일상의 한 여인으로 돌아오는 모습까지 그의 카메라아이 또한 멀리서부터 아주 가깝게 코앞까지, 자연스러우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마치 음악을 연주하듯이 그들을 담았다.

안단테로 평화롭게 흘러가다가 훅 하고 들어오는 강렬하고 짧은 스타카토, 묵직한 저음 속에서 올라오는 단단한 고음, 폐부를 찌르는 애조는 잠시일 뿐 다시 씩씩하고 희망적인 삶의 노래로 변주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진들은 사진가와 해녀 사이 소통과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해녀는 사진촬영을 원치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작업한다는 극도의 긴장감 때문이다. “내려갈 때 발견한 전복은 따지만 올라오면서 본 것엔 미련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물속으로 15~20미터씩 잠수하여 작업하다가 올라올 때는 호흡의 한계에 이르러 있기 마련인데 그때 욕심을 부리다간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극한작업을 하는 해녀가 사진가 앞에 순순히 서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양종훈은 그들을 “제주해녀”에 앞서 고향의 어머니로 바라보았다. 또한 육지 사람에겐 난해한 제주도 방언으로도 소통이 가능했다. 촬영에 앞서 마치 고향집에 온 듯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해녀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엔 외면하고 쌀쌀하던 그들도 서울에서부터 내려와 사진은 찍지 않고 그들 곁에서 필요할 때 짐도 들어주고 마을까지 태워다주기도 하는 등 뭔가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그를 보면서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이번에는 해녀들이 그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사진도 못 찍고 허탕을 치니 어떻게 하나” 걱정하다가 다음날 날씨가 좋아지면 그들이 더 반가워하며 “날씨 좋을 때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독촉했다. 심지어 이것도 저것도 찍어보라며 적극 나섰다.

해녀들이 자신의 생업을 챙기듯 그의 작업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교감을 나누다가 더 시간이 흘러 아예 사진가의 카메라를 의식조차 하지 않게 되었을 때쯤 그는 자연스러운 해녀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또한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나 비오는 날에는 탈의실 담벼락에 검은 천을 치고 한 명 한 명 해녀의 인물사진을 찍었다.

“역시 다큐멘터리 사진은 대상과의 교감이 먼저”라고 말하는 양종훈 작가는 2019년 9월에 서울시청 시티갤러리에서 “제주해녀” 전시를 열면서 사진의 주인공인 해녀들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해녀들은 그에게 “명예 고내어촌계 회원증”을 선사했다. 말하자면 ‘명예해녀’가 된 셈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양종훈 작가는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한 조현배 해양경찰청장에게 제주 해안에서 극성을 떠는 스킨스쿠버의 불법 어획물 채취 단속과 해녀의 안전을 위협하는 폐그물 제거를 청원, 해녀들의 오랜 숙원이 해결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사람의 마음속으로 직진

2006년에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촬영할 때도 그들 속으로 직진하는 진정성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어젖혔다. 그들은 자신을 찾아온 한국의 사진가에게 그들의 음식인 빵을 먹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즉석에서 쇠난로에 물과 밀가루만으로 구운 빵이었다.

아무 것도 첨가된 게 없는 밀가루 덩어리여서 입에 넣는 순간 확 넘어오려고 했지만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하나 더 달라고 말했더니 그들이 수군수군 ‘이번에는 진짜가 왔다’고 말하더라는 것.

그 이후 그들의 협조로 외부인은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는 곳까지 들어가 촬영할 수 있었다. 호주 원주민을 촬영할 때도, 동티모르에서 수중분만을 촬영할 때도 그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가 소통했다.

양종훈 작가는 그들을 단지 사진을 위한 소재로 여기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 안으로,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내밀한 부분, 그들의 눈물과 웃음, 고통과 기쁨까지 나누고자 한 것이다.

특히 양종훈 작가에게는 다른 사진가들이 따라 하기 힘든 감동적인 부분이 있다. 소통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행동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에이즈 환자를 촬영하고 돌아온 후 ‘한울안’이라는 유엔 NGO 단체가 나서 1억5천만 원을 들여 그들의 재활을 돕는 건물을 지어주었는가 하면 동티모르에는 학교와 집을 지어주는 운동을 펼쳤다.

동티모르 촬영 이후 명동성당 옆 가톨릭센터에서 동티모르 사진전을 하면서 이것이 인연이 되어 성모마리아장학회에서 3억 원을 들여 동티모르에 학교를 지어주게 되었다.

동티모르 국민의 94.7%가 로마가톨릭이라는 점을 들어 도움을 역설하자 신부님이 직접 현지조사를 한 후 수용한 것이다. 또한 당시 경기도 손학규 지사와 연결되어 동티모르에 집 지어주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국내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진을 가르쳐 전시를 열어주는 프로젝트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결과물인 사진의 내용을 떠나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또한 안으로만 움츠리던 그들을 전시장에 서게 함으로써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주자는 그의 의도는 사진을 넘어선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전시 오프닝에 방송인 박상원, 산악인 엄홍길, 야구선수 박찬호 같은 셀럽들이 참석하여 격려해줄 때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사진가 양종훈. 그가 사진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다고 카메라를 잡은 이후 30여 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일들이다.

그러한 사진 이후의 작업들이 “사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의 매력이다. 서울대학교 소아암 환자를 찍을 때도, 전국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만나는 KBS “6시 내 고향” 고정출연자로서 오지의 사람을 찍을 때도, 앞에서 언급한 해외에서의 사진촬영을 진행할 때도 그는 늘 사진을 넘어 사람을 사랑했다.

하물며 고향에 돌아와 고향의 어머니들을 촬영하는 “제주해녀” 작업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제주해녀들이 여자도 아닌 그에게 명예 해녀증을 주었을까? 그만큼 사진가와 해녀들이 일체화 되었다는 증거다. 이러한 일체감은 사진에서도 그대로 배어나온다.

그들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 하등 꺼릴 것 없이 자연스럽고 사진가 또한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까지 읽어낸다. 이러한 편안함은 사진가가 서두르지 않고 마음껏 기법을 발휘할 여유를 주어서 구도적으로 구성적으로 다양하고 깊이 있는 표현을 가능케 했다.

많은 사진들이 다이내믹하고 생동감 넘치지만 해녀들의 단체사진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슴 뜨겁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거친 바다와 맞서온 그들의 삶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한결같이 그들의 표정에 나타나는 사진가에 대한 애정과 신뢰감이 느껴지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양종훈 작가는 “제주해녀”라는 이 사진집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이 무엇인지 증언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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