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좋은 시의 첫번째 조건은 '소통'"
이어산 시인, "좋은 시의 첫번째 조건은 '소통'"
  • 뉴스N제주
  • 승인 2020.01.03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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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詩 창작 강좌(67)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67)

□ 소통해야 행복하고 성공한다.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이래야만 한다는 아집과 근거 없는 신념은 인생의 적이다”
 
2020년의 첫 토요강좌를 맨발의 육상선수 아베베가 한 말을 떠올리며 시작한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것은 보통 자기가 그렇게 해석하는데서 비롯된다. 시도 마찬가지다. 너무 심각하거나 감정에 치우치지 말자. 일단 시적 대상과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쓰자.

“내 시가 좋은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아집도 부리지 말자. 시의 완성이란 없다. 다만 공감되는 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통이 안 되는 시를 보면 “저렇게도 시를 쓰는구나”하고 넘겨라. 비난할 필요도 없다. 비난하면 심각해진다.

좋은 시의 첫 번째 조건이 ‘소통’이다. 소통되지 않는 시는 혼자 부르는 노래다. 시는 혼자만의 일기가 아니라 독자와 시인간의 쌍방향 문학이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교환 되어지는 의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시와 비시(非詩)가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시에서 ‘소통’이라는 말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쉽게 설명되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설명되고 이해되는 소통은 시적 언어의 특질을 상실할 위험이 대단히 커진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소통의 시’는 아무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이해를 전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시에서의 소통은 ‘상황’을 전제로 한다. 상황은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시 쓰기는 상황연출, 즉 시인이 발견한 새로운 이야기(사건)다. 이것을 약간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 난해성을 극복하면서 감춰진 미학을 찾을 수 있는가? 즉, 시를 쓴 뜻,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는가?(의미론적 가치)
둘째, 시의 대상에 감춰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존재론적 가치)
셋째, 시적 언어로 적합한 내용인가? 시적 특질을 살린 내용인가?(미학적 가치)
넷째, 우리의 사람살이(삶)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윤리학적 가치),

위의 내용을 읽고 나면 시 짓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단계를 뛰어 넘어야만 시인이 되든지 제대로 된 독자가 된다.

그래서 시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없이는 장삼이사(張三李四/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시 훑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누구나 맞이하는 새해이지만 시인에게는 이것이 사건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새해’라는 시를 쓸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내어보겠다. 사건으로서의 ‘새해’에 대한 시 쓰기다. 좋은 글을 올려준 사람들에게 시집을 보내 드리겠다.

요새는 밥솥도 말을 한다 증기배출을 시작합니다
백미 고압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쿠쿠
모기도 할 말이 있어 내 주위를 맴돌고
강아지는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하다가 만다
버스를 기다리다 나무를 쳐다보면 나무는 내가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냐는 듯이 딴데를 본다
튀어나온 보도블록을 밟으면 찍하고
물을 뱉을 때가 있다
나는 주로 핸드폰에 대고 말을 한다
이제는 멀리 살고 전화번호도 바뀐 옛 애인도 지금
누구하고 밥풀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 박순원, 「짧은 말」 전문

  
위 시는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낸 ‘말’이라는 화두로 상황을 연출했다. 밥솥이 말을 하고 날아다니는 모기와 강아지와 나무, 물을 뱉는 보도블록에게도 시적 생명을 부여하여 소소한 사건을 만들었다.

사람 아닌 것들의 말인데 결국 “핸드폰에 대고 말하는” 화자도 기계가 말을 전하므로 그들과 다름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시적인 것은 상황을 만들었을 때 생긴다.
   
삼십년 수명인데
그 수 다 누리고 가는 놈은 없다
부화한지 6개월 되기도 전
죽어간 놈들은 탕 되고
치킨, 갈비, 깐풍기, 라조기, 팔보채,
죽, 스테이크, 샐러드, 꼬치, 강정,
계장, 샌드위치, 케밥,
찜 되어 주린 입 속으로 들어가
피와 살이 된다
죽어가는 놈들 내뿜는 독소
몸속 세포에 시나브로 쌓인다
어찌 이들 뿐이랴
비명횡사한 뒤 음식 되는 것들
사람들 성정 사납게 진화시키고 있다
     - 이재무, 「폐닭」전문


위 시도 ‘폐닭’의 특성을 살려서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이것을 상식적인 선에서 설명 했다면 시가 되지 않는다. 시인은 사물의 표피가 아니라 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임을 잊으면 시를 제대로 쓰기가 어렵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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