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의 완성은 잡석 골라내고 감흥의 보석 만드는 일"
이어산 "시의 완성은 잡석 골라내고 감흥의 보석 만드는 일"
  • 뉴스N제주
  • 승인 2019.12.14 06:21
  • 댓글 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요 시 창작 강좌(64)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64)
□시의 잡석 버리기와 시의 순도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와 언어는 매우 빈약하거나 편협하다. 시를 쓴다는 일은 우리가 편협하게 알고 있는 것의 바깥에 묻혀있는 의미와 어휘를 캐내기 위하여 떠나는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눈을 열어 찾아보면 세상에는 생소한 느낌의 어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시를 잘 쓰는 시인은 그것을 캐내고 가공하여 보석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보석으로 가공한다는 것은 감흥이 있도록 한다는 말이다.

시는 대단한 철학이나 잠언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감동하는 미학이다. 너무나 잘 아는 말이지만 그게 쉽지 않다. 산더미처럼 쌓여있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시의 원석을 캐내는 일에는 끈기와 수고가 따르는 일이고 골라내야 하는 잡석도 많다. 시의 완성이란 그 잡석을 골라내고 어떤 형태의 보석을 만드는 일이다. 순도 높은 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잡석을 골라내야 한다.

시는 대단한 철학이나 잠언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감동하는 미학이다.

그 일의 제일 첫 째는 '알맹이가 없는 미사여구'를 버리는 일이다. 시를 이쁘게 꾸미려고 할수록 진한 화장을 하는 것과도 같은데 시가 천박해질 수 있다.

두 번째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노출한 것도 골라내야 한다. 감정을 억누르고 정제하지 못하면 막 내지르는 싸구려 언어처럼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낯익고 뻔한 이야기, 평면적이고 평이한 내용이다. 누구나 아는 일을 장황하게 설명하듯 늘여놓는 것은 정말 필요 없는 잡석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특수하게 만들 능력이 없다면 무조건 버려라.

네 번째는 ~하노라, ~구나, ~어라 등의 고어체나 감탄사, 지나친 문장부호가 들어간 잡석을 골라내야 된다. 옛날 사람들처럼 시를 쓰지말고 젊게 쓰라. 문장부호도 하나의 언어이므로 문장부호가 없어도 뜻이 통한다면 문장부호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다섯 번째는 늙은 시다. 교조적, 잠언적, 훈계적인 것은 늙은 사람의 잔소리 같은 잡석이다. 시는 될 수만 있다면 생동감 있게 진취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

위의 다섯 가지만 제대로 반영하여도 순도 높은 훌륭한 시를 쓸 수 있다.

사진=이어산
사진=이어산

다음의 시를 읽고 느낌을 댓글로 달아주기 바란다. 잡석이 있는지 시의 순도는 어떤지를 읽어내기를 바란다. 좋은 글을 뽑아서 최신 시집을 선물로 보내드리고자 한다.
 
   계단에 서서 당신을 열어 볼 때가 있다
   이층은 소리와 햇살이 가득했다
 
   멈춘 듯 저녁이 먼저 오고
   멈춘 듯 내가 다녀간다
 
   가끔씩 기쁜 저녁도 지나간다
   아래층 불빛이 이층까지 노오랗게 올라간다
   층계를 밟는 불빛들은 두근거린다
 
   내가 모르는 사이
   베란다를 좋아하는 모과나무는
   노오란 잎새를 몰고 찾아온다
   첫눈 없는 크리스마스를 맨손으로 만진다
 
   이층은 쉴 새 없이 흐른다
   아무에도 말한 적이 없다
   아래층과 이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를 끄듯 커튼들을 닫는다
   해가 뜨지 않는 일층에
   없는 듯
   내가 남아 있다.
      - 최금녀, <이층> 전문

 
이어산, <생명시 운동>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